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천만에…"
상태바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천만에…"
  • 김선미(컬럼니스트)
  • 승인 2013.02.22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정치인의 은퇴 선언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유시민 전 장관은 적어도 묘비명에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

은퇴를 말하기에는 아직은 젊은(?) 그다. 그런데 왜? 현실 정치의 한계에 부딪혀서든, 좋아하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위해서든, 이유야 어떻든, 또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의 조기(?) 정계 은퇴 선언은 신선함을 준다. 이러한 결정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닌 그의 평소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과거 발언에서 그러한 단초를 읽을 수 있다.

"비록 30, 40대에 훌륭한 인격체였을지라도, 20년이 지나면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제 개인적 원칙은 60대가 되면 가능한 책임 있는 자리에 가지 않고, 65세부터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 자기가 다운되면 알아서 내려가야 하는데, 비정상적인 인간은 자기가 비정상이이라는 것을 모른다. … 여러분이 20년 뒤에 (나에게) ‘저 노인네 언제 고려장 지내나’라는 말을 해도 원망하지 않겠다." <2004년 11월3일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학생과 정치’ 특강 中>

강연 내용이 알려지자 당시 그는 ‘노인 폄하’ 발언으로 엄청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에둘러가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옳은 이야기도 어떻게 저렇게 XXX 없이 하느냐’는 비난에 시달리던 그였다. 덕분에 또 한 번 완전히 XXX 없는 인간이 돼버렸다.

오로지 물리적인 나이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를 맡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그의 주장에 공감을 표한다. 때 이른(?) 그의 정계 은퇴 선언은 평소 이러한 사고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이 들어서도 권력과 자리를 탐하는 것에 대한 경계 말이다.

십년동안 정치인으로 활약했던 유 전 의원이 시민으로서 정치적 발언을 계속 할지 하지 않을지는 알 수가 없다. 또 사람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앞으로 권력 주변을 얼쩡거리지 않고 공직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어떤 책임 있는 자리도 맡고 있지 않아 다소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계 은퇴발언이 신선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여진 현란한 노추의 변신술과 새정부 출범을 앞둔 인선 과정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공직이 됐든 법조, 학계, 정치 분야든 이미 사회 각 분야에서 누릴 것 다 누렸음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권력 주변에 얼쩡거리는 이들이 너무 많다. 지금 이 순간도 새로운 권력의 탄생 주변에서 부스러기라도 주워보려는 이들의 추함과 추락도 물리도록 되풀이 되고 있다.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지 못’한 채 미적거리다 망신당하는 사례도 여럿 목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장에 대한 열망은 나이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인생을 정리할 무렵 이런 장탄식을 하지 않으려면 나이 들어 권력과 자리에 연연하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 들었다고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손발 묶어 놓고 있으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니까 말이다. 연륜과 경험으로 사회에 봉사를 하거나 후진을 위해 배려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야 얼마든지 탱큐다. 사적 영역도 전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단 체면과 염치도 없이 공직의 높은 자리와 권력의 주변을 행성을 넘어 위성처럼 맴도는 탐욕스러운 나이듦이 문제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유행가 가사 같은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이들은 오늘도 여전히 ‘나이는 숫자가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입맛이 쓰다.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