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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인문학으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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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인문학으로 푼다
  • 박한표(EU문화연구원 원장)
  • 승인 2013.06.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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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살아 있는 생명체, 다 마시면 “한 구의 시체”

척박한 땅서 열매 맺는 포도나무처럼 삶의 역경 담겨
숙성은 ‘기다림의 미학’, 명품 7~8년 후 최고의 맛


그리스 신화에서 와인의 신을 ‘디오니소스’라고 한다. 로마신화가 되면서는 이름이 ‘바쿠스’로 바뀐다. 다시 영어권에 이 신을 ‘바커스’라고 부른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에게 와인을 선물한 신이고 또한 와인의 기능을 상징하는 신이다.

본격적인 와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인간에게 와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겨울 어두운 밤에 거행되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와인의 기능에 대해 살펴보자.

와인의 기능은 우리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해방이다. 와인은 이성을 마비시켜 이성의 틀(아폴론의 세계)로부터 해방되게 해준다. 와인은 이러한 해방을 통해 우리를 흥분과 광기와 도취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한다. 이 세계 안에서 우리는 현실이 주는 고통과 긴장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와인은 또한 우리들의 본능과 정욕을 자극시킨다. 와인을 마시면 이성의 통제력은 약해지고 숨겨진 우리들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가 뜻하는 바는 단지 도취에 빠지고 본능이나 분출시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의 참된 의미는 창조성에 있다. 와인을 포함한 술은 파괴력과 창조력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야누스적 존재이다.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된다. 이런 재미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와인을 많이 마시면 와인(臥人, 누워있는 사람)이 된다." 와인의 어원이 한자어에서 나왔다는 ‘설렁 개그’였다. 실제로 와인을 자신의 주량 이상 마시면 그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하고, 와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창조력이 결여된 도취는 광기가 아니라 객기, 자유와 해방이 아니라 방종으로 흘러갈 뿐이라는 점이다. 문명 시대 이전의 고대인들의 삶의 이야기 속에서도 와인이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후마니타스(humanitas), 인문학은 사람의 학문이다. 사람이 뭐냐?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고, 호모 파버(homo faber)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고 동시에 호모 로켄스(homo loquens) 호모 섹스쿠스(homo sexcus)다. 생각하는 사람이며, 뭔가를 끊임없이 만드는 사람이면서 또 쉼 없이 놀이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말하는 사람이면서 몸으로 교감하는 사람이다. 인문학은 이 모든 문제를 다 다룬다.

그리고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게 만드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무기력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일상을 자율적이고 자신감 있게 새로 시작하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나오게 한다. 영어로 정신을 뜻하는 스피릿(Spirit)은 술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술은 주정(酒精, 에탄올)을 주성분으로 하는 음료인데, 여기서 한문으로 정(精)자가 정신의 그것과 일치한다. 술을 마시면, 일상적 권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과 별 상관없다고 여겨온 것들, 무심히 보아온 것들을 다시 보게 한다.

이런 바탕에서 와인을 인문학으로 풀어본다. 우선 와인은 우리들의 삶과 닮았다.

첫째 와인은 우리들처럼 살아있는 생명체다. 사람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또 병 속에서 숨을 쉰다. 사람이 그 와인을 마시면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사람이 마신 빈 와인 한 병을 ‘엉 카다브르(un cadavre)’, 즉 ‘한 구의 시체’라고 부른다.

둘째, 와인에도 우리들의 삶과 같이 역경이 있다. 포도나무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 달콤한 포도 열매를 맺어, 그 포도로 만든 향기와 색깔 그리고 맛이 좋은 와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들이 삶에서 승리하는 과정과 같다. 물미나라보다 돌미나리가 더 향기로운 것처럼, 고생한 후 승리한 사람의 삶이 더 위대한 것과 같다.

셋째, 와인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와인은 절정의 순간을 위하여 숙성을 통해 감질나게 기다리게 하는 설렘이 있다. 막 양조한 와인은 맛이 덜하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와인들은 양조 후 2내지 3년 후에 최고의 맛을 낸다. 그래서 좋은 와인을 마시려면 기다려야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와인 병에 적힌 연도(빈티지)에 2내지 3년을 더한 년도에 마시는 것이 절정의 맛이다. 물론 정상적으로 보관된 와인의 경우이다. 소위 ‘명품’이라고 부르는 값 비싼 와인들은 7년 내지 8년 후에 최고 맛을 낸다. 물론 10년이 훨씬 넘어야 제대로 된 맛을 내는 와인도 있다. 이처럼 와인은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하여 인내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너무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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