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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도 워싱턴D.C.가 기증받은 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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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도 워싱턴D.C.가 기증받은 땅이라고?”
  • 성선제 변호사
  • 승인 2021.04.07 09: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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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제 미국 변호사가 알려주는 글로벌 행정수도 이야기(1)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워싱턴 국회 의사당 (사진=워싱턴 국회 의사당 홈페이지)
워싱턴 국회 의사당 ⓒ 워싱턴 국회 의사당 홈페이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가면 깜짝 놀랄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 백악관의 경비가 너무 허술해 보인다는 것.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심이 아니라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외국인도 백악관 담장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다가갈 수 있고, 심지어 백악관 정원이 훤히 보인다.

우리의 청와대는 구중궁궐로 접근이 제한되지만, 미국의 백악관은 오히려 워싱턴의 대표 관광코스다. 예약만 하면 누구나 백악관 내부도 견학할 수 있다.

백악관은 권력의 심장부일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대통령 기념관인 셈이다. 그만큼 국민에게 친근한 시설이다. 운 좋으면 대통령의 헬기 탑승 장면이나 이동 모습도 볼 수도 있다.

미국 워싱턴 백안관 전경 ⓒ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미국 워싱턴 백안관 전경 ⓒ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 ‘미국수도 워싱턴 D.C.의 비밀은?’


워싱턴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워싱턴 대통령으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을 의미한다.

둘째, 미국의 수도로 혼동을 피하고자 워싱턴 D.C.(District of Columbia)라고 부른다.

셋째, 북서부 태평양 연안의 워싱턴주(State of Washington)를 의미한다. 놀랍게도 미국의 초대 수도는 워싱턴이 아니라 뉴욕이었다. 그런데 뉴욕은 대서양에 붙어 있어 영국의 공격으로부터 방어가 쉽지 않은 이유로 수도를 서쪽의 필라델피아로 이전했다.

필라델피아도 영국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내륙 지역인 지금의 워싱턴으로 수도를 다시 이전했다. 초창기 미국도 국가의 안전을 위해 수도를 두 번이나 이전하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제외한 경제, 사회, 문화적 기반은 영국의 것을 대부분 모방했다. 정치 영역은 영국으로부터 철저히 단절을 목표했지만, 나머지는 영국을 흠모하고 동경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대표 사례가 지명이다. 영국 런던의 거리 이름이나 광장 이름이 대부분 왕과 정치인, 장군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듯이 미국도 도시와  거리 이름을 주요 업적을 남긴 정치인과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도 이름 워싱턴도 연방 정부에 땅을 기증한 자의 이름을 기려 명명한 것이다. 원래 미국의 수도 워싱턴 지역은 조지 워싱턴 개인 농장이었다. 워싱턴이 한때 소유한 노예가 3000명이 넘은 것을 보면 그가 소유한 토지가 어마어마한 규모인 것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워싱턴이 자신의 땅을 미국 연방의 수도로 사용하도록 기증했다. 이를 기념해 미국의 수도 이름을 워싱턴이라고 지었다.

미국 행정수도인 워싱턴의 백악관 전경. 워싱턴에 미국 수도가 있다고 해서 경제수도인 뉴욕의 대기업집단, 금융가가 불이익을 본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미국 행정수도인 워싱턴의 제퍼슨 기념관

● 자수성가한 워싱턴이 만든 ‘조지 워싱턴대’


조지 워싱턴 동상 (제공=성선제 변호사)

백악관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미터 지점에 유명한 조지 워싱턴 대학교가 있다.

학교 이름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념해 세워진 학교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사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이 당시에도 제퍼슨 대통령이나 주지사들은 하버드나 예일 대학교 등 명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조지 워싱턴은 부유한 아버지와 아버지의 둘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워싱턴이 열 살 무렵 돌아가시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겨우 마쳤다.

열 살 차이가 넘는 아버지의 첫째 부인 아들인 형이 아버지를 대신해 키웠고 결혼하기까지 키워냈다. 오늘날로 말하면 조실부모 후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흙수저의 대표 케이스다.

이런 이유로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워싱턴은 자신의 땅을 흔쾌히 기부해 미국의 수도에 걸맞은 대학의 탄생을 염원했다. 원래 조지 워싱턴은 미국 수도 워싱턴에 국립대학교건립을 청원하고 발의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1821년 미국 연방의회가 컬럼비안 칼리지(Columbian College)라는 교명으로 컬럼비아 특별구에 무종파사립대학의 설립을 승인해 3개 학부, 1명의 교수, 30명의 학생으로 한 동의 건물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빠르게 성장해 1873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 1904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한 이름으로 현 교명으로 변경됐다. 주 캠퍼스는 백악관에서 서쪽으로 네 블록 떨어진 번화가에 위치해 시 외곽 조지 워싱턴 생가가 있는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에도 캠퍼스가 있다.

조지 워싱턴대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 소재한 연구중심 사립종합대학교다. 미국의 수도에 시민을 위한 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한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의회에 대학 설립을 요청했으나 바로 설립되지는 못했다.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IBRD) 등이 조지 워싱턴 대학 내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 수도에 있는 만큼 특히 정치·경제적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조지 워싱턴대는 원래 워싱턴 대통령이 수도에 걸맞게 국립으로 만들려고 했던 대학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가 대학 캠퍼스 내에 있어 경제적으로 막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백악관과 국무부 등 연방정부 기관에서 걸어서 다닐 만큼 가깝다는 점이다.


● 우리가 잘 아는 조지 워싱턴대 ‘대표졸업생’은?


조지 워싱턴대 대표졸업생으로 유명한 (좌) 이승만 대통령과 (우)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 성선제 변호사 제공

조지 워싱턴대 대표졸업생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미국 FBI 국장을 지낸 에드거 후버, 미국 상원의원 윌리엄 풀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 존 F.케네디의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있다.

유명한 졸업생 중 눈에 띄는 두 명 중 한 명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을 기념해 세워진 학교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졸업했다니 재밌는 사실이 틀림없다.

이승만은 1899년 25살에 고종 폐위 사건 연루로 한성 감옥에 5년간 투옥 후 1904년 특별 사면으로 석방 뒤 한국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1905년 조지 워싱턴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하버드에서 석사 학위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 번째 졸업생은 우리가 잘 아는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다.

그는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1937년 뉴욕의 빈민가 할렘에서 태어났다. 1958년 뉴욕시립대학교 지질학과 졸업 후, 뉴욕시립대 학군단(ROTC) 장교 임관 뒤 1963년 베트남전에 참전, 1969년 워싱턴 군사령부로 이동했다.

성실함과 강직함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백악관에 근무하는 동안 35살인 1971년에 조지 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백악관 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백악관에서 100m 거리였기 때문에 주간 근무 후 야간 대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일터에서 가까운 배움터, 많은 이들이 이것이야말로 파월의 리더십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사례로 유명하다.

 ◎ 성선제 변호사는 

성선제 미국 변호사/전 고려대 초빙교수
성선제 미국 변호사/전 고려대 초빙교수

필자는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법학 학사, 인디애나대 법학 석사, 위스콘신대 법학 박사를 이수했다.

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전 대전광역시 시설관리공단 비상임이사, 전 세종특별자치시 투자유치자문관, 전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전 한남대 법대 교수, 전 버클리대 방문연구원, 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 등으로 지내며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새로 시작하는 '성선제 국제변호사의 어바웃 행정수도' 칼럼은 그만의 국제화 감각과 폭넓은 정치 이력으로 국제 행정수도에 대한 이야기를 차례로 담는다.   

미국 행정수도의 숨겨진 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한 선진국들의 사례를 통해 세종시에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과 현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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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바위 2021-04-07 21:18:00
잘못 알고 계시네요.
수도를 필라델피아에서 다시 뉴욕으로 이전하였다가
수도가 북부에 있으면 북부 편향적이 된다고 미국 국부 토머스재퍼슨이 주장하여
당시 남부와 북부의 정확히 중간 지점인 현 워싱턴 DC에 수도를 설치하기로
남북 정치인들 간에 합의하였답니다.
미국 역사 자료를 찾아보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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