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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민중적 영웅서사의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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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민중적 영웅서사의 변형
  • 권도경 세명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인문기술연구소 소
  • 승인 2014.10.2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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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기술 랩 | 한국적 고전영웅서사 원형의 특질③

질서 순응적 부모에게 태어난 영웅의 비극적 운명
친부모는 자식 살해하거나 남의 부모와 살해 공모
‘아기장수’, 현대적 미디어소설 ‘각시탈’로 재해석


할리우드와 다른 한국적 고전영웅서사 원형의 출발점은 ‘부모 트라우마(trauma)’다. 신화적 영웅일대기에서 의붓부모가 강제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웅이 탄생한다. 그 예가 <주몽신화>다. 그런데 영웅에게 트라우마를 강제하는 대상이 의붓부모가 아닌 친부모가 되면 영웅일대기로 전개되기 이전 단계, 즉 <단군신화>같은 신화적 영웅서사가 된다. 일반적인 고전영웅서사에서는 친부모에 의한 자식의 트라우마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바가 없다. 남의 부모가 트라우마를 강제하면 신화적 영웅서사는 영웅소설로 장르가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트라우마는 남의 부모와 내 부모가 충돌한 결과다. 즉 부모의 트라우마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면서 영웅으로 탄생하는 방식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이 영웅소설적 영웅서사원형을 현대적으로 재생산한 경우다.


마지막으로 민중적 영웅서사를 살펴보자. 민중영웅인 자식의 부모는 영웅이 아니다. 신화적 영웅이 만들고 영웅소설적 영웅이 관리하는 세계의 질서에 지배받는 피지배 계층이다. 이 민중영웅의 부모는 신화적 영웅과 영웅소설적 영웅이 만들고 관리하는 세계의 법칙을 내면화 한 존재다. 이들의 이념은 세계의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식이 영웅이라는 게 문제다. 그것도 현 세계의 질서를 관리할 주도권을 두고 영웅소설적 영웅과 대결할 정도의 능력을 넘어선, 새로운 질서를 창안할 수 있을 정도의 클래스다. 현 세계의 질서에 따르고자 하는 순응을 자기 이념으로 삼고 있는 민중 출신의 부모는 자식이 현 세계의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을 터. 현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고자 하는 부모가 가진 자식에 대한 살의가 바로 민중영웅의 일생을 지배하는 트라우마의 실체다.


아기장수 서사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가하는 트라우마는 한국고전서사원형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아기장수 서사의 기본형에서 자식인 민중영웅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곧바로 살해당하기 때문이다. 신화적 영웅이 만든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고자 하는 부모의 이념이 새로운 민중의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아기장수의 이념을 압도하기 때문에 자식의 비극이 탄생하는 것이다. 조력자라도 있다면 구출·양육 되어서 부모에 의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신화적 영웅이라도 될 텐데, 원천적으로 조력자가 부재한 아기장수에게는 부모에 의한 트라우마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


당장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음 세대의 주도권을 미리 확보한 남의 부모와 대결하여 패배한다. 게다가 나의 부모는 민중영웅인 자식을 배신한다. 남의 부모와 결탁하여 은거지를 누설하는 등 자식에게 트라우마를 안긴다. 남의 부모와 공모해 간접적으로 자기 자식을 살해하는 식이다. 이처럼 부모가 가한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바로 민중적 영웅서사가 신화적 영웅서사에 대해 가지는 서사적 변별 지점 중의 하나다.


아기장수 서사를 현대적 미디어소설(media novel)로 재생산한 작품이 드라마 <각시탈>이다. 그런데 내 부모가 자식의 원조자가 되는 변형이 이루어진 경우다. 그래서 내 부모에 의해 가해지는 자식의 트라우마를 극복한 지점에서부터 서사가 출발한다. 내 부모는 자신과 자식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남의 부모가 내 자식에게 강제하는 이념에 맞서 내 자식을 돕는다. 내 부모가 자식인 민중영웅의 이념에 동조하는 것으로 변모한 결과 둘은 항일(抗日)과 위민(爲民)이라는 이념적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는 운명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대신 민중영웅인 자식은 세상의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남의 부모들이 내 부모에게 준 내 부모의 트라우마를 자신의 트라우마로 계승해서 극복하기 위해 싸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남의 부모에 의한 내 부모의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자식인 영웅의 트라우마로 전이 되는 것은 영웅소설적 영웅의 일생이다. 아기장수 서사가 설화의 시대에서 매체의 시대로 이동하면서, 민중영웅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설화에서 소설로의 장르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각시탈>의 1대 각시탈 이강산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드라마 <각시탈>의 2대 각시탈 이강토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친일(親日) 이념의 노선을 걸으면서 세계의 질서를 주도하는 남의 부모들과 결탁하고, 부모의 항일 이념과 충돌하면서 오히려 트라우마를 안긴다. 정치적인 윤리성이 남의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부모에게 있는 만큼 일견 안티히어로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친일의 길을 걷는 것도 자신이 좋아서가 아니라 남의 부모에 의해 몰락한 가문을 재건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남의 부모가 야기한 내 부모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면의 상반된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남의 부모가 만들고 유지하는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기 위해서 친일을 한 것이 아니라 내 부모와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서 선택한 순응이라는 점에서 순응이 아닌 순응이다.


2대 각시탈 이강토가 남의 부모가 만든 질서에 의해 내 부모가 희생당하는 순간 표면적인 순응을 접고 내 부모의 트라우마를 나의 트라우마로 계승하는 영웅 캐릭터로 전변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내면의 이중성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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