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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전 세계 물들인 스탠더드 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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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전 세계 물들인 스탠더드 팝
  • 성현기(팝 칼럼니스트)
  • 승인 201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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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VS 미국’ 양대 산맥 과잉경쟁 제3세계에 기회

디스코 열풍 속 비지스 대안으로 미국서 선풍적 인기

미국인들의 대안음악이 되면서 팝 음악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ABBA는 스웨덴의 명차 볼보를 능가하는 산업역군이었다.

1970년대 중 후반에 듣기 편한 스텐다드 팝으로 세계 팝 필드를 정복한 ABBA는 당시 유럽의 명차로 명성을 날렸던 스웨덴의 볼보자동차가 벌어드리는 수익을 앞질렀다고 한다. 이때는 볼보에서 만든 세단승용차가 독일과 이태리 명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유럽의 명차로 꼽히던 시기였다.(지금의 볼보자동차는 승용차부문을 매각하고 상용차와 중장비 부문에 주력하기 때문에 시중에서 간혹 접하게 되는 볼보세단은 스웨덴 볼보자동차에서 세단부문을 사들인 미국자동차회사가 중국자동차회사에 팔면서 변방으로 밀린 볼보 세단승용차로 스웨덴의 볼보자동차는 별개이다.)



▲ 아바기념관


▲ 아그네사 펠츠콕(Agnetha Faltskog)

문화산업이 굴뚝산업을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범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ABBA는 영국과 미국이란 거대산맥으로 양분된 당시의 팝 필드에서 상상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1950년대부터 영국과 미국으로 이루어진 양대 팝 산맥은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다. 50년대에는 엘비스 플레슬리(Elvis Presly)를 앞세운 미국이 팝 필드를 이끌었고 영국은 비틀즈(Beatles)기반으로 60년대를 주도 했지만 70년대에는 양대 산맥이 팽팽하게 대립하며 세계 팝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그 어느 때 보다도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미국에서는 미국의 백인전통컨트리음악을 구사하는 존 덴버(John Denver)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백인민요의 대모인 조안 바에즈(Joan Baez), 아메리칸 록에 이글스(Eagles), 키스(Kiss), 에로 스미스(Aerosmith) 등을 내세웠고 영국에서는 만능 아티스트 엘튼 존(Elton John)과 브리티쉬 록(Brtish Rock)의 슈퍼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퍼풀(Deep Purple), 핑크 플로이드(Pink Ployd) 등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경쟁구도에서 제 3세계 음악이 팝 필드에 진출하기란 틈새조차 찾기 힘든 시기였지만 ABBA에게 기회가 온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양대 산맥의 과열된 경쟁이었다. 70년대 후반부터 디스코의 열풍을 몰고 온 영국출신의 그룹 비지스(BeeGees)가 팽팽했던 균형을 무너트리며 팝 필드를 평정하자 영국에 주도권을 넘겨준 미국사람들은 비지스(BeeGees)의 디스코음악 보다 좀 더 우아하고 친근한 ABBA의 음악을 선호하면서 ABBA는 미국인들의 대안음악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영국에 넘겨준 팝의 주도권을 인정하기 싫은 미국인들이 스웨덴이란 팝의 변방에서 들어온 ABBA 음악은 자존심 상하지 않으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은 ABBA의 스텐다드 팝은 접할수록 매력이 넘쳐났다.

베니 안데르손(Benny Andersson), 비요른 울바에우스(Bjorn Ulvaeus), 애니-프리다 린스태드(Anni-Frid Lyngstad), 아그네사 펠츠콕(Agnetha Faltskog)로 구성된 혼성 4인조 그룹 ABBA는 노르웨이 국적을 가진 애니-프리다 린스태드(Anni-Frid Lyngstad)를 제외한 세 사람 모두 스웨덴 출신으로 유로 팝을 기반으로 미국의 스텐다드 팝을 조화롭게 접목시켜 자신들의 음악을 완성하였다. 이들은 1973년 결성 되서 싱글 링 링 (Ring, Ring)으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할 스웨덴 대표 선발전에서 3위에 입상하자 매니저인 스티컨 앤더슨(Stikkan Andersson)이 팀 구성원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ABBA라는 팀명을 만들었고 1974년 유로비전에서 워털루 (Waterloo)로 대상을 차지하며 화려한 출발을 시작한다. 다음해인 1975년 맘마미아(Mamma Mia), 에스 오 에스(S.O.S) 등 싱글로 발표된 곡들이 유럽전역과 오스트레일리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비지스(BeeGees)의 디스코가 미국에 상륙한 1978년에는 한해전인 77년에 발매된 앨범 어라이벌(Arrival)이 미국인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에 댄싱 퀸(Dancing Queen)은 미국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비지스(BeeGees)가 몰고 온 디스코의 대안음악으로 자리 잡게 된다. 댄싱 퀸(Dancing Queen)의 인기로 미국 팝 시장에서 대중적으로 어필된 ABBA에게 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열열 팬이 된 시점은 비지스(BeeGees)와 디스코로 맞대응 하던 미국의 여가수 도나 썸머(Donna Summer)가 경쟁에서 한계를 보이면서 부터였다. 도나 썸머(Donna Summer)가 비지스(BeeGees)를 상대로 선전을 할 당시에도 영국 아티스트들이 주도하는 디스코가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미국인들은 도나 썸머(Donna Summer)마저 비지스(BeeGees)에 밀리는 형국에 접어들자 미련 없이 지지를 거두고 ABBA에게로 성원의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필자가 ABBA를 처음 접한 것은 고교 2학년이었던 1978년 대전극장(현재는 쇼핑몰)에서 상영한 ABBA The Movie란 영화였다. 지난 2012년에는 범죄스릴러 영화 힘노티스트(Hypnotisoren)의 메가폰을 잡았고 최근에는 미국의 여배우 줄리안 허프(Julianne Hough)가 주연으로 출연한 멜로/로맨스영화 세이프 헤이븐(Safe Haven)을 선보인 스웨덴 출신의 감독 라세 할스트룸(Lasse Hallstrom)이 만든 다큐멘터리 형식의 ABBA The Movie는 뮤직비디오를 상상도 못할 시기에 접한 세기의 뮤직비디오였기에 감동 또한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특히 프로그레시브한 느낌이 좋았던 Eagle은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가 화면을 가득 채웠는데 전체 화면 중에 가장 압권이었다. ABBA 음악의 매력 중에 하나가 이런 리듬의 다양성에 있다고 본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에서 배출된 스탠다드 팝 가수들의 음악과는 달리 이들의 음악은 유로 팝의 경쾌함과 독일에서 활성화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기본을 이룬 가운데 영어권의 스텐다드 팝과 조화롭게 접목되어 전진성(Lay All Your Love On Me, Dose your Mother Know, Waterloo) 우아함(Move On, Dancing Queen ) 서정성(Andante Andante, I Have A Dream, Felicidad) 산뜻함(Chiguitita) 진보(Eagle) 친근함(I Do I Do I Do, Mamma Mia) 흥겨움(Gimme! Gimme! Gimme!)등이 함께한다.

▲ 두 쌍의 커풀 당시 ABBA

댄싱 퀸(Dancing Queen), 맘마미아(Mamma Mia) 등 자신들의 히트곡들을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 <맘마미아>를 통해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ABBA는 베니 안데르손(Benny Andersson)과 애니-프리다 린스태드(Anni-Frid Lyngstad)가 한 쌍이 되고 비요른 울바에우스(Bjorn Ulvaeus)와 아그네사 펠츠콕(Agnetha Faltskog)짝을 이루고 활동을 했는데 두 쌍의 커풀이 헤어지면서 무대에서 멀어졌다. 베니 안데르손(Benny Andersson)과 비요른 울바에우스(Bjorn Ulvaeus)는 석유탐사회사를 운영하며 사업가의 길을 가면서도 ABBA관련 음악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그네사 펠츠콕(Agnetha Faltskog)은 최근에 쏠로 음반을 발표하고 음악활동에 전념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0년에는 로콘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ABBA는 지난 6월 7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유르가르덴 섬에 기념관(Abba the Museum)이 개관했다고 하는데 디스코 룸과 녹음 스튜디오, 의상실 등으로 구성된 5층짜리 기념관은 스웨덴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될 것이다. 지구촌 전체를 스탠다드 팝으로 물들이며 스웨덴문화산업을 이끈 이들은 지금도 지난날의 찬란한 업적을 바탕으로 스웨덴 경제에 기여하며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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