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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들녘에 웬 연미복 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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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들녘에 웬 연미복 신사가!'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1.0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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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피란시절 고향 연동면서 그린 작품
      세종시, 생가에 '장욱진 기념관' 건립 추진...올해 첫삽 
      장욱진. 자화상(가로 10.8. 세로14.7). 1951. 

      [세종포스트 변상섭 기자] 장욱진(1917-1990)의 '자화상'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작품이다. 전란 중 고향인 충남 연기 동면(세종시 연동면)으로 피란을 왔을 때 그린 작품이지만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인다. 영국 신사풍과 황금 들판 등 이질적인 표현대상을 강조하고 있지만 향토색 짙은 색감과 파격적인 구도에서 '장욱진의 예술관'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장욱진 작품은 어린이가 그린 그림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어린이의 정서를 담아 그렸다는 게 옳다. 관심 있는 대상을 크게 그려 강조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단순·솔직·순수·소박하다. 나무·집·새(까치)·어린이 등의 소재가 서로 개별적이지만 서로 어울려 조화스러움을 연출한다. 곰살맞은 얘기가 있는 듯 서술적이다. 불교와 도교적인 무소유, 안빈낙도의 삶도 스며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장욱진의 작품 대부분은 10호 미만의 소품이다. 대상을 간결·요약하고 압축하지 않으면 표현이 불가능하다. 자화상도 이 범주에 속한다. 가로 14.7㎝, 세로 10.8㎝다. 어른 손바닥 크기보다 작을 정도다. 하지만 전혀 작아보이지 않는다. 적절한 여백에 밀도 탓이다. 대작처럼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일게다.
       연미복 차림에 우산을 들고 황금 들판 사이로 난 황톳길을 걸어가는 깡마른 콧수염의 신사는 화가 자신이다. 엉뚱해 보이지만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친숙한 풍경이 주는 효과일 게다.  황금빛 들녘, 창공을 나는 새와 조각구름 등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은 자신의 마음을 형상화했거나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치열하게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는 작가 내면일 것이다. 
       전쟁통에 현실은 절박하지만 애써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달관하고 관조하는 자신의 고뇌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S자형의 논둑 황톳길 길에 연미복 차림이란 설정에서는 해학적인 면도 엿보인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가을 들녘 논둑길은 풍년, 즉 넉넉함을 상징한다. 서울에 살면서 늘 그리워 했던 고향인 연기군 동면 송용리 어느 들녘이란 점에서 짙은 애향심도 느껴진다.
       자화상 탄생 과정도 흥미롭다. 6.25 때 송용리에서 3개월간 피란 생활을 했는데 그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캔버스와 물감이 없어 갱지에 석유로 물감을 개서 그렸다고 한다. 당시 그린작품이 40여점 정도인데 피란지를 부산으로 옮겨 지인들에게 보여줬는데 서로 좋다며 한점씩 가져갔다고 한다.
      그중 한 작품을 화가 한묵(1814-2016)이 가져갔다가 프랑스 유학 때문에 눈님한테 맡겼는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 화랑에 걸려있어 자화상이니 작가에게 돌려주자는 주위의 얘기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빨강, 노랑, 파랑, 검정 등의 원색을 적용했지만 각각의 도상들 간 충돌이 없다. 빼어난 색채 활용으로 조형성을 상승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나무와 새, 구름, 나무, 산을 압축·생략 표현해 심플하다. 작가 자신을 화면 앞쪽에 배치한 구도 또한 파격적이다. 명암을 절제하고 배경을 평면화하는 다시점 기법을 차용해 입체적인 효과를 나타낸 것도 장욱진만의 아이덴티티다.
      작가는 술을 참 좋아했다고 한다. ‘술은 휴식’이라고 했으니 오죽했겠나. 휴식에 들어가면 몇날 며칠을 계속했다고 한다. 화가의 술 추렴을 함께한 사람은 제자인 조영동 화백, 조각가 최종태, 이지휘 화백, 그리고 도예가 고이종수 등 여럿이었다고 한다. ‘장욱진 사단’이라해도 과히 틀린 얘기가 아닐 것이다.

      세종에서 태어나 화가로서 큰 족적과 일화를 남긴 장욱진이 100년을 훨씬 넘겨 장욱진 기념관이란 이름으로 귀향을 준비하고 있다. 민정 4기를 맞아 올해 첫 삽을 뜬다니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연기군 시절부터 근 30여년간 많은 얘기가 오가는 곡절을 겪은 끝에 이제야 가시적 성과가 나왔으니 말이다. 필자도 5년 전 기본계획 수립에 장욱진 화백 딸 장영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과 함께 참여한 후 진척이 안돼 아쉬워했는데 기왕에 늦어진 만큼은 제대로된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장욱진의 예술혼과 예술세계가 그의 고향 세종에서 다시 꽃을 피우고, 더불어 세종이 문화수도로 가는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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