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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호러’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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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호러’의 걸작
  • 김지용(영화감독)
  • 승인 2016.05.25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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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쉐이크 | ‘엑소시스트’

여름밤 무더위 잊는 방법 ‘공포영화’

악마 존재… 기독교 지식 전제돼야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철이면 시원한 극장에 앉아 무서운 공포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더위를 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오싹하고 괴기스런 장면을 보면서 비명을 지르고 나름대로 스트레스도 날려버린다.

꽤 오랫동안 동안 공포 영화라는 장르를 본 기억이 거의 없는 듯하다. 아무래도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너무 잘 알다 보니 그다지 큰 흥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재난과 사건 속에 살다보니 공포 그 자체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 장면만 떠올려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각각의 마음속에 상반된 감정의 모순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용어로 이를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 현상이라고 부른다. 카타스트로피는 역전을 뜻하는 그리스어 ‘katastroph’가 어원으로, 예기치 못한 일이 정반대로 뒤집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솔로몬의 ‘정서의 반대과정’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언제나 서로 대립하는 한 쌍의 정서를 동시에 느끼는데, 대립하는 두 정서 중 처음 우세했던 정서는 반복될수록 약해지고 약했던 정서는 반복될수록 강해진다고 한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아찔한 자이로드롭을 타면 탈수록 무서움이나 공포보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공포영화도 처음에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유발하지만 공포영화에 익숙해질수록 두려움보다 짜릿한 쾌감이 우세해진다. 공포영화는 주로 죽음이나 분노, 죄의식, 원한 같은 원초적인 감정을 다룬다. 이는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이지만 평소에는 쉽게 표출하기 어려운 억눌린 감정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분출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영화에 있어서 호러라는 장르는 그 성질에 따라 스플래터(splatter)나 슬래셔(slasher), 카니발리즘(cannibalism), 고어(gore) 그리고 오컬트(occult)와 같은 몇 가지 장르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오컬트의 걸작이랄 수 있는 영화가 <엑소시스트>(1973)다.

오컬트 호러라는 것은 그 말 뜻 그대로 초자연주의, 신비주의를 다루는 영화다. 보통 다른 공포 영화에 비해 다소 무겁고 진지하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 무지하다면 오컬트 호러를 이해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악마의 존재와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고고학적 발굴 작업에 여념이 없던 메린 신부는 작은 조각품을 발견하는데, 악마를 의미하는 징표를 보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한편, 미국 동부의 조지타운, 이혼 뒤 딸 리건과 살고 있는 인기 배우 크리스 맥닐의 집에서 어느 날부터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딸 리건에게도 이상한 증세가 나타난다.

크리스의 집에서 파티가 있던 날, 리건은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말을 하며 카펫 위에 오줌을 싸는 등 비정상적 행동을 보인다. 이후 리건은 병원에서 정상 판정을 받지만 점점 적대적 행동을 보인다. 급기야 어머니인 크리스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결국 크리스는 엑소시즘을 행하는 신부를 찾게 되고, 악령과 사투를 벌이던 중 메린 신부는 심장마비로 죽는다. 리건 속의 악령이 카라스 신부에게 옮겨가게 되자 그는 창밖으로 몸을 던져 죽는다. 그의 희생으로 리건은 정상으로 돌아온다.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1971년 소설 <엑소시스트>는 1949년 미국 동부 메릴랜드에 살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다. 제작단계부터 많은 화제를 낳으며 만들어진 이 작품은 개봉과 함께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소설가 스티븐 킹은 <엑소시스트>를 ‘사회적 호러 무비’(socio-horror movie)로 정의하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문화적 갈등이 극에 달했던 1970년대 초 미국 사회를 반영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보았던 기성세대들은 악령에 사로잡힌 리건의 모습을 보며, 우드스탁 페스티벌(1969)에서 열광하던 젊은이들을 연상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사실 영화에서도 의사 중 한명이 크리스에게 “혹시 아이가 약물을 하느냐”고 묻는데, 이것은 당시 틴에이저에 대한 기성세대의 일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는 가정과 아이와 교회 같은 보수적 가치를 일순간에 무너트리는데, 이는 이른바 ‘아메리칸드림’의 붕괴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영화에서 크리스는 자신이 촬영하는 영화에 대해 “호찌민 이야기의 월트 디즈니 버전”이라고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표현은 당시 사회상을 재치 있게 요약한다.

곧 우리나라를 방문할 프란체스코 교황은 교회법상 국제 퇴마사 협회를 인준단체로 인정했다고 한다. 이는 엑소시즘과 악마 혹은 악령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하니 올 여름 밤이 더욱 오싹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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