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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봄을 기다리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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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봄을 기다리는 소년'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1.09 0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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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 박노수 '류하'...세종시 전의면 금사리 출신
청명한 색채, 여백의 미, 대담한 구도 일품
배우 이민정 외할아버지로도 세간의 관심
박노수 작 '류하' 97×179㎝. 1980.

[세종포스트 변상섭 기자]눈이 부시도록 청명한 어느 봄날 한 소년이 수양버들 나무 아래 홀로 서 있다. 정제된 한편의 서정시 분위기다. 쓸쓸함·고요함·외로움의 시어(詩語)가 정막을 깨고 두런거리는 듯하다. 한국정 정서가 짙게 배여 있어 감상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끌림의 장력이 강한 그림이다. 
 한국화의 거장 남정(藍丁) 박노수(1927~2013)가 1980년에 그린 ‘류하(柳下)’다. 한글로 풀이하면 ‘버드나무 아래서’라는 작품이다.

남정의 트레이드마크인 블루컬러로 수양버들 잎을 묘사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듯 뻗어 내린 가지는 바람이 불면 금새 주렴처럼 일렁일듯 긴장감이 팽팽하다. 남색과 백색의 대비, 선명하고 투명한 청색조의 운치가 눈이 부실 정도다. 
대담한 여백의 중심에는 소년이 오도카니 서 있다. 
자연 안에 홀로 선 사내는 먼 곳을 바라본다. 뒷 모습에세 기다림과 고독이 동시에 풍긴다. 신비한 분위기에 둘러싸인 소년은 외롭지만 당당하고 강한 이미지다. 봄(꿈과 이상)을 기다리는 마음이 큰 탓일게다.

나무 그늘을 벗어나면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온갖 세파를 마주하고 있지만 이상이 있기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올곧은 모습이다. 단아하고 깔끔한 박노수의 성품이 그렇듯 ‘류하’ 속의 소년도 그렇다. 작가의 분신이다.
 박노수의 작품에는 앉거나 서서 관조하거나, 피리를 불거나, 말을 달리는 선비가 자주 등장한다. 감정이입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박노수가 평생 추구해온 고고함, 이상, 절개를 상징하고 있음이다. 


박노수의 ‘류하’는 격조 예술의 진수다. 산수를 그리는 작가는 많이 있으나 격조와 품격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생전에 필자와 인터뷰에서 “화가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제멋에 겨워 생각없이 그린 그림을 내 놓아서는 안된다. 반드시 격조와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격조를 평생 신조로 여긴 탓인지 그의 다른 작품에도 고고한 선비의 품격이 배어난다.

 
‘고예독왕(孤詣獨往)’.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1886~1965)이 생전에 박노수에게 당부했던 말이다. ‘외로이 홀로 가는 예술가의 길은 험하고 고독하다’는 이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마다 속기가 없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노수는 세종시 전의면 금사리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예를 익혔다. 공주 정안공립보통학교와 청주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청전 이상범(1897-1972)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1946년 서울대 미술대학에 1기로 입학, 졸업한 해방 후 1세대 작가다.
박노수는 생전에 일제 강점기 때 지어져 40년간 살던 한옥, 양옥, 중국풍의 특색을 갖추고 있는 집과 1000여점의 고가구, 골동품, 고미술 등과 함께 종로구에 기증해 현재는 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 문화재 자료 1호이기도 하다. 
박노수는 배우 이민정의 외할아버지로 알려지면서 세간에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 이병헌은 남정의 외손녀 사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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