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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생 이끌어주는 책 한권의 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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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생 이끌어주는 책 한권의 피서
  • 이계홍
  • 승인 2021.07.2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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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자투리 지식’ 만으로는 세상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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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예전 같으면 지금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년 열두달이 방학인 계절을 살고 있다. 코로나 19의 새로운 풍속도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사람과의 접촉면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고, 모임도, 집회도, 도서관 이용도 가능한 한 삼가야 한다. 여기에 학교는 툭하면 휴교다. 이러니 학생들은 언제 방학이고, 언제 학교 다니는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정해진 일상이 파괴된 기분이다. 짜증나고 고달픈 일상이다.

지난날 여름방학을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방학에 도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필자의 경우, 학교 도서관에 가거나 미 공보원 도서관에 다녔다. 공부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핑계고, 사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학교 도서관은 천장에 커다란 선풍기가 매달려있어서 끊임없이 바람을 몰아주니 피서가 되었다. 집은 싸구려 브로크 집인지라 햇볕에 달구어져 오후에는 견디기 어려웠는데, 도서관에 가면 이렇게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미 공보원 도서관은 더 좋았다. 에어컨이 작동해 여름 내내 시원하였다. 그래서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위를 피하기 위해 더 열심히 찾았던 곳이다. 그러나 기왕에 간 길이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었다. 미 공보원에는 국내 서적들이 없는 대신에 외국 신문들이 골고루 비치되어 있었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필자는 반공법에 위배되는 기밀들을 많이 접했다. 프랑스의 작가 사르트르가 주도한 국제전범재판소에서 베트남에 파병한 미국이 주범이고, 대한민국이 종범으로 재판에 회부된 사실도 알았다. 영국의 더 타임즈나 미국의 뉴욕 타임즈, 프랑스의 르몽드에 이런 기사가 났다.

다만 우리에겐 철저하게 언론통제, 보도관제가 되어서 그런 내용이 일체 보도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친정부적인 학자들은 침묵했고, 비판적인 사람들은 잡혀갈까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주한미군의 주둔 이유가 대한민국 국군의 ‘북진’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동두천, 포천, 의정부에 미군이 주둔한 것은 북한군의 남침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국군이 북을 침공하는 것에 대한 견제책으로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에게 발설하지 못했다.

소심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발적 애국심에 불타올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보도를 한 외신을 탓했을 뿐이었다. 비판적 안목으로 사물을 보지 못했으며, 그만큼 나는 체제에 철저하게 순응하고 순치되고 세뇌되어 있었다.

미 공보원을 드나들다 보니 겪은 경험담을 얘기했는데, 필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그것이 아니다. 한 여름 냉방이 잘된 미공보원 도서관에서 그동안 읽지 못한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을 독파한 경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 인생관을 폭넓게 확장했다.  

사실 그 시간 법조문을 외웠다면 행시나 사시에 합격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급 공무원이나 판검사가 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법전을 가까이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평범한 중고교 국어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나름으로 교양을 쌓고, 인문학적 소양을 넓힌다는 점, 문학이 주는 상상력과 흥미에 끌려 방학 내내 문학작품을 섭렵했다.

그것이 오늘날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다. 가난한 소시민으로 살더라도 양심적이고, 정의롭고, 정직하게 살자는 인생관이 정립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속적으로 타락한 뒤, 일년에 책 한권 제대로 읽지 못했다. 가난한 청춘기 읽었던 책으로 평생의 자원으로 삼았을 뿐이다. 단편적인 지식이나마 그때 축적한 것들이다.

요즘 세상은 책읽기가 어렵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책 읽는 환경이 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 폰과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물량의 정보와 지식들. 그래서 현대인의 독서량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스마트폰이든 인터넷이든 내가 원하는 정보는 검색하면 다 나온다. 스마트폰 하나가 대학 도서관의 수백 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검색만이 능사일까. 필요할 때 찾아 쓰는 정보는 그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스스로 육화시키고 소화시키지 못한 정보와 지식은 쉽게 증발해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다.  

필자의 경험칙상 검색으로 얻은 지식은 자투리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주제 전체를 관통하는 맥을 찾아낼 수 없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저서 <사고 혁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호흡이 긴 지식과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 최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되,

이를 또 걸러내고 재구성할 수 있는 '지식과 사유의 근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고사성어를 일종의 정답으로 배웠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정답에 익숙하다. 정확히 말하면 정답을 외우는 데 익숙하다.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은 정답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그 사람을 평가했다. 그러므로 오직 정답은 하나다. 그러나 정답을 외우다 보면 유연하고 확장된 사고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그는 진단한다. ‘지피지기’면? ‘친구’도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안다면, 그래서 서로를 잘 안다면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손자병법의 병법대로만 사물을 인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답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  

김경집은 수많은 정답과 상식, 이야기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 가지 시선이 아니라 여러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가질 수 있는 힘, 그때 통찰력이 키워진다. 그 바탕은 당연히 인문학적 소양이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질문하고 탐구하는 습관이 통찰력과 창의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각 지식, 자투리 지식이 아니라 좀더 깊이있고, 폭넓은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인류 역사에서 가장 쉽고 편하게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휘발성이 강한 무가치한 지식정보가 아니라 자기 관점과 주관이 서는 책을 찾아있는 것도 요구된다. 김경집이 말하는 '지식과 사유의 근력'이 필요한 것이다.  

자투리 지식도 유익한 ‘정보의 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 질문에 가닿는 인생을 통찰하는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샐로판지처럼 한없이 가벼운 사람들이 사는 세태이긴 하나 그럴수록 한 여름 자기 가치관을 정립시키는 책을 한 권 손에 잡아보면 어떨까.

과거엔 먹고 살기 위한 생존에 허덕였지만, 지금은 웬만하면 먹고사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품위와 격조와 자기 존재를 세우는 사고의 확장도 필요하다. 코로나 19로 닫히고 갇힌 삶을 살고 있는 때, 이열치열의 역발상으로 인생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책 한권 손에 쥐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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