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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체육관을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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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체육관을 만든 이유
  • 박한표
  • 승인 2017.12.0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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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5-6>올림픽 창시자 헤라클레스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엘리스 왕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모두 청소하라.”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다섯 번 째 미션이다. 다시 말해 ‘더러운 소똥이나 치우라’는 것이었다. 아폴론과 포세이돈도 죄를 씻는 기간에는 라오메돈의 소똥과 말똥을 치운 적이 있다.

엘리스 왕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은 3000 마리의 소가 북적거리고, 30년 동안이나 청소를 안 한 아주 더러운 곳이었다. 엘리스 사람들은 더러운 것을 보면,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왕의 이름 뜻은 ‘빛나게 하는 자’다.

헤라클레스는 축사를 치워주는 대가로 소 떼의 1할을 요구했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하루해를 넘기기 전에 청소해야 하는 것이었다. 엘리스의 필레우스 왕자가 그 계약의 증인으로 나섰다.

헤라클레스는 인접한 강줄기를 끌어와 구멍을 통해 축사 안으로 흐르게 함으로써 약속한 대로 해가 지기 전에 청소를 끝냈다. 그러나 엘리스의 왕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헤라클레스를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증인을 섰던 아들 필레우스도 함께 쫓겨났다.

‘파르네즈 헤라클레스’ 글리콘, 대리석, 3.17m, 216년경,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이탈리아). Glykon, reproduced from the original by Lysippos

헤라클레스는 뒷날 12가지 미션을 모두 마친 뒤 엘리스 왕국을 쳤다. 아우게이아스 왕을 죽이고, 그의 아들 필레우스를 불러들여 왕좌에 앉혔다.

헤라클레스는 엘리스 왕을 물리친 후 승리의 기념으로, 엘리스 땅 올림피아에 경기장을 만들고는 경기대회를 창설했다. 근대올림픽의 기원이다. 올림피아에는 헤라의 신전도 있는데, 올림픽 경기 성화는 바로 이 신전 터에서 채화된다.

경기를 치를 스타디움의 길이를 정하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왼발, 오른 발을 번갈아가며 600보를 걸었다고 한다. 훗날 파괴됐지만 당시 올림피아는 헤라클레스가 만든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안에 제우스 신전과 제단, 헤라 신전 등이 있었다고 한다. 또 스타디움과 함께 체육관, 레슬링장, 숙소 등 각종 건물이 들어서고, 우승자의 동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대회가 시작되면 그리스 인들은 올림피아로 몰려들어 신전에 경배했다. 경기 못지않게 종교의식도 중요한 행사였던 셈이다. 올림피아 경기 대회는 신성한 경배의 장이자, 순수하게 경기를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

기원전 146년 그리스는 로마의 속주가 됐지만, 올림피아 경기대회는 그대로 계승됐다. 그러나 4세기 들어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금지령을 선포했다. 그에 따라 제우스를 받드는 올림피아 경기도 이교도들의 제전으로 규정돼 이듬해인 393년, 제293회 대회를 끝으로 그 막을 내렸다. 그 후 올림피아 신전도 파괴됐다.

올림피아에 남아 있는 신전 중 가장 오래된 헤라 신전. 올림픽 경기의 성화가 채화되는 장소가 바로 이 신전 터다.

올림피아 경기 대회는 근대 올림픽의 기원이다. 문헌에 따르면, 올림피아 경기 대회는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10여 개의 폴리스가 참여했지만, 이후 점차 확대됐다. 기원전 6세기경에는 대부분의 폴리스 대표들이 참가해 그리스 민족제전이 됐다.

경기는 4년 한 번씩 7월과 9월 사이 보름달이 뜬 날을 중심으로 5일 동안 개최됐다. 초기에는 하루 만에 모든 일정이 끝났지만, 종목이 하나둘씩 추가되고 참가 인원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행사 날짜도 길어졌다. 참가 자격은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으로서 제우스에 대한 불경을 저지른 적이 없어야 했다.

경기 종목은 달리기 경주를 비롯해 레슬링, 5종 경기(달리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레슬링), 전차 경주 등이 중심이었다. 이후 횟수를 거듭할수록 계속 종목이 늘어나 전성기에는 20여 종목에 이르렀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은 5종 경기였다고 한다. 올림피아 경기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승리의 월계관이 주어졌다.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철학자, 시인들도 참가해 문예와 예술 솜씨를 겨뤘다. 대회 기간 동안에는 100여 개 폴리스 간의 전쟁과 적대 행위가 중단됐다. 3개월 전부터 그리스 휴전이 선포되고, 사형도 연기됐다. 올림피아 경기를 통해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것은 물론 그리스 인들의 평화와 단합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근대 올림픽의 기본 이념이 됐다.

헤라클레스는 엘리스 왕을 물리친 후 승리의 기념으로, 엘리스 땅 올림피아에 경기장을 만들고는 경기대회를 창설했다. 근대올림픽의 기원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이 신과 같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는 없어도 심성과 육체를 단련해 신처럼 위대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인들은 어려서부터 운동경기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운 육체를 만들려고 애썼다. 학교이자 체육관이라 할 수 있는 아테네의 김나지움(Gymnasium)에서는 모두들 나체로 체조를 해야 했다. 그리스어 김노스(gymnos)는 ‘나체’를 의미하며, 김나지움은 ‘나체 체육관’이었다.

그리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기원전 5세기에는 모든 도시에 반드시 극장과 김나지움이 있었다. 그러나 용병이 출현하는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점차 체육의 중요성이 줄어 김나지움도 보통 학교처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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