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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를 이기는 비르투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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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를 이기는 비르투스에게
  • 안계환(독서경영연구원장)
  • 승인 2013.03.11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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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 | 김상근 저 | 21세기북스 | 311쪽 | 1만8000원

"군주 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1513년에 쓰고 1532년에 출간된 <군주론>에서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다.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한없이 착한 척 하다가 일단 군주의 자리에 오르거든 냉혹한 통치자가 되기를 권한 말이다. 이렇게 설파한 군주의 모습이 옳은 모습이라고 말한 덕분에 그는 사악한 군주 체제를 옹호하는 냉혈한 인간으로 묘사되어왔다.

마키아벨리는 중세의 긴 어둠이 걷히고 르네상스의 열기가 피어오르던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공화정부의 서기관으로 재직하면서 외교·군사 면에서 활약했다.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 피렌체는 주변 열강들의 침략에 무력할 할 수 밖에 없어 마키아벨리의 뛰어난 외교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왕을 만나기 위해 네 번이나 출장을 다녀왔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도 협상을 벌였으며 체사레 보르자의 정복전쟁도 지켜봤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공화정이 무너진 후 공직에서 물러나 고문을 당하고 시골에 유배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 시절에 국가를 다스리는 군주의 필독서라고 알려져 있는 <군주론>을 집필한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이름하에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권모술수의 개념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가 <군주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따로 있다. 비록 체사레 보르자가 이상적 국가를 위한 군주의 표상이라고 내세우기는 했지만 이 위대한 영웅도 '포르투나'에게 버림을 받게 되면 몰락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르투나는 흔히 '행운(Fortune)' 으로 해석이 가능한데 우리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포르투나의 힘 앞에 노출되어 있다. "원래 세상일이란 포르투나와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머리를 쓴다고 해도 이 세상의 진로 자체를 바꿀 수 없다." <군주론> 끝자락에서 우리의 운명을 포르투나가 차지하고 있다고 설파한 마키아벨리의 운명론이다.

마키아벨리는 그러나 비관적 운명론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대안도 함께 제시한다. 어차피 포르투나의 힘에 의해 우리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탁월함과 용기, 즉 비르투스(Virtus)를 발휘해서 한번 붙어 보라는 것이다. 비르투스는 '탁월함', '용기'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남성형 명사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포르투나는 여성형이고 비르투스는 남성형이란 점이 재미있다. 부드럽게 다가오는 운명의 여신에 맞서서 남성적으로 헤쳐 나가라는 마키아벨리의 충고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대부분의 요지는 마키아벨리의 인간적인 면모다. 진정 그는 이탈리아를 사랑하고 조국 피렌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공무원이었다. 후세의 연구가들로 하여금 가장 오해하도록 만든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적 군주의 표상이라고 표현한 <군주론>의 내용이 그의 본뜻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국정경험이 없는 메디치가의 공작에게 피렌체를 잘 다스리려면 공직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자신을 채용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일종의 이력서였다. 피렌체의 새로운 권력자 로렌조 메디치에 잘 보이려는 목적으로 교황의 친족이었던 체사레 보르자를 띄움으로써 당시 교황의 조카였던 로렌조를 아부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 ‘목적’은 이뤄지지 않았고, 마키아벨리는 방황과 변신을 하게 된다. <로마사 논고>를 통해 교활한 독재자를 비판하고 로마 공화정의 우수성을 설파한다.

위대한 저작물은 고난을 통해 탄생한다는 말이 있다. 신곡은 피렌체 사람인 단테가 고국을 떠나 망명한 상태에서 쓴 명작이며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을 견디고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열정을 바쳤다. 다산 정약용이 18년간이나 유배되어 있던 기간에 엄청난 저작물을 만든 것처럼 마키아벨리도 공직에서 물러나 시골에 유배된 기간 동안 명작을 남겼다. 외교관으로서의 경험과 능력은 살리지 못했지만 저술가로서의 능력은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살아있을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가 <만드라골라>라는 코미디 작가로 더 알려졌다는 사실은 책을 읽는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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