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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주체를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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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주체를 일깨우다
  • 정승태(침례신학대 종교철학)
  • 승인 2013.08.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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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 르네 데카르트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누구나 감각에 의한 선입견 가질 수 있어

르네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

대륙의 이성론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이 같은 발전에는 그들의 노력이 크게 좌우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중세철학자들과 베이컨, 홉스와 같은 사상가들의 노력도 한몫했다고 보인다. 이성론이란 영국의 경험론과 대비되는 사상이자 견해다. 이성론이란 철학에 수학의 자명한 원리를 소개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이고, 이 지식이 근대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선을 보였다. 이 흐름에서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등장은 이전의 시대와 선을 긋게 함으로써 근대철학의 아버지란 호칭을 얻게 되고, 근대의 시대를 보다 명확한 색상으로 덧칠하게 되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표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표지

데카르트, 그는 누군가. 그는 1596년 독일 투렌에서 출생했다. 브르타뉴 의회의 고문이었던 아버지 조아생 데카르트는 아들을 라 프레슈의 예수회 신학교에 보냈다. 그곳에서 데카르트는 철학, 수학 그리고 논리학을 배웠다. 약 6년 동안 그는 그곳에서 끊이지 않는 내면의 의문과 회의를 야기한 철학 이론들보다는 확실하고 명확한 수학 이론들에 더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한 동안 그는 네덜란드에 정착을 했는데, 그곳에서 널리 알려진 많은 책들을 저술했다. 그 책들은 <방법서설>(1637), <제1철학을 위한 성찰>(1641), <철학원리>(1644), <정념론>(1649) 등이다.

가톨릭 신자인 데카르트는 그의 평생에 걸쳐 밝히고자 했던 것이 다름 아닌 확실성에 대한 추구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책들을 버리고 현존하는 이 세계에 천착하였는데, 이는 이 세계가 바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될 수만 있다면, 많은 곳으로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배경과 기질 그리고 다른 조건을 갖춘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그는 이 같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철학자들의 추상적인 삶과 일상인들의 구체적인 삶과의 차이와 괴리 등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세계론>을 완성했다.

그러면서도 데카르트는 여전히 확실성에 대한 탐구를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렇다면 그가 도달한 것은 뭘까. 그건 다름 아닌 확실성을 추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확실성이 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더라도 확실성을 탐구하고 있고, 기존의 것에 대한 비판과 부정을 통해 무엇인가 알려고 하는 자신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생각하는 주체라는 거다. 생각은 많은 것은 포함하는데, 생각은 반성, 검열, 비판, 부정, 의심과 같은 사고의 활동이다. 그렇다면 데카르트가 염두에 둔 것은 ‘숨 에르고 코기토’(Sum ergo cogito)가 아니다. 즉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이 없는 존재는 인간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생각하며 사는가. 생각은 이처럼 중요하고, 그 생각이 우리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 없이 주어진 일에 수동적인 기계처럼 활동하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다른 영장류인지 모른다.

데카르트는 <철학원리>의 첫 문장을 이렇게 적고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살아가는 동안 한 번은 가능한 한 모든 것에 관하여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의심을 철학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그는 일생동안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여 왔던 것들을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럴까. 인간은 바로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방법에도 절차가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첫째, 그는 우리가 일단 의심하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어린 아이로 태어나면서 이성을 사용하기도 전에 감각적인 것들에 의해서 모든 사물들을 판단해 왔기 때문에 그 결과 우리는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진리의 확실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 같은 선입견들은 방해거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선입견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살아가는 동안 한 번은 조금이라도 확실치 않다는 의혹을 품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의심하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데카르트는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녔지만 다소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가 동시대의 과학자 갈릴레오가 가톨릭으로부터 파문을 당해 가택연금을 당했다는 소식에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것을 연기했다. 신부이자 철학자인 코플스톤은 이렇게 증언한다. "데카르트는 <세계론>의 출판을 연기할 만큼 자신 없고 소심한 행동을 보였다."

그는 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1650년 2월 11일 스웨덴이라는 타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데카르트는 분명 사상의 거장이다. 그는 인간들에게 사유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 사유가 인간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분명 그의 공헌은 크다. 회의하고 이해하며, 긍정도 하면서 부정도 하며, 비판하고 스스로 자기 검열도 하는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한지 모른다.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같은 사람의 말에 맹신하거나 맹종할 수 없다. 이는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오류를 가지고 있고 감각에 의해 선입견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명제가 오늘의 현실에서 큰 공명으로 울리는 것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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