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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마음을 담으면… 물 한잔에도 생명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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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마음을 담으면… 물 한잔에도 생명이 담겨 있다
  • 박종훈(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
  • 승인 2013.03.15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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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 은행" 혹시 들어보셨나요?
"골수은행"이라고 하면 더 빨리 이해가 되실 겁니다. 백혈구항원에 대한 유전 정보를 수집해 두었다가 조혈모세포 공여자(골수 기증자)와 이식을 요하는 환자 사이에 세포이식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고 조정하는 기관입니다.
뜬금없이 "골수은행"이냐?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신학생 시절, 신학교에서는 일 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헌혈을 하였습니다. 헌혈을 하며 원하는 학생들은 골수를 기증하기도 하였는데, 실제로 골수은행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누군가에게 골수이식을 행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날도 학교에서 헌혈을 실시했던 날로 기억이 됩니다. 점심식사 시간,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날이 날인지라 헌혈에 대한 이야기들, 이를테면 "오늘 헌혈 했냐? 안했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몇 차례 헌혈을 했냐?" 등등… 그런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자리(네 명씩 앉는 테이블)에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기증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헌혈을 한다던 그 친구는 헌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헌혈 하면 단순히 피를 뽑는 것만 생각하는데, 골수기증이라는 것이 있어서, 기증을 하면 백혈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골수은행으로부터 연락을 받아서 자신도 기증한 적이 있다"고, 그리고 "누군가가 또 필요하다면 당연히 기증하겠다"고 그럽니다.
방송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토록 장한 일을 한 친구가 대견스럽기도 하여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그런 일을 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히 이야기하던 그 친구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강하게 자리 잡아서였을까요? 한동안 ‘누군가를 살리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을까?’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품었던 그 일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작업을 하던 어느 날 오후, 갈증을 느껴 물을 마시려고 냉온수기에 다가가 컵을 갖다 대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살펴보니, 냉온수기 위에 올려져 있는 생수통이 비어 있었습니다. 순간 미간이 찌푸려지며 ‘물 떨어진 거 알았으면 생수통 좀 바꿔놓지…’ 하는 아쉬움을 마음에 품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몇 발자국 발걸음을 옮겼을 때, 머릿속을 강하게 스치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만약, 물이 없어 발길을 돌리는 그 사람이 사막 한가운데 있었다면…" 그의 아쉬움은 좌절감을 넘어서 죽음의 절망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그에게 한모금의 물은 생명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둘의 상황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냐? 물을 구할 수 없는 곳이냐?"의 장소적 차이가 있을 뿐이지, 갈증에 허덕이는 이에게 한모금의 물은, 생명을 이어주는 생명수(生命水)가 된다는 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필요로 하는 이에게 골수를 기증하고, 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장기를 이식해주고, 피가 부족한 이에게 헌혈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리라는 희망과 기쁨으로 물 한잔을 건넨다면, 그 한 잔의 물에도 생명이 담겨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 잔의 물"처럼 일상의 아주 소소한 것들에도 생명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생명을 살리는 다른 일도 능히 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역으로 말하면,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큰일을 꿈꾼다는 것은 거짓이고 모순이라는 얘깁니다.
일상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일에도 충실하였기에 마침내 큰일을 이룰 수 있었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많이 있습니다. 바로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는 신앙의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들을 말합니다. 순교자들이 최후의 순간에 생명을 바쳐 신앙을 증거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의 삶 안에서 이미 증거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루하루, 매일매일 이어져 오던 증거의 삶이, 마침내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순교라는 열매’로 맺어진 것입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친구가 결정적인 순간에 골수를 기증 할 수 있었던 것도 정기적으로 헌혈을 실천했던 것처럼 일상의 것들을 소중히 여겼던 사실과도 일맥상통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해 봅니다.
만약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을 꿈꾼다면, "지금 이 순간,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일에 충실하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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