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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다수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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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다수의 존재
  • 안계환(독서경영연구원장)
  • 승인 2013.03.15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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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의 로마인은 어떻게 살았을까로버트 냅 저 | 김민수 역 | 이론과실천 | 512쪽 | 2만9000원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거나 흔히 접하는 역사는 통치자의 이야기이거나 분열과 통일을 위한 전쟁 등 지배층의 역사다. 왜냐하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바로 지배층이었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읽는 독자도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지배층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사마천과 같은 위대한 역사가는 중국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진승과 오광에 대한 기록이나 화식열전과 같은 상인들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고대 서양세계의 거의 전부였고 유럽의 오늘을 있게 한 로마의 역사기록도 로마 인구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소수 지배계층의 역사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의 평범한 삶은 위인들의 위대한 행동이 주는 흥분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고, 세상의 주목을 끄는 역사적 변화의 동력도 되지 못했다. 지배층에 큰 피해를 주었던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 같은 일들만 관심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역사를 떠받친 99%의 민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국가의 기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거대한 로마 제국은 역사에 웅대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는 왕정을 거쳐 공화정으로 나라의 기반을 닦았고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속하는 광대한 영토와 수많은 민족들을 법률에 의해 다스렸기에 법의 나라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법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냅은 99%에 속하는 법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과 고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보통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지배계층이 쓴 자료를 최대한 배제하고 묘지의 비문, 파피루스 문서처럼 덜 알려진 증거를 주로 활용하고 문학과 편지, 낙서 등에서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끌어냈다.
사회의 기반 층을 이루고 있던 평민 남자들은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며 때로는 폭동을 일으키며 지배계층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철저하게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자는 투표를 할 수 없고 공적 거래에도 참여할 수 없었지만 삶과 가정에서는 때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고대세계에서 노예제도는 아주 자연스러운 조직형태였다. 노예는 국가 초기에는 전쟁 포로 출신이 많았지만 점차 가진 땅을 잃고 노예가 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예제도는 대를 이어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지만 로마에서는 돈을 모아 해방하거나 주인의 은덕으로 해방되기도 했다. 나중에 조상을 해방노예로 둔 자 중에서 황제가 된 사람도 있었으니 비교적 나은 게 로마의 노예제도였다.
여자나 무산자, 노예들은 그들의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만 했다. 철저하게 지배층과 남성중심 사회에서 그들은 질병과 전쟁, 폭력의 고통 속에서 두려움을 안고 살았으며, 지배계층에게 착취당하면서도 서로 기대어 희망을 품었다. 노예와 군인은 무법자가 되기도 했고, 노예는 해방노예가 되거나 도망쳤으며, 평민의 아들은 농부나 상인, 군인이 되었다. 무산자 출신의 젊은 남자에게 군대에 지원하여 군인이 되는 것은 가장 좋은 신분상승 수단이 되었다. 강력한 군사력과 장기복무 제도 덕분에 신병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힘든 일에 대한 보상도 좋았으며 장기간 근무하면 퇴직금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모습을 드러낸 로마의 보통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들과 우리가 처한 현실은 물질적 환경이나 도덕적 규범, 구체적 직업과 삶의 가능성까지 하나도 같은 게 없지만, 자신이 맞닥뜨린 일을 스스로 처리해야 하고, 인간관계와 초자연적 존재에서 위안과 보상을 구하며, 자신이 머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대한 영향력의 여운으로 여전히 로마문명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그들이 만든 원로원과 공화정은 21세기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회중심주의로 채택중이고 그들이 만든 국가인프라에 대한 철학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오늘 깨닫는 독서경영은 겉으로 보이는 거대한 국가체계 안에 삶의 무게에 힘이 들어 신음하고 있는 민중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 미래의 꿈, 삶의 희망들을 어떻게 보듬어주고 격려해 줄 것인가,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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