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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시장의 느낌이 있는 월요편지(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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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시장의 느낌이 있는 월요편지(51)
  • 최민호
  • 승인 2024.05.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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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아름다운 사람, 석가헌(夕佳軒)
최민호 세종시장
최민호 세종시장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어둠이 깃들기 시작할 때, 한 나그네가 마을 어귀에 도착했습니다.
"석가헌(夕佳軒) -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마을 표지석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마을 저쪽, 어스름한 가로수 길 아래에서 선율 고운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따라 나그네는 발길을 옮겼습니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 곳에 바이올린 연주자만 덩그러니 홀로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듣는 이, 지나가는 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를 위한 연주를 하나요?"

연주자가 말했습니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니요...저기 서 있는 느티나무가, 가로수가, 옆에서 자라고 있는 벼이삭이 듣고 젖소와 송아지도 제 소리에 살이 오르고 있지요. 저녁이면 마을의 모든 이를 위해 바이올린을 켭니다. 이곳은 저녁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니까요."

나그네는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어둠이 깊어지자 가로등에 하나, 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각기 다른 색의 은은한 불빛 등이 환상적이었습니다.

바이올린 남자는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이곳의 가로등은 낮의 햇빛을 간직하고 있다가 밤에 빛을 냅니다. 그래서 무지개색으로 빛나지요. 태양빛을 머금다가 저녁에 색을 내기에 자연이 선사하는 불빛이라 할 수 있지요. 빛깔은 태양이 선사하는 것이지만, 밝기는 보름달이 어루만지는 선물이지요.

이 가로등은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과 총총히 반짝이는 별빛보다 더 밝게 켜지거나 어두운 법이 없습니다. 비가 오나 구름이 끼나 한결같이요...”

문득 바이올린 남자의 눈에 나그네 손에 들린 가죽케이스가 들어왔습니다. 나그네는 플루트 연주자였고, 새로운 악단을 찾아 나서던 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에 그대와"라는 곡을 합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음이 어우러진 연주는 점점 무르익었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가로등 불빛은 점점 밝아졌습니다. 이윽고, 카페에, 레스토랑에.. .과일가게에도... 불이 들어왔습니다.

거리는 색색의 등불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아름다운 연주에 보답하듯, 비용을 치르지 않았어도 카페에선 커피를 내려주었고 옷가게에서는 옷을 내어주었습니다. 바이올린 남자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에는 세상에 차고 넘치는 세 가지가 없습니다. 돈, 욕심, 그리고 경쟁입니다. 그 대신 세상에는 드문 세 가지가 넘칩니다. 순수, 품격, 그리고 배려지요.

우리는 누구든 하늘이 준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은 사실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각자 가진 재능을 최선을 다해 나눈다면 세상에 가난하거나 억울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풍요로운 곳입니다. 순수하게 자기 재능에 최선을 다하고, 품격있게 자기를 지키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만 있다면 다 가능한 일입니다"

말을 잇지 못한 나그네는 문득 살찐듯 두둑한 머핀 빵에 커피가 그리웠습니다. 주저하는 나그네를 바이올린 남자가 이끌고 카페에 들어가자 카페 주인은 훌륭한 연주에 감사한다며, 빵과 커피를 내주었습니다. 탄복한 두 음악가는 과분한 대접에 두어 곡을 더 연주했습니다.

카페 문밖에선 온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주에 열화같은 박수로 호응해 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한 만족감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재능을 두 손 가득 담아왔습니다. 목장 주인은 우유를, 포도농장 주인은 와인을...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을 나그네는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지만 남의 재능을 넘보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품격...

"석가헌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마을 사람들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하지요. 맑은 낮의 태양이 노을을 아름답게 만들듯이, 저녁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젊은 나날이 맑아야 합니다. 원래 그러해야 했던 세상의 이치대로 말입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저도 여기에 살아도 될까요?“

그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살든, 머물든, 지나가든, 여기서는 누구든 마음대로입니다. 세 가지만 버리신다면... 돈, 욕심, 경쟁... 말입니다” 나그네의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여기는 저녁이 아름다운 마을이니까요.

5월의 마지막 주 마지막 토요일 저녁, 우보고택(牛步古宅)에서 석가헌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모처럼 찾아준 30년 전의 일본인 친구 가족과 우리 시와 인연이 있는 불가리아, 싱가포르 대사 내외, 영국, 독일, 러시아, 일본인 지인들,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석가헌의 오랜 회원들, 100여 분과 함께 세종시의 풍류(風流) 나그네들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저녁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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