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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유효한 형제애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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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유효한 형제애의 메아리
  • 한동운(음악칼럼니스트, 목원대 외래교수)
  • 승인 2013.12.24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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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여행 |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 빌려 인류에 메시지 전해
자필 악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교향곡·성악 결합, ‘통섭’의 가치 실현


"오 친구여, 이 선율이 아니오! 좀 더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환희. 환희여!…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 도다. 모든 인류는 한 형제가 된다.…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진실한 우정을 얻은 자여,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다 함께 모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자연의 품에서 환희를 마시고. 태양이 떠오른다. 기뻐하여라.… 모든 사람아, 서로 포옹하라!… 온 세상 위한 입맞춤을!…"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환희의 송가>(Ode to Joy, 1785) 중 발췌한 내용이다. 송가를 읽어 보면 그가 꿈꾸는 세상과 계몽주의 사상과 같은 당대의 이념을 읽을 수 있다. 특히 ‘환희’, ‘형제’, ‘우정’, ‘선물’, ‘태양’, ‘사랑’, ‘포옹’, ‘입맞춤’, ‘광채’ 같은 단어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이 담긴 이러한 ‘글’(文)과 ‘음악’이 결합했을 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언어가 되고, 그 언어는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음’ 그 자체가 된다. 이것은 마치 대자연의 경관 앞에 마주 섰을 때 느껴지는 ‘그것’, 그리고 한편의 예술 작품에서 경험하는 ‘그것’과 같다. 굳이 가장 어울릴 법한 단어를 찾자면, "숭고함" "경외심" "위대함" 정도랄까.

1824년, 모든 인류가 한 형제가 되기를 바랐던 쉴러의 염원이 40여 년 만에 다시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9번(Symphony No. 9 in D minor, Op. 125)으로 다시 탄생한다. 베토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해 인류의 평화와 자유, 박애 정신의 기틀이 되는 형제애를 교향곡 9번 4악장을 통해 천명(闡明)했다. 또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사적인 가치에 치우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노래함으로써 예술 작품(Masterpiece), 즉 ‘숭고함’과 ‘위대함’ 그 자체가 된다. 그래서일까, 2001년 이 위대한 작품의 자필 악보는 인류가 보존해야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인류애와 같은 거시적 세계관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풍모도 잘 드러난다. 그가 이 작품을 작곡할 당시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장애를 비웃기라도 하듯 교향곡 9번을 완성하였다. 물론 그가 연주자가 아니라 작곡가였다는 점에서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 음악가로서 모든 것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9번 전체를 들어보면 과연 청력을 상실한 사람이 이렇게 완벽한 곡을 쓸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런 점에서 그를 악성(樂聖) 혹은 불굴의 예술가로 평가한다.

또한, 순수 기악곡인 교향곡에 독창과 합창을 사용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교향곡의 관습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을 그려낼 새로운 유형의 교향곡, ‘합창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교향곡과 성악의 결합, 우리 시대의 언어를 빌리자면 ‘융합’, ‘통합’, ‘통섭’의 가치를 실현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일명 ‘합창 교향곡’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가장 선호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물론 그 이유가 방대한 연주의 규모나 음악의 극적인 효과, 음악의 심미적 아름다움이나 베토벤의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세계 곡곡의 전쟁과 내전·종교 분쟁·이념 간의 대립·자연재해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극심한 빈부격차·부정부패·환경파괴·인권 유린이 만연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의 형제애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의지가 간절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90여 년 전 베토벤이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빌어 인류에게 천명했던 형제애의 메아리는 2014년을 기다리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2013년 12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는 여느 해보다 절절히 가슴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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