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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을 강요하는 이 영화가 훌륭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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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을 강요하는 이 영화가 훌륭한 까닭
  • 석길암(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 승인 2013.03.11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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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주는 철학적 가치

올해 초에 개봉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감독인 워쇼스키 남매가 감독한 대작이라서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특히 한국 배우 배두나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서 관심을 집중시켰던 영화이기도 하다.
흥행은 물론 영화 보는 재미까지 확실히 선사해줄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흥행에는 확실하게 참패한 명작이었다. 내심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한국인이 살아가는 방식을 생각한다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

흥행 실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긴 상영시간, 무려 2시간 하고도 52분이나 되는 상영시간, 그런데 상영시간만 긴 것이 아니라 스토리 자체도 아주 복잡해서 그 지루함을 더했다는 평가. 또 하나, 여섯 개의 각각 다른 시대에, 각각의 다른 여섯 개의 사건들이, 옴니버스식이 아니라 중첩적으로 교차되어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잡기 쉽지 않은 점은 관객을 지치게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흔해 빠져서 우리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나 SF영화의 단순한 권선징악적인 세계관이 아닌, 우리에게 심하게 낯선 불교의 연기론적 세계관과 윤회관을 배경으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라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불교적 가르침을 여기저기에 중복해서, 그리고 최대한 단순화해서 배치한다. 그래서 어렵다.
어느 순간부터 스토리는 사라지고, 화려한 액션들과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대사가 반복된다. 시대배경이 바뀔 때마다 앞에서는 어떤 이야기였는지 떠올리기 바쁘다. 그러다 보면 영화는 어느 새 다른 시대배경으로 훌쩍 건너 뛰어 버린다.
어느 새 영화는 한국 배우 배두나와 우리 눈에 익숙한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와 휴 그랜트 그리고 할리 베리가 쉴 새 없이 교차 등장해서는 잠깐 잠깐 연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서면서 떠오르는 건 ‘그래서 뭐였지?’라는 의문사 뿐이다.

인내심을 요구하는 영화

사실 영화의 흥행요소 중 입소문이 절반이다. ‘재미있더라’는 입소문이 정말정말 중요한 것인데, ‘그래서 뭐였지?’라는 의문사를 내뱉어야 하는 관객에게서 입소문을 기대하기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재미있더라’고 얘기하는 관객은 미리 원작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았거나, 영화의 스토리 라인 등에 대해서 부지런히 예습을 하고 보러 갔던 관객뿐이다. 이래서는 흥행에 실패하는 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이런 흥행에 실패한 영화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이 영화가 지극히 훌륭하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들이나 이 영화가 훌륭하다고 평하는 마니아층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훌륭한 가장 큰 이유로 단 하나만 언급하고 싶다.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지극히 훌륭하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번 네 번의 반복관람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되새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면서 스토리를 완전히 우겨넣고 난 뒤에야, 이 영화의 대사들이 하나 둘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3시간짜리 영화를 서너 번씩이나 반복해서 본 뒤에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러니 필자는 이것을 "인내심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내심의 미덕을 생각한다

그런데 인내심을 요구하는 게 왜 훌륭할까?
단적으로 말하면, 201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화 관람 같은 지극히 사소한 일에서는 더욱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른바 ‘패스트(fast)’ 시대를 살아간다. 먹는 것은 패스트 푸드(fast food)이고, 입는 것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대세이고, 인터넷조차도 걸으면서 초고속으로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하는 LTE시대이다. 사진을 찍으면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아날로그 시대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즉시 LTE에 연동되어서 페이스북 같은 소셜커머스에 올려 진다. 아니, 소셜커머스에 올리자마자 그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앱을 두드리는 세대, 그것이 201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고 지구인이다.
영화조차도 스마트폰에 다운받아서 길을 걸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잠깐 잠깐 짬을 내어서 보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다. 그런 시대에 지극히 사소한 영화 한 편을 보는데, 인내심을 요구한다? 흥행은커녕 쫄딱 망하기 딱 좋은 영화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훌륭하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것 자체부터,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인내심을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복해서 보아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그래서 인내심을 끊임없이 요구할 수밖에 없는 영화, 그것이 <클라우드 아틀라스>이다.
인내심. 그것은 2010년대의 한국인 혹은 지구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미덕이다. 되새김. 그것은 2010년대의 한국인 혹은 지구인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덕목이다.
워쇼스키 남매가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다.
"제발 좀 참아봐!"
"제발 좀 다시 생각해봐!"
오늘 내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동료에게 "바쁘다"라는 핑계를 익숙하게 반복했다면, 그 사소한 일상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기 바란다. 우리네 사소한 일상생활에는 ‘되새기지 않고’ 무심코 지나쳐버린 덕분에 놓치고 만 ‘소중함’이 너무나 많다. ‘나중에’ 말고, ‘지금 바로, 여기에서’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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