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쌓인 질병 하루아침에 치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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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쌓인 질병 하루아침에 치유 안 돼
  • 김유혁(단국대 종신명예교수)
  • 승인 2014.08.06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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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이야기 | 불위야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

가능성 국민에 투영시키는 지도력 절실

대통령-국민 소통 중간관리계층에 막혀

개인 양심회복, 사회 정의구현 노력해야

김유혁 교수
김유혁 교수

"왕지불왕은 불위야이언정 비불능야라(王之不王 不爲也 非不能也)." <맹자> ‘양혜왕(梁惠王)’편에 나와 있는 글귀다. 즉, 왕으로서 왕도정치를 펴지 못하는 것은 왕이 하지 않기 때문이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지도자가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지 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맹자가 제선왕(齊宣王)에게 했던 말에서 유래한다. 원래 황자(皇者)는 명일자(明一者)를, 제자(帝者)는 달도자(達道者)를 의미한다. 그리고 왕자(王者)는 통덕자(通德者)를 일컫는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황제(皇帝)는 명일달도자(明一達道者)이며, 제왕(帝王)은 달도통덕자(達道通德者)이다.

명일(明一)이란 우주만물의 이치와 천지 및 해와 달의 운행원리에 밝다는 뜻이다. 황자에게 천황(天皇)이라는 칭호의 사용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도자(達道者)라는 것은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 법도를 깨닫고 있다, 즉 유물유칙(有物有則)의 도를 달통한 지도자라는 의미다. 왕은 덕화력(德化力)으로서 인륜(人倫)에 밝고 사리(事理)에 통명한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에서 황과 제와 왕이 지니는 공통점은 첫째, 수심치기(修心治己)의 도리를 높은 수준에서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요, 둘째는 여민동락(與民同樂)과 응믈유칙(應物有則)의 운율(運律)에 밝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 두 가지의 조화원리를 깊이 터득하여 인간시간(人間時間)보다는 우주시간(宇宙時間)을 더 존중하면서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심은 천심으로 통한다는 논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수광 선생은 <병촉잡기(秉燭雜記)>에서 사람의 마음은 활물(活物)이기 때문에 마음이 죽으면 살아나기 어렵고 마음이 살아있으면 죽지 않는다고 했다. 심활불사론(心活不死論)의 철학을 통해 맹자가 말하는 불위야(不爲也)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가르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투영(投影)시키는 지도력도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비불능야(非不能也)의 민혼(民魂)적 기운을 북돋아야한다. 그것이 진정 양민(養民)하는 리더십이 아닌가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직해야 한다. 정직하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게 되고 따라서 청렴한 생활로 모두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아울러 맑고 깨끗한 정치풍토를 성숙시켜갈 수 있다. <논어>에서 정(政)은 정야(正也)라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현실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중간관리계층이 정직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에게만 정직하기를 기대하면서 자신들의 정직성에 대해서는 되돌아보기를 게을리 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문제도 대통령이 풀어갈 것을 일방적으로 기대하는 성향이 짙다. 자신들에 의한 소통통로의 옹새현상(壅塞現象)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정직과 원칙에도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정직에는 100%의 정직이 있을 뿐, 90%의 정직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 모자라는 정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정직이 아니다. 그리고 원칙에 있어서도 비원칙이 10%라도 가미된다면 그것도 이미 원칙이 아니다.

공직사회의 비리는 거의가 세금수납과 국고금의 집행과정에서 발생한다. 국민이 낸 100%의 세금이 수납과정에서 10% 유실되고 국고에 90%만 납입되었다면 그것을 가리켜 상향적 누수(上向的漏水)라 한다. 반대로 국고 예산집행과정에서 국고지출 100% 중 집행현장에는 70%만 지급되고 있다면 그것을 일컬어 하향적 누수(下向的漏水)라 한다.

소통문제도 그렇다. 상의하달(上意下達)과 하의상통(下意上通)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상하로 통달시켜야할 역할은 어느 계층에 속하는가? 물론 중간계층이다. 중간의 순환기능이 원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으로 중간계층의 정직성과 순환기능의 활력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정직한 사회 및 소통이 원활한 사회풍토의 성숙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른바 투입요소(input)가 신출(output)이라는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중간과정인 순환기능(through-put)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달려있다. 순환의 현상은 반드시 두 가지 중의 하나로 나타난다. 하나는 선순환의 현상이요, 다른 하나는 악순환의 현상이다. 선순환은 사리에 맞는 정상적인 현상이며, 악순환은 사회정의에 부합되지 아나하고 상도(常道)에 어긋나는 현상이다. 선순환사회의 풍토를 성숙시키기 위해 우리는 지금 비정상의 정상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는 양심의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정의 구현에 노력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최규하 대통령 이후 여섯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30년에 이른다. 이 시간동안 청탁도(淸濁度)는 상불청 하부정(上不淸 下不淨)의 탁속(濁俗)이 짙은 편이었다고 해도 그릇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일각에서는 성급하다 못해 새 정권이 들어서서 무엇이 나아진 게 있느냐고 말한다.

<신음어(呻吟語)>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몸은 온전하지 않고(多病者無完身), 오랜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몸에는 기가 빠져있다(久病者無完氣). 30년간 누적된 질병이 하루아침에 치유될 수는 없다.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한다. 기대를 크게 갖고 희망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동력(動力)을 조화롭게 전달할 수 있는 치차(齒車)와 같이 각자의 역할에 먼저 충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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