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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무의 인간 혐오, 야요이의 더 뜨거운 생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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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무의 인간 혐오, 야요이의 더 뜨거운 생의 의지
  • 유현주
  • 승인 2019.04.0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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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주의 문학과 미술 사이] ‘인간 실격’과 ‘점, 무한의 세계’
유현주 미술평론가 | 미학박사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첫 문장이 시작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 <인간실격>은 그의 사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살아갈 이유와 존재 근거를 찾지 못하고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빠져들게 한다.

태평양전쟁과 패전 그리고 마르크시즘과 학생운동 등이 격동하던 시절 무려 5차례의 자살을 시도하던 그는 실제로 1948년 겨우 38세의 나이로 강에 투신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지극히 퇴폐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강렬한 이 소설이 아이러니하게도 패전 이후의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삶의 비극성은 더 커지는 법이지만 인간에게서 그 어떤 희망도 볼 수 없다고 하는 이 소설에서 어떤 위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인간실격>, 인간에 대한 회의 혹은 허무주의 예찬?

이 소설은 ‘나’라는 사람이 우연히 어느 다방에서 만난 지인인 바의 마담으로부터 소설의 재료가 될지 모른다고 건네받은 세 장의 사진과 노트에 실린 3개의 수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 편의 <수기> 내용은 ‘오바 요조’라는 도호쿠 지방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 주인공의 기이한 삶의 행적에 관한 것이다. <수기>에 등장하는 인물 요조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어둡고 퇴폐적이다.

주인공 요조가 어린 시절부터 관찰했던 인간의 어둡고 잔인하며 부조리한 내면, 그리고 인간에 대해 깊이 절망하면서 스스로 ‘어릿광대’의 가면을 쓴 이야기로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어 더욱 폐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실로 드라마틱하다.

예를 들면, 요조는 어릴 적 집안의 머슴과 하녀로부터 순결을 잃은 것을 폭로하지 않고 그 사건을 통해 인간의 한 가지 특질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거나, 아버지가 일부러 사다 준 사자탈 같은 선물도 자신은 전혀 마음에 없지만, 아버지가 실망하거나 분노할까 봐 아예 그 반대로 기뻐하는 척 연기를 한다.

혹은, 어느 날 아버지와 친한 정치인이 마을 연설회를 가진 이후에 그의 동료들이나 식구들이 아버지의 강연이나 그 정치인의 연설에 대해 뒷담화를 하였으면서도 아버지 앞에서는 칭찬을 늘어놓는 것을 보게 된 것은 어린 요조가 인간의 사악한 면을 예민하게 느낀 계기들이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2004년, 민음사.

어린 요조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은 도대체 신뢰할 수 없고 두려운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늘 ‘익살’의 가면을 쓰며 살아간다. 요조가 가족들과 찍은 사진에서 기괴한 표정을 지은 것도 바로 그러한 인간에 대한 혐오 때문이다.

그러한 혐오는 그 후로 요조가 삶의 양지보다는 술, 담배, 매춘, 약물중독 등 사회의 그늘 쪽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 된다. 인간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수기 3편에서 절정에 달한다.

사람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주는 요시코를 만나 동거하면서 가까스로 안정된 삶을 살던 요조는 어느 날 친구 호리키와 옥상 파티를 하던 중 아래층에 있던 요시코가 잠시 집에 방문한 어떤 상인의 꼬임에 넘어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들을 우연히 먼저 보고도 말리지 않았던 호리키에게도, 인간을 전혀 의심할 줄 몰랐던 요시코에 대해서도, 주인공 요조는 단순히 분노를 느끼는 것 이상으로 좌절하고 인간에 대한 어떤 기대도 내려놓게 된다.

왜 이렇게 필자는 요조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일까? 요시코는 어쩌면 요조에게 있어 인간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술 냄새를 풍겨도 이미 술을 끊었다고 선언한 요조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무조건적 신뢰는 요조가 그동안 보아온 어떤 인간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그러나 그 믿는다는 행위 자체도 이 소설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변질된다. 요조는 요시코가 그 상인을, 아니 인간 자체를 믿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다자이의 <인간실격>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맹목적 생의 의지’들이 빚어내는 무지막지한 폭정의 세계라고 규정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요조는 바로 세상을 그렇게만 바라보고 그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인간이란 종이 되길 거부한 것은 아닐까?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인가? 허무함을 극복하고 더 뜨거운 생의 의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필자는 쿠사마 야요이의 <점, 무한의 세계>에서 바로 그러한 생을 향한 어떤 능동적인 힘을 만난다.
 
#.쿠사마 야요이, 무한히 반복되는 ‘점’을 통해 긍정의 세계로

우리에게 점(dot)의 작가로 알려진 쿠사마 야요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1929년 나가노현 출생의 쿠사마 야요이는 현재 정신병원에서 살면서 그 안에 작업실을 마련해 90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열정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사마 야요이의 점무늬 작업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시달려온 불안장애, 강박 장애, 환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바람둥이 아버지와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탓에 미술공부를 반대한 부모를 어겨 끝끝내 아티스트가 된 이유는 10살 때부터 끝없이 나타나는 둥근 점들의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다 못해 그것을 그리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쿠사마는 젊은 시절 뉴욕으로 건너가 1957년부터 73년까지 15년간 뉴욕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활동했는데, 여기서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오노 요코 등 유명 예술가들과 함께 활약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 후 1973년부터 20여 년간 아트딜러, 시인, 소설가로 활동한 것 외에도 무라카미 류 감독의 영화 <도쿄 데카당스>의 주연을 맡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도전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1993년 쿠사마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일본 대표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컴백하였고, 1996년 뉴욕을 시작으로 LA, MOMA, 휘트니 뮤지엄, 런던, 파리, 마드리드, 한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대만, 인도 등에서의 순회전, 2017년 도쿄 신미술관에서 10주년 기념 회고전 등 숱한 전시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미술계 바깥의 시장에서 루이 뷔통, 마크 제이콥스, 랑콤과 콜라보한 그녀의 점들은 세계 어딜 가서도 한눈에 쿠사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쿠사마를 찾는 마니아들을 낳았다.

2009년부터 쿠사마는 <점에 대한 강박(Dots Obsession-Love Transformed into Dots)> 시리즈의 작업을 해왔는데, 이는 정신병리학적이라 할 만한 그녀의 작업 특성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 작업은 미국에서 초기에 야요이가 시도한 작업들에서 연원한다.

‘빨간 호박’ 쿠사마 야요이, 2006년, 나오시마의 미야노우라 항. 카가와현한국연락사무소 제공.

먼저, 수채화 작품으로 한눈에 보아도 여성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여인(The Woman)>(1953)에서 우리는 어딘가 가학적이고 불안한 정서를 느낀다. “테이블보에 새겨진 붉은 꽃무늬들이 훨훨 날아 온방을 채우고, 내 육체와 우주를 가득 채우는 모습”의 환상에서 시작된 반복된 점들이 등장한 그림 <No. F>(1959)는 이후 ‘작은 점들 혹은 망사’로 보이는 <무한 망사 시리즈(Infinity Net series)>의 원조가 된다.

<축적(Accumulation)>(1962)이란 작업은 수많은 남근 모양의 솔기들로 채운 패브릭 의자를 만든 것인데, 유머러스하고 공격적이며 작가의 말처럼 가부장제에 대한 반감이요 도전으로 보인다.

실제로 쿠사마는 바닥에 수많은 마카로니 모양과 남근형상의 솔기들로 가득한 매트 위에서 자신의 누드 위에 그물망 인피니티 넷 페인팅을 하고 누운 채로 매우 도발적인 퍼포먼스를 한 작업 <강박 관념적인 성관계와 음식 집착, 마카로니 인피니티 넷과 쿠사마(Sex Obsession Food Obsession Macaroni Infinity Nets & Kusama>(1962)를 선보였는데, 이 역시 어릴 적부터 왜곡된 성에 대한 관념, 즉 두려움과 피해의식을 나타낸다.

그 어떤 작업보다도 가장 쿠사마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호박(Pumpkin>(1994) 시리즈일 것이다. 쿠사마는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호박밭에 갔을 때, 큰 호박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며 호박이 곧 ‘자신’이고 ‘자아’라고 말한다.

노란색의 커다란 호박 주름마다 그녀 특유의 땡땡이 점들이 일정하게 줄지어 마치 폴카 춤을 추는 듯한 <호박>을 보려고 매년 나오시마 섬을 찾는 관람객이 50만 명을 넘는다는 것은 놀라운 ‘쿠사마 이펙트’일 것이다. 왜 그토록 사람들이 이 땡땡이 호박에 열광하는 것일까?

쿠사마의 작업은 어찌 보면 농담 같기도 하고 키치스러워 보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상업적인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정신병원에서 현재도 작업의 끈을 놓치 않고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애써온 사실만큼은 한 인간의 치열한 자기 극복의 노력으로 보인다. 이는 자신의 삶에 닥쳐온 현실의 문제들과 환공포증을 적극적으로 이겨내고자 한 나름의 생존전략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쿠사마의 무한히 반복하는 점들은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가장 대담하고 생명력이 넘치며 세계를 긍정하는 인간”이 갖는 ‘능동적 니힐리즘’의 실천이 아닐까 싶다. 다자이의 <인간실격>이 세상을 부정하는 니힐리즘이었다면, 쿠사마의 점들은 긍정의 차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태도로 보인다.

사람들로 하여금 원색의 땡땡이 스티커를, 전시장에 설치한 가구와 벽 등에 붙이도록 한 쿠사마의 근작 <나를 사랑해 주세요(Give me Love)> 시리즈는 바로 그러한 세상과 자신을 포옹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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