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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이냐 화투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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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이냐 화투패냐
  • 고경석 기자
  • 승인 2016.05.25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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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영화 | 추석 극장가 한국영화 라이벌전

올해 추석맞이용 한국영화는 단 두 편이다. <명량>으로 한국영화 흥행사를 새로 쓴 CJ엔터테인먼트는 김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최루성 가족드라마 <두근두근 내 인생>을 준비했고, <해적>으로 여름시장 2등 전략에 성공한 롯데엔터테인먼트는 2006년 680만 관객을 모은 <타짜>의 속편 <타짜-신의 손>을 내놨다. 두 영화 모두 지난 3일 개봉했다.


울리고 또 울린다

진부했다. 그러나 슬펐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면 손수건을 준비하는 게 좋다. 눈물의 성분은 바람과 햇빛에 말린 천일염보다 세심한 손길로 불순물을 제거한 정제염에 가깝다. 인생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아우르는 대신 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를 수 있도록 차분하고 섬세하게 죽음과 맞닥뜨린 감정의 흐름을 좇는다.
열일곱의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된 대수(강동원)와 미라(송혜교)는 선천성 조로증 탓에 급속히 늙어가고 있는 열여섯 살 아들 아름(조성목)이를 보살피는 게 삶의 전부다. 하루만 지나도 성큼 다가오고 있는 비극이 아니라면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가족이다. 아이가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착한 부모, 체념 속에서도 작은 희망 하나를 품고 싶어 하는 착한 아이. 영화도 이들 가족처럼 한없이 착하다.


새롭지도 다채롭지도 않은 이야기에 비해 117분이라는 상영시간은 다소 길게 느껴진다. 병간호 외에 굵직한 사건이 없는 데다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고 극 전개는 밋밋하고 단조로운 편이다. 눈물을 쏟아낼 만한 장면이 중반 이후 다수 배치돼 있어 응집력이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눈물을 쥐어짜는 사건을 끼워 넣는 대신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보여주려 애쓴 덕에 최루성 드라마치곤 감정의 동요가 요란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특정 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가 아니라 앙상블이 좋은 영화다. 일상의 평범함을 연기하는 송혜교·강동원의 조화, 삶과 죽음을 관조하게 만드는 백일섭과 조성목의 대화가 영화에 감칠맛을 더한다. <정사> <스캔들-남녀상열지사> 등을 연출한 이재용 감독의 색깔이 드러나는 부분도 결국 극을 만드는 방식보다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데 있는 듯하다.


속고 속이는 인생사

흥미로웠다. 그런데 익숙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속편이라는 사실을 잊는 게 좋다. <타짜>가 토너먼트라면 <타짜2>는 리그전 같다. 1편에서 고니(조승우)가 평경장(백윤식)과 정마담(김혜수), 고광렬(유해진)을 거쳐 아귀(김윤석)와 맞붙는 과정은 고수에 이르는 긴 여정과 같았다. 반면 2편에서 대길(최승현)은 매우 일찍 고수가 된다. 실력을 겨루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배신이라는 이름의 탁구 경기에서 승자가 되는 것이다.


삼촌 고니를 닮아 남다른 손재주를 지닌 대길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진출해 타짜가 되지만 악덕 사채업자 장동식(곽도원)을 만나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연히 고광렬을 만나 다시 일어선 대길은 동식에게 복수를 꾀하는 한편 전설의 타짜 아귀와 한 판 승부를 벌인다.


2시간 30분에 이르는 <타짜2>는 마치 2편의 영화를 붙여놓은 듯하다. 대길의 승승장구를 그린 전반부는 흥미진진하다. 현란한 편집과 빠른 리듬, 재치 넘치는 유머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반면 대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후반부는 펼쳐 놓은 패를 일일이 주워 담느라 질질 끄는 인상을 준다.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는 1편과 달리 2편은 배신이라는 게임 안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실력이 고만고만한 선수들끼리 폭탄 돌리기 하는 느낌이랄까.


관객이 패를 쥐고 화투 게임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지 못한 건 이 영화의 패착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흥미가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구원투수 유해진의 짧고 굵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대길이 동식, 아귀와 맞붙는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룹 빅뱅 멤버인 최승현의 활기 넘치는 호연, 이하늬의 연기 변신, 중량감 넘치는 곽도원의 악역 연기가 아니었다면 훨씬 일찍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강형철 감독은 스타일리스트로서 재능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반면 <과속스캔들>과 <써니>에서 보여준 이야기꾼의 재능은 끝내 살리지 못하고 말았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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