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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영리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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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영리한 변화
  • 황혜진(교수, 목원대TV 영화학부)
  • 승인 2016.05.2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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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사회 | ‘말레피센트’

재해석의 유희, 현란한 테크놀로지와 결합

시대와 관점 따라 변화무쌍한 동화의 변신

황혜진 교수
황혜진 교수

얼마 전, 공주 자매인 엘사와 안나가 백마 탄 왕자의 도움 대신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겨울왕국>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유치원생들도 주제곡 ‘렛잇고(Let it go)’를 흥얼거릴 정도였으니 이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했던 미키마우스를 포함해 다양한 캐릭터들과 스토리를 보유한 디즈니가 부럽기 짝이 없다. 더욱이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포스트모던 시대, 재해석이 창조에 버금가는 덕목이 되었으니 디즈니의 레퍼토리는 이미지와 스토리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디즈니의 새 영화 <말레피센트>는 재해석의 즐거움과 결합한 현란한 테크놀로지를 자랑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원형으로 하지만 공주가 아니라 마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새로운 해석의 핵심이다. 물론 디즈니는 이미 <인어공주>(1989)에서부터 아름답지만 남자의 도움 없이는 해피엔딩을 맞을 수 없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해 왔다.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시장의 패권을 탈환하려는 야심의 결과였겠지만, 예를 들어 <미녀와 야수>의 벨의 매력이 그녀의 미모가 아니라 지성과 독립심에서 왔다는 점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신선했다.

<말레피센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오로라 공주에게 16세 생일이 지나기 전에 물레에 찔려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질 거라는 저주를 퍼부은 마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18세기 이후 서유럽 사회의 주류가 된 부르주아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동화가 지향했던 선과 악의 지나치게 단순한 구분법에 질문을 던진다. 이미 TV 시리즈 <원스 어폰 어 타임>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동화들을 뒤섞어 스토리의 재해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듯이, 이 영화 역시 선악의 이분법은 물론 자연과 인간의 대립 역시 ‘원래 그러한 것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공들여 전달한다.

이런 맥락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어린 요정 말레피센트를 비롯해 온갖 존재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왕국 무어스의 시각적 재현이다. <아바타>의 미술을 담당했던 로버트 스트롬버그 감독은 2D로 봐도 입체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환영을 만들어냈다. 이성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의 태곳적 자연에 대한 어린 시절의 상상과 어느 부분 맞아떨어지기도 하는 매혹의 공간인 셈이다.

무어스를 찾은 인간 소년 스테판은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는 진정성으로 말레피센트의 마음을 얻는다. 어른이 된 요정과 인간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스테판은 영원한 사랑의 키스를 남기지만, 어느새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은 그는 왕국을 차지할 야심으로 말레피센트의 생명과도 같은 날개를 잘라버린다. 스테판 역시 여느 인간왕국의 왕처럼, 차이가 존중되고 사랑과 활기가 넘치는 무어스를 정복의 대상, 지배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타자로 인식해 착취함으로써 환경적 재난을 초래했다면, 이 영화 속 말레피센트는 배신으로 절망한 자연이고 스테판은 오만하고 미련한 인간 이성의 은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일까? 말레피센트의 저주가 작동해 오로라 공주는 진정한 사랑의 키스가 아니면 진짜 영원한 잠에서 깨어날 수 없는 것일까? 12세 관람가 영화답게 이 영화가 제시하는 답은 그리 구체적이거나 거창하지 않다. 저주를 걸었던 대상인 오로라 공주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짓게 된 말레피센트의 모성이 갈등을 풀 단서이다. 자신의 신분도 모른 채, 왕궁을 떠나 숲속 오두막에서 지냈으니 인간의 탐욕을 배웠을 리 없고 온전히 자연의 언어를 몸에 익혔을 터, 있는 그대로의 순수를 간직한 오로라 공주를 지켜보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갖게 된 말레피센트의 키스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담긴 키스였던 것이다. 결국 길을 지나가다가 관에 누워 있는 백설공주를 보고 한눈에 반한 왕자가 없이도 오로라 공주는 잠에서 깨어나 대리 어머니인 말레피센트로부터 무어스와 인간왕국을 통합할 여왕으로 지명된다. 말레피센트 안에 존재하던 악이 오로라 공주에 대한 사랑으로 소멸되었음은 물론이다.

영화를 보면서 말레피센트의 마음이 너무도 쉽게 녹아내리는 플롯이 마땅치 않을 수도 있고 스테판의 인물화가 너무도 평면적인 점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공감가지 않을 악역을 맡았을 리 없으며, 어린이와 동반하는 영화라는 점을 상기하고 넘어가는 편이 흥미를 갖고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이다. 어쨌듯 뮤턴트들의 시간여행을 담은 X맨 시리즈 최신판을 가볍게 제치고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음은 물론이거니와, 동화나 신화, 설화와 같은 원형적 스토리란 시대와 관점에 따라 재해석될 수 있다는 팁을 얻으면 금상첨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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