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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 5개년 계획’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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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 5개년 계획’ 세우자
  • 강수돌 교수(고려대 경영학부)
  • 승인 2014.12.31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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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의 어깨동무사회 | 개성 있는 평등화

기업, 파이 공정분배·건강한 원천에 힘써야
정부, 노동시장·조세·사회보장 정책 바꿔야
시민, 지도자로 ‘고급 도둑들’ 뽑아선 안 돼

박정희정부 때인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됐다. 처음엔 경공업을 발전시킨다는 내용이었고, 갈수록 중화학공업으로 그 비중이 옮겨갔다. 그렇게 50년이 흐른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당시 약 80달러 수준에서 2013년 2만4000 달러 수준으로 약 300배 증가했다. 요컨대 우리는 50년 전에 비해 평균적으로 300배나 부자가 됐다. 예전엔 부자들만 향유하던 쌀밥과 고깃국, 자동차를 오늘날 웬만한 이들이 모두 즐기는 현실을 보라.

그러나 과연 우리는 300배까지는 아니라도 30배 더 행복하게 살고 있나? 아니면 30배 스트레스가 더 증가했을까? 필자가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학생이나 시민이 참여하는 강연장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90% 이상은 ‘해피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또 힘들게 일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이에 대한 답이 최근 나온 통계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은 전국 민간의 가계부채가 1000조원, 공기업 및 국가 등 공공부채가 1000조원, 그리고 민간기업 부채가 2500조원, 그리하여 현재 대한민국은 지난 50년간 열심히 경제성장을 한답시고 달려왔음에도 무려 4500조원에 이르는 빚더미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반면, ‘뉴스타파’ 등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극소수의 부자들은 해외 비밀계좌에 적게는 870조원에서 많게는 1700조 원까지 숨겨 놓고 있다. 허탈하지만,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50년 동안 뼈 빠지게 고생한 결산표다.

그나마 우리 사회 내부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빈익빈 부익부’로 요약되는 사회경제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한다. 이미 1971년에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 펜은 ‘난쟁이 행렬’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사람들의 소득 수준을 키로 나타내고 한 시간 동안 행진을 하게 했을 때, 처음엔 땅 밑에 묻힌 사람들(빚쟁이들, 파산자들), 다음엔 키가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난쟁이들(시간제 근로 여성, 신문배달 알바생)과 1미터 정도의 노인, 실업자, 노점상이 걸어가다가 총 60분 중 48분이 되자 비로소 평균 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58분이 되자 갑자기 2미터가 넘는 키의 대졸 엘리트 직원과 교장 선생, 다음으로 5미터가 넘는 군 고위 장교, 변호사가 나타나며, 마지막 몇 초 동안엔 키가 수십 미터나 되는 거인이 나타난다. 초국적 석유회사 쉘의 이사는 110미터이며 마지막 주자는 키가 너무 커 머리가 구름 위로 올라간다.

한편, 1974년엔 미국의 경제학자 리차드 이스털린이 ‘역설’을 발견했다.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갈 때까지는 사람의 행복도가 비례해 증가하나 일정 수준을 지나면 소득 증가에도 불구, 더 이상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우리가 ‘파이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건 좋지만, ‘파이의 분배’를 생각지 않거나, ‘파이의 원천’ 문제를 소홀히 한다면 결코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파이의 크기는 효율성, 생산성, 경제성장 등의 문제를 중시한다면, 파이의 분배란 공정성, 형평성, 평등의 문제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이의 원천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파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삶의 질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것, 즉 삶의 질을 희생시켜 삶의 양만 증가시키려는 것은 자가당착이란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삶의 질’은 건강과 여유, 존중과 평등, 인정스런 공동체, 조화로운 생태계 등이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가 ‘2014-2015 세계 임금 보고서’를 내고 “불평등은 노동시장, 특히 임금과 일자리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임금이 선진국, 개발도상국 등 모든 나라에서 가계 수입의 주요한 원천인 상황에서 노동시장은 증가하는 불평등의 뿌리”라는 지적이다. 또, 1999년 이후 지금까지 15년만 보더라도 “노동생산성에 비해 임금 상승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이는 자본 대비 노동의 국내총생산(GDP) 분배율 감소를 말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분배가 자본 소유주에 비해 계속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로살리아 바츠께스-알바레스 ILO 특별연구원은 “많은 나라에서 불평등은 노동시장에서 시작하며 특히 임금과 고용 분배에서 시작한다”고 밝혔다. 산드라 폴라스키 ILO 정책부국장도 “임금 정체는 공정성과 경제 성장의 문제로 극복돼야 한다”면서 “전반적으로 불평등은 임금 불평등에 의해 추동되기 때문에 노동시장 정책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비공식 부문의 여성, 이주민, 노동자가 불합리한 임금 격차로 고통당한다는 사실도 강조됐다.

ILO 보고서는 소득불평등을 해결하는 정책 대안으로 세금과 사회보장 정책을 포함한 재정 재분배 메커니즘 도입, 최저임금 인상, 단체교섭 강화, 취약 집단에 대한 차별 제한, 조세 정책, 적합한 사회보장 정책 등의 포괄적인 정책을 제안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소기업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필자는 바로 여기서 ‘평등사회 5개년 계획’을 차곡차곡 해나가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기가 배우고 싶은 걸 마음껏 배우고 사회에 나왔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아무 차별 없이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개성 있는 평등화’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기업, 정부, 시민이 모두 변해야 한다. 기업은 파이의 공정 분배와 파이의 건강한 원천에 더욱 힘써야 하고, 정부는 사회 전체의 평등화를 위해 노동시장 정책과 조세 정책, 사회보장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시민들도 불평등사회에서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 더 많이 갖고 가려는 태도를 버리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평등사회 건설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런 변화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선 정의로운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정치경제 지도자들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 더 이상 ‘고급 도둑들’을 우리의 지도자랍시고 뽑아선 안 된다. 국·영·수 등 시험 문제를 틀리는 경우 새로 답을 알면 되지만, 지도자는 한번 잘못 뽑으면 우리 삶이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지고 만다. 지난 50년의 교훈이다. 이제 더 이상 망가져선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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