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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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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4.07.05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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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作 현이도(장기놀이)

 

조영석 作 현이도(장기놀이). 18세기

더운 여름날 소나무 그늘 아래서 선비 여럿이 장기를 두고 있다. 벼락이 쳐도 모를 기세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 내용이 딱 이 모습일 것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 장르를 연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의 `현이도(賢已圖·장기놀이.18세기)`다. 감상의 백미는 장기 삼매경에 빠진 여섯 인물의 익살스런 표정과 자세를 음미하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을 독특한 감성으로 포착한 풍속화가 조영석 특유의 화법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다. 

죽은 말이 수북이 쌓여 있고 장기판에 남은 말은 몇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장기는 막바지에 다다른 듯하다. 장기를 두는 선비 표정에서도 읽혀진다. 쪼그려 앉아 갓끈을 만지작거리던 선비가 말을 옮기며 장을 친 모양이다. 승리를 확신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설 기세다.

반면 낙천건을 쓴 상대방 선비는 죽은 장기 알만 매만지며 난감해 한다. 외통수에 속수무책인 표정이다. 바로 옆에 탕건을 쓴 선비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지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다. 댕기머리 총각은 벌떡 일어나 엉뚱하게 헛부채질을 하면서 훈수를 할 태세다. 그리고 뒤쪽에 갓 쓴 선비는 복기를 하는지, 아니면 아직 수를 읽지 못한 탓인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앞쪽 사방건을 쓴 선비는 쌍륙과 바둑판을 곁에 두고 판이 끝나면 곧 이어 판을 벌일 심사다.

더위에 지쳐 글 읽기에 꾀병이 난 선비들의 일탈이 마치 희극의 한 장면 같다. 공자도 선비들의 장기놀이를 은근 슬쩍 거든다. `배불리 먹고 하루 종일 마음 쓰는 데가 없으면 딱한 일이다. 그럴 바엔 장기라도 두는 것이 현명하다(爲之猶賢乎已)`고 했다. 현이도란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공자가 딱히 장기 두는 것을 권장한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이 선비들의 취미생할을 합리화하는 전거가 되었다고 한다. 

화기(畵記)에 밝힌 내력도 흥미롭다. 그림이 훼손돼 일부 글자를 확인할 수  없으나 뜻은 대강 이렇다. 
성중(成仲)이 중국의 팔준도 2점을 가져와 현이도를 그려 달라고 부탁해, 왕희지가 거위 대신 도교 경서를 써준 것이 생각나 흔쾌히 그려 주었다는 내용이다. 성중은 당대 최고 그림 수장가였던 김광수다.

이 그림에는 당대 최고의 풍속화가 조영석의 재능뿐 아니라 당시 최고의 그림 애호가인 김광수의 기호와 안목이 반영돼 완성된 것이다.  그림 제작 이력이 확실한 작품이다. 당시로선 아주 귀했던 중국 그림 두점씩이나 주고 부탁한 그림으로, 꽤나 유명세를 탔던 작품이다. 

예술 작품을 놓고 거래의 득실은 섣불리 따질 게 못 된다. 취향과 안목이 기준이다 보니 그렇다. 그리고 그림이 담고 있는 얘깃거리가 넉넉해 감상하는 재미를 더해주니 오늘날 이 그림을 감상하는 후세대한테는 크게 남는 장사가 아닌가.

나무 그늘이 그리워지는염천의 계절에 그림 거래로 쏠쏠하게 재미를 더해준 관아재와 성중 김광수의 혜안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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