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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도 못 보내는 ‘국민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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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도 못 보내는 ‘국민행복’
  • 이충건
  • 승인 2016.11.23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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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지어도 끝없는 ‘누리과정’ 대란

국공립 일원화 ‘명품계획’ 실패 탓
민간 대체시설 가능케 대책 내놔야

 

지난 20일 오전 8시경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 BRT 정류장. 일단의 노파가 버스에서 내렸다. "지금 도착했어." 한 할머니가 전화에 대고 말했다. "휴~"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종종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 속으로 사라졌다. 매일 아침 정류장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른바 ‘행복도시로 출퇴근하는 할머니.’ 행복도시에 사는 아들딸이 맞벌이 부부여서 노인들이 늙어 고생이다. 손주를 유치원 통원버스에 승하차시키고 집에서 보살피는 게 주 임무다.

행복도시의 현주소가 이렇다. 집 근처에 멀쩡한 국공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네 곳, 내년이면 다섯 곳이나 되지만 내 맘대로 보낼 수 없어서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내년 3월 미르유치원이 개원하지만 사정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한솔동 3개 유치원이 원생 공개추첨을 했는데 무려 426명이 불합격했다. 행복도시 전역으로 중복지원을 허용했다고 하더라도 최소 200세대 가량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구할 수 없을 것이란 추산이 나올 정도.

올해는 그나마 지난 3월과 9월 개원한 도담유치원(도담동)이나 연세유치원(어진동)으로 통원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해 자녀를 보낼 수 있었다. 도담유치원의 90%, 연세유치원의 10% 정도가 한솔동 세대 자녀다. 그나마 가까운 대전에서 기꺼이 지하철이며, BRT를 타주는 노부모라도 있으면 다행이란 소리는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은 사정이 다르다. 도담유치원의 한 교사는 "내년 합격자의 대부분이 도담동 입주예정세대여서 한솔동 원생이 크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1생활권 입주가 늘어날수록 유치원 대란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첫 시행된 ‘만5세 누리과정’이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올 3월부터 3~4세 과정이 추가돼 ‘3~5세 연령별 누리과정’이란 이름으로 통합됐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구분 없이 동일한 내용을 배우고, 부모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22만원의 동일한 보육료 또는 유아학비를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박근혜정부 4대 국정기조 중 하나인 ‘국민행복’의 일환이다.

그런데 행복도시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다. 내 돈 더 주고도 대한민국 아동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보살핌과 배움을 받지 못하거나 받지 못할 우려가 커서다. 국공립 외에 대안이 없어 문제를 키웠다. 민간시설을 선택할 여지를 아예 차단시켜놔서다.

보육·교육대란은 행복도시의 정주여건을 논할 때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일 문제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길 수 없다면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진다. 양성평등 시대는 물론 ‘창조경제’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정부세종청사 어린이집은 현재 2곳, 다음 달이면 3곳이 더 문을 연다. 청사 공무원은 아이 보낼 곳 없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행복도시는 철저히 과천을 옮겨놓는 수준에서 건설 중이란 얘기다. 공무원보다 훨씬 많은 일반국민이 모여 이름에 걸맞게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도시가 돼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읽히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차 강조한 ‘국민행복.’ 유치원도 못 보내는 부모가 공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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