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혹독한 생존경쟁 유발자, 인간
상태바
혹독한 생존경쟁 유발자, 인간
  • 이충건
  • 승인 2016.11.19 0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충건의 지구촌 생태기행] <3>마스카렌 제도
이충건 세종포스트 대표 겸 편집국장

마다가스카르 동쪽에 화산군도가 있다. 레위니옹, 모리셔스, 로드리게스로 이뤄진 마스카렌 제도(Mascarene Islands)다.

제도의 역사는 그곳의 상징이었던 도도(dodo)새의 멸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종이 포식자들로부터 아무런 위협 없이 살다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채 200년이 걸리지 않았다.

조류계의 나무늘보 ‘도도’, 무차별 포획으로 멸종

1500년경 포르투갈 사람 디에고 디아스에 의해 발견된 이 섬들은 그 전까지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숫처녀 상태였다. 온화한 기후, 동·식물의 높은 분포는 항해사들에게 마치 에덴동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풍경은 급속도로 변했고, 도도 새는 사냥꾼의 표적이 됐다. 인간과 함께 쥐, 개, 고양이, 돼지 등이 함께 유입되면서 순식간에 30종의 조류와 7종의 파충류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멸종한 도도새 복원. 영국 옥스포드대 국립자연사박물관.

박물학자들은 도도 새를 어디에 분류시킬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 몇 개의 뼈대와 먹다 남은 찌꺼기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결국 이 새는 비둘기와 인접한 곳에 위치됐다. 도도 새는 뚱뚱하고 게을러서 날지 못하고, 뛰는 것도 서투른 일종의 산비둘기로 분류됐다. 1681년, 이 불행한 동물의 마지막 후손이 멸종을 고했다.

박물학자 뷔퐁(Buffon)은 도도 새를 ‘가장 우둔하고 어리석은 동물’로 묘사했다. 날지 못하지만 최소한 달릴 때만큼은 매우 빠른 타조와도 대비됐다. 도도 새는 조류계의 나무늘보였던 셈이다. 도도 새를 사냥하기 위해 공기총을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도도 새의 소멸은 멸종위기에 처한 모리셔스의 풍토성 식물을 떠올리게 한다. 적철과(赤鐵科)에 속하는 시데록실론 세실리플로룸(sideroxylon sessiliflorum)은 도도 새와 관계를 맺으며 존재해왔다. 도도 새가 이 식물을 수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던 것이다.

도도새는 이제 맥주의 라벨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칠면조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적철과 나무의 단단한 열매는 가금류의 위에 머무는 동안 부드럽게 변했다. 이 열매의 표면은 동물의 소화관을 통과하면서 말랑말랑해지고, 대변으로 배설되어야만 발화가 가능해진다. 도도 새의 식이요법과 긴밀하게 결부된 삶의 방식이 새를 따라 죽음에 이르게 된 이 나무를 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인간은 도도 새를 완전히 멸종시킨 반면 금세 섬의 지배자가 된 열대산 원숭이를 데려왔다. 이 녀석들은 즐겁다는 듯 풍토성 식물을 먹어치우고 유린했다. 적철과 나무의 씨앗도 이 원숭이들의 먹이 중 하나였다. 요컨대 도도 새는 씨앗의 발화를 용이하게 만들려고 먹었지만, 원숭이는 무조건 먹어치웠음에 틀림없다. 열대산 원숭이가 도도 새를 대체하면서 나무의 개체 수 감소가 급격하게 이뤄졌다는 얘기다.

인간이 데려온 원숭이, 풍토성 식물 유린

진홍빛과 장밋빛 혹은 순백으로 눈부시게 채색된 거대한 꽃이 매력적인 트로케티아.

마스카렌 제도에서 적철과 나무는 위기에 처한 유일한 식물이 아니다. 이는 불행하게도 가장 아름다운 식물들이 처한 현실이다. 예컨대 진홍빛과 장밋빛 혹은 순백으로 눈부시게 채색된 거대한 꽃이 매력적인 트로케티아(trochetia)가 있다.

카카오과에 속하는 마스카렌 제도의 풍토성 종인 트로케티아는 군도를 2세기 반 동안 점령했던 강력한 식물군이었다. 모리셔스에만 자생하는 다섯 가지 종과 레위니옹에서만 발견되는 한 가지 종이 있다. 이 종들 중 파비플로라(paviflora) 트로케티아는 1840년 이후 모리셔스 섬에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종은 이때부터 소멸된 것으로 분류됐다.

접근 불가능한 장소에 한 개체가 생존해 식물학자들에 의해 종 보존이 가능해진 히비스커스 릴리플로루스(망드리네트).

트로케티아처럼 히비스커스도 환상적인 꽃을 피운다. 모리셔스 동쪽과 로드리게스에 속한 작은 섬에 매우 선명한 오렌지 색깔의 꽃을 피우는 유별난 히비스커스 릴리플로루스(Hibiscus liliiflorus)가 있는데, 이 섬에 거주하는 크레올(유럽인과 현지인의 혼혈)들이 ‘망드리네트(mandrinette)’란 예쁜 이름을 붙였다.

이 종은 단 하나의 개체만이 접근 불가능한 장소에 남아 있었다. 그 덕분에 이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식물학자들은 모리셔스의 팜플무스 정원, 레위니옹의 마스카랭 식물원, 프랑스 낭시식물원 등에서 이 종을 보존했다.

멸종 직전 성 전환을 통해 종 보존에 성공한 돔베야 모리티아나. 이는 식물계에서 세계 최초의 화학적 구원으로 기록됐다.

모리셔스의 풍토성 소관목인 돔베야 모리티아나(Dombeya mauritiana)의 운명은 기이하기 짝이 없다.

브레스트 국립식물원이 마스카렌 제도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유일하게 생존한 하나의 개체를 발견했다. 이 나무는 암수로 구성돼 있는데 발견된 개체는 수그루였다. 1993년 국립식물원은 적당한 호르몬 요법을 통해 이 나무의 꽃을 암그루의 꽃으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트랜스젠더 꽃들은 수그루의 꽃가루에 의해 수정이 됐고 씨앗과 새싹을 선사했다. 멸종 직전에 이른 식물에 대한 세계 최초의 화학적 구원이었던 셈이다.

꺾꽂이에 성공함으로써 레위니옹의 여러 정원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뤼지아 코르다타와 그 꽃(원).

레위니옹의 건조하고 양지바른 바위 비탈에만 자생하는 뤼지아 코르다타(Ruizia cordata)는 작은 장밋빛 꽃을 피우는 풍토성 종이다. 이 나무의 독창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이성이 강한 나뭇잎에 있다. 하나의 나무그루에서 너도밤나무, 플라타너스, 단풍나무, 심지어는 인도 대마와 흡사한 나뭇잎을 발견할 수 있다.

매혹적인 잎이 우거진 이 나무는 ‘백색 향료의 나무’로도 불린다. 이름처럼 약재로 많이 사용된 덕택에 약초채집자들의 집중적인 약탈 대상이 됐다. 1983년 마지막 남은 두 그루가 소멸한 것으로 보고됐다. 그 이듬해 같은 자리에서 또 다른 하나의 개체가 발견됐지만 이미 약초채집자들에 의해 가지가 잘리고 껍질이 벗겨진 뒤였다. 다행히 브레스트 국립식물원이 꺾꽂이에 성공한 덕분에 지금은 레위니옹의 여러 정원에서 볼 수 있다.

모리셔스에 30여 개체만이 보존되고 있는 야자수 테티피알라와 테티피알라의 그림을 넣은 우표.

모리셔스에는 보호받는 야자수가 있다. 텍티피알라(Tectiphiala)는 키가 대략 2m 가량이며, 가시가 많이 돋아나 있다. 이 작은 야자수의 전체 개체 수가 30그루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리셔스 큐리피프 식물원에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히오포르베 아마리아큘리스의 최후 개체. 사람들은 이 야자수를 '가장 외로운 나무'라고 부른다.

히오포르베(Hyophorbe)라는 마스카렌제도의 풍토성 야자수는 모리셔스에 3종, 로드리게스에 1종, 레위니옹에 1종이 존재할 뿐이다.

이 가운데 주병야자와 방추야자의 친척뻘인 모리셔스의 히오포르베 아마리아큘리스(Hyophorbe amariaculis)는 큐르피프 식물원에 단 하나의 개체만이 남아 있다. 통상 ‘가장 외로운 야자수(loneliest palm)’로 불린다.

여름철 모리셔스는 열대성 저기압이 잦은 탓에 번식을 위한 시도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개체는 모리셔스의 아름다운 식물원에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모리셔스에는 잎이 길게 늘어진 희귀종 소관목이 있다. 매우 드물게 개화하고, 따라서 열매가 열리는 일도 예외적인 우유나무다.

1986년 8개의 씨앗을 품고 있는 열매 하나가 발견돼 마스카랭 식물원에 맡겨졌는데, 이 열매로부터 7개의 새싹이 텄다. 이 나무는 번식력이 거의 전무한 상태인 데다 꺾꽂이를 해도 변변치 못해 소멸직전 상태다.

이 나무의 이름, 타베르나에몬타나 페르시카리아에폴리아(Tabernaemontana persicariaefolia)는 16세기 독일의 식물학자 타베르나에몬타누스에 헌정된 데 따른 것이다. 약용식물로 널리 활용되는 협죽도과에 속한다.

이 식물의 멸종은 세계자연유산에 있어서도 중대한 손해다. 타베르나에몬타나과에 속하는 식물종은 약효가 강한 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신약개발에서도 활용가치가 높다.

신약개발에 활용가치가 높지만 번식력이 거의 전무해 멸종위기인 타베르나에몬타나 페르시카리아에폴리아.

생존경쟁 없던 환경에서 이뤄진 인간의 침입

쐐기풀(nettle)에 속하는 오베티아 피시폴리아(Obetia ficifolia)는 따끔거릴 정도로 찌르는 소관목이다. 뤼지아의 잎처럼 이 나무의 잎도 변형이 많다.

레위니옹에 이 식물의 자생지 네 곳이 있고 여러 식물원에서 재배되고 있다. 풍토성 나비의 애벌레는 이 식물의 나뭇잎만을 먹는다. 이 식물이 사라지면 이 식물에 기생하는 나비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오베티아 피시폴리아가 멸종하면 이 나무에 기생하는 레위니옹 나비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격한 악취를 풍기는 오베티아의 줄기는 레위니옹과 모리셔스의 오래된 크레올식 주택의 골조로 사용됐다. 이 나무에서는 절대 썩지 않도록 기름이 새나왔다. 게다가 나무껍질은 해열제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베어지고 껍질이 벗겨져 희귀종이 돼 버린 나무의 자생지는 건조한 숲의 흔적인 협곡에 국한됐다. 자생지가 매우 국한된 식물들이 그렇듯 이 나무의 번식은 거의 전무하다. 자생지는 이 식물의 마지막 무덤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악취나무’와 마찬가지로 흑단목은 영국인과 프랑스인이 도착하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부터 막대한 벌채를 감수했다. 모두가 풍토성인 각기 다른 17종이 마스카렌 제도에 존재했는데, 이미 10종은 멸종했거나 멸종 직전에 이르렀다.

1940년 이래 자연계에서 사라졌다가 1980년 로드리게스에서 재발견된 라모스마니아 헤테로필라.

‘카페 마롱’으로 불리는 라모스마니아 헤테로필라(Ramosmania heterophylla)는 1940년 이래 자연계에서 사라졌다가 1980년 로드리게스에서 재발견됐다.

나뭇잎 하나는 얇고 길게 늘어졌고, 다른 하나는 명백하게 보다 크고 보다 짧은 형태를 띠고 있다. 나뭇잎의 이질적 형태는 이 섬의 식물계에서는 흔하지만, 아직까지 그 원인은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1986년 모리셔스 정부는 위기에 처한 이 종의 생존을 위해 두 개의 꺾꽂이를 영국 왕립 큐식물원에 보냈다. 꺾꽂이는 성공적이었고, 몇 개의 샘플이 현재 큐식물원 온실에 보존돼 있다.

화려한 야자수의 풍모를 한 난초과 식물 안그라에쿰 팔마툼(Angraecum palmatum)은 1870년 마지막 개체가 발견됐다.

안그레아쿰 팔라툼. 1880년 식물학자 코르드무아의 부인 에우독시 코르드무아의 수채화. 모리셔스 식물도서관.

발견자는 프랑스 식물학자 코르드무아였다. 이 식물학자의 부인 에우독시가 남긴 수채화가 그 식물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1993년 레위니옹의 식물학자 뒤퐁이 자연계에 남아 있던 두 개체를 다시 발견했다. 멸종된 것으로 분류됐던 식물의 예기치 않은 부활에 전 세계 식물학계가 환호했다.

마스카렌 제도에서는 수많은 식물이 긴박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식물들의 유일한 생존 기회는 이들이 충분한 성숙단계에 이르러 자생지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식물원으로 운반되는 일뿐이다.

그러나 환경의 문제가 제기된다. 마스카렌 제도는 마다가스카르,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인도, 중국 등에서 사람들이 차례로 이주했거나 점령했다. 이 인간 종들은 그들의 가축과 재배할 수 있는 식물을 함께 들여왔다. 이것들은 풍토성 식물로 하여금 혹독한 생존경쟁을 치르게 했다. 거의 생존경쟁이 존재하지 않던 환경에서 침입을 당한 터라 풍토성 식물은 대개 경쟁자들에게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