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대한민국 학교폭력, '폭로의 사회학'
상태바
대한민국 학교폭력, '폭로의 사회학'
  • 이계홍
  • 승인 2021.03.16 0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필의 시선] 유명세를 탄 인기인일수록 자기성찰의 태도 가져야
혹여 인기 시샘하듯, 30~40년 묵은 ‘학폭’ 끄집어내기도 너무 야박
지난해 법무부 청소년키움센터 주관으로 열린 찾아가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 모습. ㅇ(제공=법무부 청주청소년키움센터)
지난해 법무부 청소년키움센터 주관으로 열린 찾아가는 학교폭력 예방 교육 모습. 이 기사와 무관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필자는 중·고교 시절 귀싸대기와 궁둥이를 내놓고 다녔다. 키도 작고, 힘이 없는 반면에 주책없이 깐죽대기 좋아해서 덩치 큰 아이들의 주먹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어떤 때는 이유도 없이 맞았고, 또 어떤 때는 “싸가지 없이 대든다”고 해서 구타 당했다. 

그러나 그러려니 했다. 억울했을망정 그들을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일찍 학교에 들어갔고, 그래서 큰 아이들로부터 얻어터지는 것이 하나의 개인적 행사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동창회 모임에서 내가 얻어맞았노라고 말하면 “그랬나? 나는 기억에 없는데?”라고 이내 친구들은 오리발을 내민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웃고 만다. 

하긴 가해자는 잊기 쉽다. 폭력 행사를 취미로 한 경우는 누구나 쥐어박았으니 일종의 ‘죄의 평범성’으로 타성에 젖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를 공개석상에 세워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은 달라졌다. 당시의 관점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해프닝이지만, 지금의 기준에서는 엄연한 인권 유린이고, 엄연한 폭력이다.

그렇다고 오늘의 기준으로 그때 일을 까발린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해 학생을 앞으로 끌어내 공개재판을 해 망신시킬 것인가.  

최근 연예인과 운동선수 중심으로 과거 학원폭력 가해자라는 댓글 고발이 올라오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과한 경우 재판에 고발하겠다고 하고, 공인생활을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한다. 

특히 유명세를 타는 예능인과 체육인들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 유명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이들이 댓글 폭로 대상이 된 것은 한참 잘나가는 인기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폭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원산폭격 시킴, 장기판 모서리로 머리를 때림, 개인연습 도중 후배들과 1:1 내기를 한 뒤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주고 과자나 음료수 등을 사오라고 강요함” 등 구체적 사례들이 나온다. 

가해 인물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폭로자는 30년도 넘은 중학교 시절, 그리고 27년 전 대학재학 시절까지 현재에 소환했다. 진실과 너무나 다른 사실들을 여러 명의 기억들을 엮고 묶는 방식으로 폭로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라며 ‘학폭 의혹’을 부인했다.

이어 그는 "회상해보면 어린 시절 저 또한 단체 기합을 자주 받았으며, 모든 운동 선수들에게는 기강이 엄격했던 것이 사실이다"라며 "당시 주장을 맡았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줬던 일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당시 일은 후배들에게 매우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이 든다. 이 기회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런 악의적인 모함을 통해 억울한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수사기관에 의뢰해 진실을 규명하려 한다"라고도 했다.

모델 출신 배우도 입질에 올랐다.

"친구랑 같이 맞을래? 혼자 맞을래?" 이러면서 중학교 때 그가 집단폭행의 주동자였다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그도 허위 사실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런 사례는 연예인에게서 두드러지더니 근래는 체육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세종시교육청이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언어폭력이 51.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제작=김민주 인턴기자)<br>
세종시교육청이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언어폭력이 51.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제작=김민주 인턴기자)

피해자 입장에선 청소년 시절 폭력을 일삼던 자가 인기인이 되어 고상한 척, 착한 척하는 것이 이중인격적이고, 상처를 안고 살던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성자는 고향에서 평가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가 성장기 고향에서 반드시 모범적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세속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에 대해 고향 사람들이 “그 사람 자라던 시절에는 개판이었어. 훔쳐먹고, 사기치고, 사람 패고 그랬던 자야”하고 비난한 경우를 본다.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성장기엔 ‘구제하지 못할 잡놈’으로 놀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온갖 시행착오와 자기 성찰의 과정을 통해 사람이 달라졌을 수 있다. 과거의 ‘검은 손’을 씻고 ‘하얀 손’의 존경받는 인물이 되도록 스스로를 연마하고,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인생관과 세계관을 확장했을 수 있다.

그 과정이 험난할수록 그의 모습은 빛나는 휘광(輝光)이 되었을 수 있다.

고향 사람들은 그의 이런 과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성장기의 그를 기억하며 “X자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연단의 과정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런 사람일수록 과거를 감추고 싶어한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을 외면한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 더많은 자기 고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고향을 자주 찾는 것이 화해의 악수를 내미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스타의 인성 검증은 필요하다. 외피만 가지고 그를 평가할 수 없다. 그래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자기 성찰이 먼저 요구된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고 폭로하고 인기를 시샘하듯 30년, 40년 묵은 ‘학폭’을 끄집어낸다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

그들이 ‘돌아온 탕아’로 멈추지 않고, 성숙한 인격체로 돌아왔다면 기꺼이 응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