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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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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하는 것인지?
  • 박종훈(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
  • 승인 2013.10.0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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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신부의 동행

"보신탕 드실 줄 아세요?"라는 말을 두 글자로 줄이면? 답은, "개 혀?"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개 혀?" 이렇게 묻는다면, "그렇다"는 분도 계실 것이고, "아니다"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그 사회에 뿌리 내린 문화와 자라온 환경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는 대답에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다만, 이 같은 질문을 통해서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어떤 특정한 음식을 특별히 가리는 것, 말하자면 편식하는 모습이 주변에서 보기에는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았을 때, 자녀들이 편식하지 않도록 밥상머리에서 교육하는 것은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여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습니다만 그와 더불어서 편식하지 않음으로써 주변에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을 만큼의 식사 예절을 함양시키기 위한 목적도 포함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보니, 유별났던 어린 시절의 식습관이 생각나 부끄러워집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제가 먹을 수 있는 고기라고는 통닭과 삼겹살이 전부였고 생선 중에는 멸치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삼겹살은 고기인지? 과자인지? 모를 만큼 새까맣게 태워서 먹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머니가 뭔가 새로운 음식(그것이 동태찌개든, 돼지 두루치기든, 매운탕이든, 보신탕이든)을 차릴 때마다, "한 입만 먹어보라"며 어르는 부모님과 "절대로 먹을 수 없다"며 코를 막고 입을 다무는 저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유별난 식습관에 일대 혁명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그 계기가 바로 신학교 입학입니다. 한 학기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방학을 맞이하여 집으로 돌아온 여름의 어느 날, 본당 신부님께서 점심을 먹자며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가자시는 대로 발길을 옮겨 한 음식점에 도착하였는데, 순간 저는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음식점 입간판에는 "○○ 보신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순간, ‘평생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식당을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진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 그래도 삼계탕이 있으니까…’하는 일말의 바람을 담아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각 자에게 메뉴 선택권을 주실 거라는 저의 기대는 정말이지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에 불과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아줌마, 여기 보신탕 넷이요!"하고 주문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지? 못 먹는다고 말씀을 드릴까? 아니, 그러면 안 되겠지?’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 보글보글 끓는 탕 네 그릇이 쟁반에 담겨 나왔습니다.

음식이 나온 마당에 뒤늦게 "못 먹겠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네 사람이 한 식탁에 둘러앉았으니 먹는 시늉만으로 상황을 넘기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눈을 질끈 감고 한 수저를 입에 떠 넣었습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절대로 먹을 수 없다고 여겼던 음식을 제 자신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놀라운 일들이, 보신탕을 계기로 하여 메기 매운탕, 추어탕, 과메기, 홍어, 회, 토끼탕… 기타 등등을 통해서 계속 벌어졌습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못 먹는 음식은 없다는 사실을. 다만 못 먹는다고 스스로 규정해놓고 안 먹는 음식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단 이 같은 사실은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도, 운동도, 취미도, 사람과의 관계도 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애초부터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못한다고 스스로 규정해 놓고 안하는 것뿐입니다.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사람이, 건강상으로도 좋으려니와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각오로 도전하는 사람이, 사회적 심리적 정신적 영적 차원에서 더 건강한 사람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못 한다"고 선을 긋고 자신 안에 갇혀서 도전하기를 포기하기 보다는 "그동안 안 해 본 것이니까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자신 앞에 놓인 것들에 용기를 갖고 도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도 "나는 못 한다"고 확언하시는 분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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