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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강요당한 아이가 어떻게 잘 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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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강요당한 아이가 어떻게 잘 살겠나
  • 석길암(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 승인 2013.04.05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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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유전자에 새겨진 ‘배워야 잘 산다’

명문대학, 일류기업… 스펙 쌓기 전락한 교육
도법스님 "훌륭한 사람 되려면 농부가 되어라"
아이들에 무얼 기대할지 되돌아 봐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이 교육에 대한 열정은 특별하다고 할 정도로 유별나다. 한 동안은 내가 못 배운 게 한이 되어서 자녀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사지을 땅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먹고 살기가 빠듯했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대두된 것이 바로 사람이었다.
그럭저럭 다들 비슷한 모양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땅에서 그나마 남들보다 조금 낫게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란 출세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출세하는 방법이란, 조선 시대 500년 내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공부하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대부분이 보릿고개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그나마 그 보릿고개를 겪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라고 해봐야 대지주와 관료밖에 없었던 세상이 500년이었다.
그런 시대가 지나고 찾아온 일제 침탈의 시대에 삶은 더 가혹해졌다. 일제 침탈의 시대, 그리고 해방, 다시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던 삶의 터전을 휩쓸어버린 6·25 전쟁까지, 그런 악몽 같은 세월을 겪고 난 뒤에야 절대적 빈곤,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결심들이 모여서 경제발전을 조금씩 일구었다. 그 첫 걸음을 내딛던 시대, 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는 배우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뚜렷하게 우리네 유전자에 새겨진 명제는 ‘배워야 잘 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배워야 잘 산다’는 명제는 어느 새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좋은 대학에 가야 잘 산다’로 바뀌었고, 자녀 교육의 모든 당면과제는 좋은 대학 이른바 명문대학에 가기 위한 스펙 쌓기로 바뀌어 버렸다. 아이가 무엇을 잘 한다든가, 아이가 무엇에 관심이 많다든가,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명문대학에 가기 위한 조건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뒷전이 되었다. 무엇을 배워야 잘 산다는 것은 명문대학에 가기 위한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것도 뒷전이 되었다. 아이가 성품이 잘 길러져야 잘 산다는 것도 역시 명문대학에 가기 위한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것도 뒷전이 되었다. 물론 그것들이 생활기록부에 반영되어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계량화된 점수로 환산된다는 조건이 부여되면, 그것은 사교육의 또 다른 투자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명문대학을 졸업하면 어떡하란 말인가. 소위 그 명문대학부터 지방 3류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학이 다시 그 대학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새로운 요구조건이 부여된다. 이른바 일류기업 취업하기이다.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15~16년에 이르는 시간을 대학 가기 위해서만 살았는데, 대학에 와 보니 다시 일류 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스펙을 쌓으라고 한다. 그것도 죽으라 하고.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명문대학에만 가면, 일류기업에만 취업하면, 네 인생은 활짝 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속내를 드러내자면, 1등 만들기 혹은 1등에 가까운 등수에 들어가기이고, 좀 더 많은 돈을 좀 더 쉽게 벌 수 있는 조건 갖추기의 경쟁이다. 그리고 그 줄 세우기 사회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좀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스펙을 채워주기 위해서, 이르면 어린이집부터 줄을 세우고, 그 줄 세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다시 학원쇼핑을 멈추지 않는다.
그 부모들에게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노는 우리 아들, 건강하고 예쁜 우리 딸은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든 어울리지 못하든, 예쁜 딸이든 그렇지 않든, 1등인 우리 아들, 1등인 우리 딸만 자랑스럽게 존재할 뿐이다. 그럼 일등이 아닌 아들과 딸은 속 썩이는 원수덩어리인가. 이른바 대개의 ‘엄친아’가 학교 성적 1등인 아이, 명문대학에 간 아이, 일류기업에 취업한 아이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셈이다.
도법스님이란 분이 있다. 한국불교계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생명평화운동의 아이콘 같은 분이다. 도법스님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너희들도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농부가 되어라."
요즘 부모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말일 수밖에 없다. 혹 돈 잘 버는 기업농이 되라는 소리면 또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런 얘기는 아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 너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
"너의 목숨이다. 너의 생명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찌해야 될까?"
"훌륭한 일을 하면 된다.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그럼 가장 훌륭한 일은 무엇일까?"
"가장 훌륭한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그 생명을 살리는 일이 농사짓는 일이고, 농사짓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농부이니,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인 셈이다.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며 하는 일에 농사 아닌 일이 한 가지라도 있는가? 이 세상에 귀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귀한 생명을 살리는 농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또 어디에 있는가? 그 중에 으뜸이 자식 농사이다. 그 아이들이 자신의 귀한 생명을, 귀한 가치를 온전히 제대로 발휘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짓는 농사가 자식농사인 것이다. 어려서부터 1등만 하면 된다고 교육받은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스펙만 좋으면 된다고 교육받은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명문대학만 가면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힌 아이에게, 이제는 일류기업에만 취업하면 성공하는 것이라고 세뇌당한 아이에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제 우리부터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도대체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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