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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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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 이계홍
  • 승인 2021.02.28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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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102주년 3.1절에 부쳐... 반드시 되살려야할 역사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찾는 역사교육 절실
3.1운동 당시 기념 자료  ⓒ독립기념관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3.1절 행사를 갖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얻자는 데 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성찰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거기에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일제에 저항했던 사람이나 친일했던 사람이나 한 세기가 넘어간 오늘의 시점에서 민족의 성원으로서 과연 우리가 어떤 선택지를 택해 가야 하는지 가늠해 보자는 데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 통치를 받으면서 우리는 참혹하게 짓밟혔다.

일제 35년은 수탈과 착취당한 시기였다. 일본으로부터 개화의 문명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150만명의 일제 징용자가 강제로 끌려갔다. 또 수만 명의 부녀자·소녀들이 일본군의 성노예(UN의 공식 명칭)로 제공되었다.

그들로부터 개화와 문명의 혜택을 받았다고 해도 천부의 인권이 유린되었다면 악질적인 식민지 운영이었다고 단정한다. 사실 식민지 통치국가 중 일본의 조선반도 통치는 가장 악명이 높았다.

100년 전  세종시 최초로 열렸던 '3.1 전의장날 만세운동'이 12일 세종시 전의면 왕의물시장에서 재현됐다.
102년 전 세종시 전의면 왕의물 시장에서도 '3.1 전의장날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사진은 지난 2019년 100주년 기념행사

절망의 나라를 극복하기 위해 연인원 200만명이 3.1 독립만세 운동을 펼쳤다.

이중 20만명이 체포되고 수만명이 수감되었으며, 7000명이 죽었다.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 이처럼 참혹한 고문과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그럴수록 독립운동이 가열찼다.

국내는 물론 만주에서, 시베리아에서, 상하이에서, 혹은 미주 지역에서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홀연히 나섰다. 그리고 상당수가 현장에서 총맞아 죽거나, 체포, 구속된 뒤, 고문과 중형, 그리고 사형까지 당했다.  

가해진 고문은 유례를 찾을 수 없었다.

손톱 발톱에 바늘 찌르기, 생매장하여 위협하기, 혀를 잡아빼기, 어깨뼈 탈골시키기, 몸에 전선을 끼운 전기고문, 불에 달군 인두로 허벅지 지지기, 허공에 매달아 돌리며 불에 굽기, 정강이뼈 부러뜨리기, 쇠좆메(황소의 생식기를 말린 것)로 발가벗긴 몸 후려치기, 심지어 여성의 음부에 쇠좆메를 물에 불려서 삽입시키기 등등... 

이런 광기와 야만이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들에게 행해졌다.

인간의 인격을 갈기갈기 찢는 고문이다. 고문당한 사람도 인간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더러운 행위였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식민통치가 일본의 조선반도 지배였다고 세계의 학계는 지적한 바 있다.  

일제의 폭압에 맞서 스스로 희생의 길을 택한 이들이 200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기념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광야에 나섰나.

식민지배의 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도 왜 피흘리는 복판에 가있었나. 안해도 되는 것을 왜 스스로 희생의 길을 택했나.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가족에게 피해만 안겨주는데도 그 길을 나섰나.

수많은 변절 지식인들이 일제에 협력하라고 고함치는데도 의연히 쫓기는 길을 갔나... 

따지고 보면, 그들이 나라의 독립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을까? 캄캄한 터널 속에 갇혀있는데 언제 조국 해방의 빛을 보리라고 기대했을까? 지식인일수록 급속도로 일본화 되어가고 있는데, 어떤 확신을 가졌기에 무너지지 않고 쫓기는 길을 걸어갔을까. 

그들에게는 아마도 절망과 좌절과 비애만이 흉중에 남았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의 존엄성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자기 비하속에 사는 것을 허용치 않았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을 후대 사람들은 성스럽고 고결한 길이라고 추앙하지만, 그들이 그런 추앙을 받기 위해 그 자리에 섰다고 보지 않는다.

역사는 그런 선구자들로 인해 한발짝씩 나아간다. 그러나 기억하고 되살리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희생의 가치를 냉소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엔 가진 자, 배운 자들이 더 많다. 

하바드 대학의 램지어 교수가 “종군위안부는 계약에 의한 성매매자”라고 논문에 쓴 것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램지어 교수보다 더한 사람들이 우리 내부에 존재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피해 생존자가 두 눈뜨고 있고, 자료가 넘치고, 당시 일본군의 증언까지 생생하게 나오는데도 눈가리고 아웅한다.

여기에 더욱 쓸쓸한 점은, 일본의 극우정권과 극우세력의 주장에 더해 일본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국내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생각은 자유지만, 역사적 실체를 외면하거나 비틀어서는 안된다.

강제적으로, 혹은 온갖 감언이설로, 무지한 탓으로 멋모르고 도장을 찍은 것이 자발적인가. 그들이 매춘행위를 하면서 자유롭게 살았나? 

소위 ‘자발적 행위’의 결과로서 그들이 돈벌어 재산을 모았던가. 돈버는 이유가 장차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집 짓고 자식 낳고 행복하게 사는 꿈이었을진대, 그들이 그런 길을 갔나?

통제되고 감시받고, 도망가면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나. 마음대로 정조를 유린하고 망가진 육체를 똥막대기 취급하여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것이 엄연한 역사적 현실 아니었던가. 그러면 최소한 미안한 줄이라도 알아야지...     

세종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 100초 영화제'와 '애국가 부르기 합창 경연대회 참가자'를 공모한다.
3.1운동이 후대에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잊으면 안된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자들 때문에 역사는 반드시 기억하고 되살려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실제로 일본은 아시아 침략으로 수백만의 인명을 죽인 전범의 유골이 안치된 야수쿠니 신사를 일본 정부가 나서서 추모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들은 지난 과오를 인정치 않는다. 재무장 수정헌법 개정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일본의 신사 참배를 일본의 ‘젠틀맨’에게 인사하는 것이냐고 묻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역사 교육을 너무 등한시해왔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역사 교육이 왜 필요한가를 우리는 3.1절을 맞아 되새겨야 한다. 이러다가는 자칫 역사의 미아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교과서적인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찾는 나침판으로서의 역사 교육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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