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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정쟁, 인사청문회 제도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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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정쟁, 인사청문회 제도 바뀌어야"
  • 이계홍
  • 승인 2021.05.17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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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나쁜 공직자는 사적 이득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의 허수아비가 되거나 그 자신인 사람"
공직자 능력의 유무와 함께 진정한 지도자상 가려내는 장치로 청문회 활용돼야
20대 국회 역시 협치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와중에개혁입법 통과는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21대 국회가 달라지길 국민들은 고대하고 있다. 
국회 자료사진. 최근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 대한민국 국회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한국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나쁘게 사용하는 악습이 있다. 왜 그럴까. 극단적 대결 주의 때문이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의 전통을 갖고 있다.

경쟁자를 죽여야만 내가 산다는 논리. 합의의 정신에 도달하기 전에 서로 끝을 내자는 쪽으로 격렬하게 치고받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전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싸움의 내용을 보면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말이 그 말이고, 범주 또한 거기서 거기다. 다만 다른 것은 진영이 갈라져 있다는 것뿐이다.

조선조 때, 국상을 당해서 일년상으로 할 것이냐, 삼년상으로 할 것이냐로 다투었다. 그리고 문상객들이 갓끈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느냐, 왼쪽으로 돌려야 하느냐로 싸웠다. 이른바 예송논쟁 등이다.

일년상이면 어떻고, 이년상이면 어떤가. 갓끈을 왼쪽으로 돌리면 어떻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어떤가. 진영 싸움치고는 잔망스럽고 쪼잔하다. 결국 이런 극단의 파쟁이 나라를 소모적으로 몰아 망국의 길로 갔다.

근현대에 들어와 논의 구조의 합리성이라는 기준이 작동해 민주적 절차가 마련되긴 했다. 그러나 옛날 파벌싸움보다 더 격렬하게 대립한다. 8.15 해방공간의 찬 반탁 대결 등에서 우리는 이를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민주화된 이후에는 이익을 챙기는 파벌싸움으로 변질됐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익 챙기기의 대결이다.

공직자 자질을 검증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인사청문회. 그러나 이 제도의 오남용으로 어떤 사람도 만신창이가 되어 퇴장하거나 청문회장을 통과해도 반신불수의 몸으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럴 때 공직 수행에 말발이 서고, 권위가 서겠는가.

결국 국민이 존경하고 따를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구조가 인사청문회다. 그래서 쓸만한 사람을 공직에 앉히려고 해도 가혹한 절차를 의식해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신과 같은 무결점의 사람만이 청문회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놨기 때문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종시가 전국 16개 시·도가 시행 중인 인사청문회 도입에 재차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사청문회 자료 사진 

투명사회에서 요구되는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을 공직에 앉히려는 의도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청문회 취지는 양심적이고 정의롭고, 공평무사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기준점이다.

하지만 최소한 50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없는 사람이 과연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한국 사회처럼 격변기를 겪은 사회일수록 한때의 착오와 과오와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우리의 지도층은 사회적 책무 의식이 빈곤하다.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 좋은 자리 좋은 직장 꿰차고, 떡고물이 많이 생기는, 이른바 부정과 비리가 무성한 곳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을 정교한 시스템을 가동해 골라내면 된다. 흠결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부패분자, 사기꾼 같은 악덕배만 가려내면 된다. 과거의 행적으로 보아 도저히 신뢰할만한 공직자로 임명할 수 없다는 이런 제한된 몇 가지 기준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행적과 발언 등이 일관성이 있나 없나를 판별하는 것도 청문회의 주요 기능 중 하나다.

그러나 적으로 간주하고 반대하고 짓밟는 것이 아니라 직무수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전문성과 능력이 있나를 살펴야 한다.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국정 표류를 막기 위해서도 가능한 한 청문회 제도는 정략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당했기 때문에 앙갚음한다는 태도는 국정의 난맥상만 초래한다.

항간에선 의원들이 전문성이 떨어지니 사소한 것을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지고, 스타 주의에 젖어 폭로 청문회를 전개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제 5공 청문회와 같은 시대는 지났다.

전문성 검증은 강화하되 인신공격과 창피 주기 식의 억측 청문회는 억제하는 것이 좋다. 이런 것 때문에 청문회 무용론이 나오지 않는가. 무용론보다는 존재하는 것이 필터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할 현안에 대한 토론만으로도 청문회 시간은 짧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영과학부의 로버트 서튼 교수는 “나쁜 공직자는 사적 이득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의 허수아비가 되거나 그 자신인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지도자나 공직자를 걸러내야 하지만 나빠질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걸러내는 것도 진정한 청문회 역할이자 임무다.

인사청문회가 국민 피로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청문회는 공직자 능력의 유무와 함께 진정한 지도자상을 가려내는 장치로 활용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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