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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가면 새로운 길이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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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가면 새로운 길이 열릴까
  • 김형규
  • 승인 2018.10.01 14:3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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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43>활기찬 오 페드루오소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여러 순례코스.

산티아고 도보 순례길은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y)부터 N-547 도로와 나란히 가다가 가끔 마을 뒤편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길 반복한다.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 팔라스 데 레이를 지나 오 코토(O Coto) 마을 도로변에서 선 채로 삶은 계란과 빵, 음료수로 식사를 대신했다.

조금 전 지나친 팔라스 데 레이와 조만간 나타날 멜리데(Melide), 아르수아(Arzúa)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남쪽의 마드리드, 세비야, 발렌시아에서 시작하는 순례길은 이미 지나쳤던 부르고스, 사아군, 아스토르가에서 프랑스 루트로 합류했다.

산티아고순례길의 주요 거점인 멜리데 마을 풍경.
N-547 도로에 세워진 아르수아 마을 안내표지판.

남쪽 순례길은 선호도가 높지 않다. 코스가 평이하고 무엇보다 한낮의 뙤약볕을 견디기 힘들다. 순례자들은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길을 가장 선호하고 프랑스 길보다 북쪽인 오비에도(Oviedo)에서 출발하는 프리미티보(Primitivo) 루트나 아예 북쪽 해안지대로 오는 북쪽 길(Camino del Norte)을 차선책으로 염두에 둔다. 프리미티보길과 북쪽 길은 팔라스 데 레이와 멜리데, 아르수아에서 프랑스 길로 흡수된다. 자연히 이 마을은 각 지에서 합류한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오비에도에서 시작하는 프리미티보 루트는 명칭인 ‘Primitivo’(원시의, 최초의, 처음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유서 깊은 카미노다. 9세기에 아스투리아스의 왕 알폰소 2세가 오비에도에서 첫발을 내디뎠다고 한다. 길이가 320㎞로 다른 순례길과 비교해 짧고 경관이 뛰어나 보름 정도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지만, 난이도 높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산티아고순례길에 푹 빠진 마니아들은 프랑스 길과 북쪽 길, 오비에도 길, 포르투갈 길을 몇 년에 걸쳐서 도전한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36㎞ 남았다.
오 페드루오소에 가까이 가자 순례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멜리데와 아르수아를 지나 1시간 반을 더 달려 오 페드루오소(O Pedruozo)에 도착했다. 여기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는 불과 20여㎞. 도보순례자들은 여기서 부족한 생필품을 구입하고 여정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자연스레 전국에서 집결한 순례자들로 도시는 활기를 띤다.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많은 순례객이 길거리에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지금까지 800여㎞를 비바람을 뚫고 걸어왔다는 걸 누구나 알기에 길거리 아무 곳에다 파김치 같은 몸을 의지해도 흉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오 페드루오소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젊은 순례자들.

아들과 멋진남님도 고무돼 있었다. 이제 넉넉잡아 1시간 30분 정도만 더 페달링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다.

산티아고대성당에 도달했을 때 기분은 어떨까. 멋진남님은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해 미사를 드릴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만 해도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끝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곱씹던 그였지만 차츰 자기만의 페이스를 익히며 늦더라도 꾸준히 달린 결과 완주를 눈앞에 둔 것이다.

아들의 표정도 밝았다. 한달음에 목적지에 날아갈 듯한 기세를 올렸다. 아들은 오 페드루오소에서 갑자기 불어난 순례자들을 보자 전우애가 발동한 듯하다. 꾀죄죄한 몰골에 하나같이 다리를 절거나 무릎보호대를 착용했지만, 표정만큼은 환한 그들과 행복을 공유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아 편안하게 동료와 보조를 맞춰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라이더.

어쩌면 여정의 가장 큰 기쁨은 목적지 바로 앞에 도달했을 때일지 모른다. 막상 목적지에 골인했는데 잔뜩 기대했던 감격스러운 장면이나 영험한 기운을 받지 못한다면 실망감은 오죽하겠는가.

꽤 오래전 온 가족이 1년간 세계여행을 다니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다. 며칠에 걸쳐 ‘산 넘고 물 건너’ 천신만고 끝에 꿈에 그리던 페루 잉카문명의 백미 마추픽추에 도달한 순간 10대 아들이 “겨우 이거냐”며 눈물로 실망감을 드러냈던 장면이 떠올랐다.

각자 상상하는 피날레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 기다려주길 염원하면서 마지막 길을 재촉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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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듦아재 2018-10-15 19:52:11
항상 고생스럽지만 끝이 보일땐 벌써 끝인가 싶기도 할 순간이 있죠. 사고없이 무사히 마치셨기를. ,

진교영 2018-10-01 16:44:45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힘내세요
뿌디 꿈꾸던 그런 피날래가 장식 죄기를 기원합니다
하지만 여행은 지나온 과정이 아닐까요
그 과정을 밟기위해 피날래가 작던 크던 비록 좀 초라하고 기운 빠지더라도 과정만큼은 평생 가슴벅차게 마음속깊이 자리잡아 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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