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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천년을 꽃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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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천년을 꽃피우다
  • 한동운(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13.04.05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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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클래식에도 기독교와 무관한 세속음악 존재

신성한 음악과 비교되는 개념, 질적 평가기준 아냐
궁정 가인이나 떠돌이 음악가가 음유시인 활동
즐기는 차원 넘어 음악의 주술적 힘 정치적 이용도
궁중 문화 중심으로 중세 후기 폭발적 증가

기독교 문화 속에서 시작된 초기 클래식 음악은 신을 찬미하는 음악만이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놀이 문화는 존재하듯이 중세 시대 역시 특정 계층, 왕이나 궁정인들이 즐겨 듣고 부르던 음악이 있었다. 당대의 이러한 음악을 세속음악으로 규정한다. 세속음악이라는 명칭은 초기 클래식 음악에서 주류 음악으로 평가하는 기독교 음악, 즉 신성한 음악과 비교했을 때 적용되는 용어일 뿐 음악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은 아니다.

신을 위한 음악과는 다른 기능의 세속 음악은 궁정 문화가 서서히 발전하면서, 왕이나 궁정인, 그리고 귀족들은 오락이나 여가, 그리고 각가지 궁정행사에 사용할 음악이 필요했다. 이러한 음악은 궁정의 가인이나 떠돌이 음악가들이 맡았는데, 소위 음유 시인으로 불리는 가인들은 궁정에 종속되어 있기도 했고, 떠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살기도 했다. 음유시인의 신분은 파직한 성직자·귀족 출신·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존재했다. 이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기도 했지만, 대체로 종속적인 관계였기 때문에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특히, 떠돌이 예인들은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해야 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들이 만든 음악은 대개 기악 반주가 있는 노래였고, 노랫말은 아름다운 시에서 저속한 내용까지 다양했다. 13세기경까지 서유럽에서 유행하는 시를 수록해 놓은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를 통해 당시의 노랫말을 살펴보자.

"자, 다 함께 공부 하지 말자. 빈둥빈둥 놀면 더 재미있지. 젊었을 때 달콤한 것을 즐기고 골치 아픈 문제는 늙은이에게. 공부는 시간 낭비, 여자와 술이 좋지…" 중세 시대에 요즘처럼 높은 학구열과 여성 비하나 차별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는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이 곡은 분명 금지곡이 되었을 것이다.

아침 드라마의 막장 줄거리를 연상시키는 노랫말도 있다. "나의 사랑하고 친애하는 친구여, 난 다시는 아침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쁨을 맛보고 있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를 내 품에 안고 있지. 그러니 그 미친 나의 적수가 와도 상관없네. 그 새벽이 찾아온다 해도!" 막장 드라마의 불륜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중세 시대, 금욕과 도덕적 윤리적 강령을 중시하던 기독교 문화에서 퇴폐적인 노래가 공존했다니 참으로 놀랍다.

물론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하기도 한다. "나의 사랑인 그를 향한 고통스러운 내 마음은 내가 누구보다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나의 친절함과 호의는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지요. 나의 아름다움, 미덕, 지성도 그러해요." 그뿐만 아니라 십자군 기사의 영웅담을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노래는 단순히 즐기는 노래를 넘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령, 민중은 이러한 영웅에 복종하고, 기사나 영주는 왕을 위해 헌신하게 하는, 음악의 주술적인 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세속음악은 중세 후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는 서유럽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기독교 문화가 쇠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교황은 종교 재판을 통해 교회의 세속화와 와해를 막으려 했고, 종교 재판의 결과 무고한 많은 희생자를 낳게 되었다. 물론 음악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세속음악가 중 많은 떠돌이 예인들은 마녀 사냥의 희생자가 되었다. 심지어 교회음악가가 세속음악을 작곡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할 정도 종교 재판은 공포 그 자체였다. 종교 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가 모호한 요즘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중세 천 년 동안, 기독교 문화 속에서 초기 클래식 음악은 신성한 음악과 세속음악을 통해 발현하기 시작했고, 기독교 문화를 중심으로 신성한 음악과 궁정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한 세속음악은 클래식 음악의 역사 속, 거장들의 작품에서 지난 과거의 상처를 뒤로하고, 화려하게 꽃 피우게 된다.

다음 클래식 음악 여행에서는 아카펠라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로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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