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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 이겨낸 기독교적 자부심, 철기 문명 발상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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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 이겨낸 기독교적 자부심, 철기 문명 발상지까지
  • 조석희
  • 승인 2018.09.23 09: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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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조석희의 코카서스3국 화첩여행 <2>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코카서스 3국이 신흥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코카서스 3국은 서아시아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한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3개 국가를 일컫는 말이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전까지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었다. 지리상으로는 아시아이지만, 역사․종교․문화적으로는 동유럽에 가깝다. 종교적으로 조지아는 동방정교,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정교,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교다.
 
세종시사생회 회장인 태도(太道) 조석희 화백이 화첩을 들고 코카서스 3국을 다녀았다. 그의 화첩에 담긴 코카서스 3국에 대한 여행기를 추석특집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조석희 화백 | 세종시사생회 회장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다. 아제르바이잔의 평원을 이동할 때 수없이 늘어선 유전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 조로아스터가 배화교를 창시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불의 언덕(Yanardag)은 수도 바쿠에서 차량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연중 맨땅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사실 이곳 말고도 지나는 곳곳에서 유전에서 나오는 가스를 태우는 불꽃들을 볼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배화교 신전을 볼 수 있었는데 배화교가 어찌 불을 숭배하게 됐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은 비록 이란 등지에 국한돼 신도가 소규모라고 하지만 배화교는 세계 3대 종교(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보다 먼저, 심지어 인도의 힌두교보다 앞서 탄생한 종교라고 한다. 특히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성의 요소들을 배화교 교리로 이미 설파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모든 종교의 뿌리가 아닌가 싶다.

메이든 탑(바쿠)
바쿠 모스크

나는 수도 바쿠의 상징인 불꽃타워가 현란하게 연출하는 불꽃 쇼를 배경으로 지리부도에서만 보아왔던 카스피해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시내의 많은 유적 중 메이든탑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옛 이슬람 왕국의 어느 공주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인 왕이 완고히 반대하자 공주는 사랑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탑을 세워줄 것을 간청했다. 정작 탑이 완성되자 공주는 그 탑에서 사랑을 그리워하며 몸을 던졌다고 한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다. 회교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터키 사이에 끼어 있어 이들 나라와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다. 터키로 가기 위해서는 직접 국경을 통과할 수 없다. 다시 조지아를 통과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르메니아로 가는 도로는 그야말로 엉망 그 자체다. 기후도 황량하고 터키로부터 핍박을 받았겠거니 생각이 들어 왠지 측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수도 예레반에 도착해서는 그런 생각들이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밝고 거리의 모습도 활기차 보였기 때문이다.

러시아, 터키 등 주변 강국과 회교국가들 사이에 끼여 수많은 외침을 받았음에도 꿋꿋하게 버텨왔다는 자존심, 세계 최초(AD 301년)로 국교를 기독교로 삼았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예레반 시가

저녁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일본인, 오스트리아인, 중국인 등을 만났다. 한국인 여자 한 분도 만났는데, 왠지 낯이 익은 듯했다. 놀랍게도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20여 년 전 가르친 졸업생이었다. 지금은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는데, 방학 중 여행 온 것이란다. 더구나 내가 퇴직해 지금 사는 세종시 우리 집 가까운 아파트에 살고 있단다. 세월이 많이 흘러 수만 리 낯선 곳에서 제자를 만난 기쁨까지 누렸다.

아르메니아는 신성함이 느껴지는 곳이 많았다. 구약성서에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다는 아라라트산도 보았다. 과거에는 아르메니아의 땅 이었었는데 지금은 터키가 강점해 멀리 국경 너머로만 볼 수 있었다. 에치미아진 성당에는 예수님 옆구리를 찌른 롱기누스의 창이 전시돼 있었다. 가르니에 있는 주상절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여기서 일행 중 3명은 사업상 일찍 귀국해야 해 먼저 터키로 출발했다. 남은 일행은 아르메니아에서 터키로 직접 갈 수 없어 다시 조지아로 향했다.

모스크(앙카라)

스탈린의 고향 고리와 우플리스치헤, 보르조미, 아할치헤성, 바르드지하 등을 돌아 마지막 흑해 연안 휴양지 바투미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어느 성당에서는 결혼식을 끝낸 신혼부부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전에 ‘이 지역 여인들은 모두가 김태희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일행 중 또 한 분이 개학 날에 맞춰 이스탄불로 떠났다. 그 여선생님은 처음으로 자유 여행에 동참했는데 혼자 비행기 예약시간에 맞춰 1박 2일을 터키에 더 머물러야 하는 여정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도중에 친절한 터키인들을 만나 식사 대접까지 받고 무사히 귀국했다고 카톡에 자랑스럽게 알려왔다.

카톡은 이번 여행에서 참으로 유용했다. 달리 통신 수단이 없어 로밍을 하면 되겠지만 그것은 낭비다. 대부분 숙소에 와이파이가 있어 이를 통해 일행들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어플 맵스미(Maps.Me)는 다음 우리의 행선지를, 부킹닷컴(booking.com)은 1일 전에도 숙소 예약을 가능하게 해줬다. 일행 중 하나가 소개한 통역 프로그램은 18개 국어 통역이 가능해 옛 소비에트 연방이었던 이번 여행지에서 매우 유용했다. 이러한 것들은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소중한 정보이며 내가 다음 여행을 준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바투미시계탑

다음 목적지는 인류 최초 철기 문명의 발상지인 히타이트족의 유적지 하튜샤다.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를 거쳐 지금은 정보화시대라 하지만 아직도 철기 문명의 위용은 줄어들지 않고 있지 않은가. 거대한 선박 빌딩들은 모두 철기 문명의 산물들이다. 독일 대학의 발굴팀들이 유적을 보수하고 있었다.

이곳은 역사적 의미가 크지만, 일반 관광객들의 패키지에는 잘 포함되지 않는 곳으로 우리 같은 배낭족들만 선택할 수 있는 코스다. 히타이트인들의 유적에 올라 잠시 청동 검을 가진 자들과 철제 검을 가진 자들의 싸움을 상상해 보았다. 목검과 청동 검의 한판 싸움과 같이 보지 않아도 비디오 아닌가.

다시 5시간 정도 이동해 앙카라에 도착했다. 이곳은 터키의 수도이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다. 강남 고속터미널 매표소 크기의 20배쯤 되어 보이는 창구들, 호객하는 여행사 직원들,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샤프란 볼루

다음 행선지는 샤프란 볼루.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가 아름다운 곳이다. 다음날 또 8시간을 이동해 이스탄불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정말 볼 것이 많은 관광지다. 특히 아이소피아 사원은 경이 그 자체였다. 박물관, 왕궁, 지하저수지 등 수많은 유적이 즐비하다. 터키는 다음 여행지로 남겨두자. 한국은 8월 한 달 동안 무척 더웠다는데, 여행 내내 나 혼자만 더위를 모르고 지낸 것이 식구들에게 미안했다.

사실 윤 선생이 이번 여행을 제안했을 때 나의 선택은 반반이었다. 한국전쟁 막바지에 태어나 외국 배낭여행은 익숙지 않다. 우리 연배의 친구들은 자유 여행보다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 내가 한 달간 자유 여행을 한다고 하니 모두 걱정해주었다. 그것도 영어권이 아니고 이름도 생소한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다.

특히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침공으로 터키군이 20만 명(비공식 통계로는 200만 명)을 학살한 아픈 과거를 가진 곳이 아니던가. 분쟁지역이라서 위험하지 않겠느냐며 친구들이 한 마디씩 염려해줬다.

코카서스의 신부
코카서스의 신부

요즈음 인터넷에 코카서스 3국 여행기가 많이 회자 된다. 내가 관광 여행기를 쓰려고 하지 않은 이유다. 나같이 퇴직 후 ‘삼식이’ 소리를 들으며 세월만 죽이고 있는 백수들에게 작은 용기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또 한 가지 자유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눈앞을 스치는 멋진 풍경을 스케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윤 선생은 통기타까지 가져와 숙소에서 ‘알함브라의 궁전’을 멋지게 연주해주기도 했다. 배낭여행객들이 서로 즐겁게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전체 일정을 따르느라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이다.

백수는 백 가지 일을 수행하는 자라고 한다. 백수들이여 빈손 여행을 떠나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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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신 2018-09-23 12:14:25
아제르바이잔이 조로아스터교가 창시된 지역이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조로아스터는 페르시아제국의 변방인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북부 대도시 Mazar-e-Sharif (마자레샤리프) 옆 동네 Balkh (발흐)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발흐는 한때 옛 실크로드의 도시중 하나로 번영을 구가했던 대도시였지만, 지금은 조그마한 소도시이지요.
그리고 조로아스터가 경전 Avesta의 첫장을 쓴곳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누쿠스 옆 Hojeili(호제일리)의 유적지 Mazdakhan(마즈다한)에서 썼다는 설이 있습니다.
발흐에서 호제일리까지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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