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모순이 공존하는 두터운 세상을 위하여
상태바
모순이 공존하는 두터운 세상을 위하여
  • 박한표(EU문화연구원 원장)
  • 승인 2014.01.13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서양 문화와 정신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기둥이 그리스 로마 문명과 기독교 사상이다. 이것을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이라고 부른다. 서양의 문화는 이 두 개의 상반된 사상의 흐름이 교차하면서 형성되었다.

헬레니즘 사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찾을 수 있고, 헤브라이즘의 기록은 성서이다. 그러므로 성서와 더불어 그리스·로마 신화에 담긴 내용은 서양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성서와 함께 그리스·로마 신화를 잘 모르고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유럽을 여행가면 미술관의 회화나 조각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돌덩어리나 우스꽝스러운 그림 조각으로 보일 뿐이다.

성서의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의 사상이다. 반면 그리스·로마 신화의 헬레니즘은 인간 중심 사상이다. 인간을 세상과 우주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그려진 신들은 기독교의 신과는 다르다. 그들은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인간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도 않다. 죽지 않고 죽음을 초월한다는 사실 외에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우스는 인간 사회의 왕처럼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동시에 최고의 바람둥이로 화려한 여성편력을 과시한다. 질투의 화신 헤라는 바람난 남편을 쫓아다니며 투기나 일삼는 보통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며, 아레스는 인간의 증오심과 파괴본능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이 서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사랑의 결실로 영웅들이 태어나기도 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이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경배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닌 이유다.

기독교의 헤브라이즘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바라본다면, 그리스·로마 신화의 헬레니즘은 현재의 삶을 더 중요시한다. 현실의 삶이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할지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기독교의 구원과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그리는 헬레니즘은 신이 아니라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내세가 아닌 현실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모순을 공존하게 하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대가리는 황소인데, 몸뚱이는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는 모순의 혼합물이다.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성의 입장에서 이성과 비이성은 모순적인 것으로 공존하기 힘들지만, 비이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성도 하나의 사유일 뿐이다.
이성과 비이성이 따로 모순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화적 상상력은 모순되는 것을 서로 공존시키고, 이야기의 결론을 쉽게 내리지 않고, 똑같은 소재로 무수한 복사물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오늘의 시대에도 신화가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헤브라이즘의 기독교는 모순을 ‘악’이라고 부르며, 제거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실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결격사항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 결여들을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을 굳게 지니고 있다. 여기서 교조적인 내용이 나오고, 독단적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반대되는 것을 없애지 않고 공존시킨다. 어떻게? 상상력의 힘으로. 다른 것, 대립적이고 모순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세상이 너무 얇아진다. 끼리끼리 뭉쳐 패거리를 만들며 타자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함께 읽으며,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두터운 세상, 타자를 긍정하며 이해하는 열린 세상, 넉넉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읽어야 할 만큼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양의 여러 문학 작품이나 미술 작품 등의 예술 분야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내용이 자주 등장하여 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는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리스·로마 신화는 우리 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연설이나 신문, 대화 등에서 자주 비유로 등장하는데, 판도라의 상자나 나르키소스의 수선화, 이카로스의 날개와 추락, 하데스의 페로세포네 납치 사건 때문에 생긴 4계절 등은 자주 회자되는 말과 내용들이며 미네르바, 에로스, 에코, 박카스 같은 신들의 이름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현실과 초자연의 세계를 오가는 무수한 사건들은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