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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에게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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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에게서 배우다
  • 석길암(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 승인 2013.04.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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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하는 동안 승객을 가족처럼 여기는 기사

재단법인 ‘행복마을’ 상임이사이면서 ‘명상의 집’을 운영하는 대화 스님이라는 분이 있다. 대화 스님을 뵌 적은 없는데, 한동안 그 분이 쓰신 <내 안으로 떠나는 행복여행>이라는 책을 탐독한 기억이 있다. 대화 스님은 "그들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를 모토로 내걸고 진행되는 동사섭 수련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분이다. 스님이 쓰신 책 안에 ‘버스 기사에게서 배우다’라는 글 한 토막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 글에서 스님이 만났던 버스 기사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4시간 동안 생사안녕을 함께하는 계약가족입니다. 여러분들은 제게 최대한의 안전과 편리를 요청할 수 있고, 저는 여러분들을 도착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셔야 할 소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시고, 마중 나올 분들께는 10분 정도 전에 나와 계시라고 일러주십시오. 하차 후에는 자칫 서로 찾기에 번거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신탄진 휴게소에서 약 15분간 쉬어 가겠습니다. 다소의 시간이 더 필요하신 분은 그때 말씀해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이 잔잔한 버스기사님의 인사말에 흐뭇한 미소를 저절로 피워내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무언가 다른 심각한 일상의 곤란에 부닥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일지라도 그 순간만은 한 숨이라도 여유를 되찾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몇 번을 곱씹는 동안에, 사실은 처음 읽는 순간부터 엔도르핀이 저절로 분출되었던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그런데 그런 엔도르핀의 둘레를 차고 올랐던 생각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모 거대 기업의 안내 전화 목소리가 함께 떠올랐던 까닭이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참으로 친절하고 사근사근함이 묻어나는 응대로 무장되었을 법한 그 목소리가 무뚝뚝했을 법한 버스기사님의 상상 속 목소리와 대비되면서 뇌리를 쳤던 것이다. 어느 새 우리 귀에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은 일상화된 어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고객님께서 구입하신 컴퓨터님을 댁까지 잘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정도의 웃기지도 않는 높임말 서비스는 이미 일상화된 세상이 아닌가 말이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일등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일등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경쟁이 미덕이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나와 ‘일등’을 다투는 경쟁자로만 여겨지는 그런 세상인 것이다. 혹 주위 사람이 경쟁자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일찌감치 ‘일등’을 포기했거나 혹은 이미 ‘일등’과는 거리가 멀어져서 내팽겨진 그런 사람이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경쟁을 받아들이고, 그 경쟁에서 일등이 되기 위해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 사회가 된 셈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라고 해도 마음 한번만 돌리면 세상살이는 완전히 달라진다. 대화 스님이 소개하고 있는 버스 기사님이 그렇다. 그의 생각은 단순하다. 적어도 4시간 동안은, 내가 운전을 하는 4시간 동안은 이 버스를 탄 사람들이 ‘계약가족’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여기서 ‘계약’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계약은 아니다. 버스 기사님의 생각은 ‘계약’이라는 말보다는 ‘가족’이라는 말에 방점이 찍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족’을 위해 운전하는 사람은 그 가족의 ‘안전’과 ‘편안함’에 마음의 무게를 둘 게 틀림없는 것이다.

게다가 버스 기사님은 이렇게 말한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시라." 왜? 우리는 적어도 4시간 동안은 가족이니까. 가족끼리 숨기고 말고 할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역시 ‘가족’에 방점이 찍혀 있는 셈이다. 그런 그에게 경쟁자는 없다. 일터에서든 어디에서든, 함께하는 동안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그에게는 ‘가족’으로 묶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못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악전고투하는 우리네 삶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내 책상머리 저 편 혹은 옆쪽에서 일하고 있는 잠재적인 혹은 드러난 경쟁자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그 경쟁자의 얼굴이 피곤해 보이는가? 그 경쟁자의 얼굴이 삶에 찌들어 보이는가? 그 경쟁자의 얼굴이 적의에 가득 차 있는가? 그 경쟁자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배어있는가?

그 경쟁자들의 얼굴을 보고 안쓰러움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반쯤은 이미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을 당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조금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경쟁자들의 삶에 찌든 얼굴을 보고서 한마디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당신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그 경쟁자들을 이미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다. 아주 오래전에 유행했던 어느 시처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은 세상이 아니다. 둘이 만나서, 셋이 만나서 서로 받침대가 되어주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헤치고, 밀치고 나아간다. 같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나아간다. 언젠가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했다는 것들이 나의 받침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세상은 주인과 고객들이 만나서 거래를 주고받는 곳이 아니다. 이제는 그 말을 다르게 바꾸어서 사용할 준비를 함께 해보자. 그리고 하루를 함께하는 내 일터의 가족들에게 기대 섞인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져보자.
"안녕하십니까? 내 가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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