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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이계홍 주필, 대하 역사소설 ‘깃발’ 5권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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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이계홍 주필, 대하 역사소설 ‘깃발’ 5권 간행
  • 이주은 기자
  • 승인 2021.02.15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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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정충신 장군’ 일대기 그린 역사소설, 그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까지 조선을 지킨 충무공 금남군 정충신의 삶 조명
이계홍 세종포스트 주필이 충무공 정충신의 삶을 집대성한 소설 <깃발>을 출간했다. 

[세종포스트 이주은 기자] 소설가이자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이 최근 임진왜란 시 이순신 장군과 같이 충무공 작호를 받은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대하 역사소설 <깃발>을 펴냈다.

도서출판 범우사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가장 험난한 격동기에 오직 군인 외길을 걸어오면서 나라를 지켜온 금남군 정충신 장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역사소설 <깃발>은 만 16세에 무과에 차석으로 급제한 뒤 전 생애 60년 중 44년을 오직 국방의 최일선에서 군인 외길을 걸어온 정충신의 삶의 역정을 그린 작품이다.

정충신 장군은 우리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시기인 선조-광해군-인조 대의 무장으로 시대모순을 헤쳐나간 보기 드문 개혁파로서의 일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정충신은 임진왜란 3대 육전(陸戰) 중 하나인 이치·웅치대첩(충남 금산·전북 완주·무주·진안·장수)에서 소년 척후병으로 활동하며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이 전투 승리로 전라도가 왜군에 점령되지 않고, 아군 병력 충원은 물론 후방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군을 물리친 중심이 됐다.

소년 병사 정충신은 이치·웅치전 승전을 기록한 권율 장군의 장계를 품에 안고 단 25일 만에 의주로 달려가 압록강 변에서 명나라로 도망갈 배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선조에게 전달했다.

만약 권율 장군의 장계가 도달하지 않았다면 선조는 압록강을 건넜을 것이고, 그랬다면 조선이란 나라는 영영 지도상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이계홍 작가는 광주광역시의 주 도로이자 5.18 민주화 항쟁의 본거지인 ‘금남로’가 정충신의 업적을 기려 내린 작호(爵號:왕이 공을 세운 당대의 훈신에게 내리던 훈작)인 ‘금남군’에서 유래된 점에 유의하면서 광주 정신과 일치된 정충신 장군의 개혁 장군으로서의 일대기를 그려냈다. 정충신은 광주 출신 장수다.

이계홍 작가는 35년의 언론사 근무를 마치고 10년 전부터 문필활동을 하면서 주로 우리 역사의 중요 마디를 추적해오다 이같이 <깃발>이라는 대작을 들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는 1974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통해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언론계 생활을 하면서 사실상 문학을 중단했는데, 언론사 퇴직과 함께 우리 역사의 내면, 그중에서도 역사의 수난기를 살피기 시작했다”며 “그 수난기는 임진왜란-정유재란-정묘호란-병자호란 시기, 구한말의 망국과 해방 공간의 혼란기 등 크게 세 시기로 본다”고 말했다.

이중 임진왜란 시기를 골라 작가적 상상력과 기자적 현장성으로 앵글을 들이대 정충신을 통해 해당 시대의 모순과 사회상, 그중 눈뜨지 못한 사대부의 실상을 밀도 있게 그렸다.

그는 “이때 우리가 좀 더 역사의식에 투철하고, 갈등과 분열과 대립상을 성찰하는 가운데 창조적으로 미래 세계를 설계했더라면 어두운 시기를 극복하고 향기로운 역사를 가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런 성찰이 해결되지 않고 갈등과 대립이 격화됨으로써 구한말의 망국과 8.15해방의 분열과 분단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이계홍 작가는 이 때문에 “묻힌 역사적 인물을 호출해 그들의 행로를 더듬어 재생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갈 바를 되돌아보는 거울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중 충무공 금남군 정충신 장군은 이 소재에 적합한 인물이었다”고 소개했다.

역사소설 <깃발>은 만 16세의 소년 병사 정충신이 2천5백 리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 의주로 피난 간 선조 임금에게 장계를 올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장계는 임진왜란 때 이치·웅치전투에서 승리로 이끈 광주 목사이자 전라도체찰사인 권율이 쓴 승전 기록이었다. 장계는 권율 장군이 임진왜란 3대 육전(陸戰) 중 하나인 이치·웅치전투에서 왜적을 무찔러 곡창지대 호남을 지켰으니 “상감마마는 더는 도망가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뒤이어 정충신이 정유재란(1597)―인조반정(1623)―이괄의 난(1624)―안현전투(1924)-쌍령전투(1924)-정묘호란(1627)―병자호란(1636) 직전까지 한평생 무장으로서 피 흘린 전선의 복판에 있었던 이야기가 그려진다. 널리 알려진 장수의 일대기가 아니라 묻혀있는 장수를 발굴해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정충신의 군인 일생 중 그가 거친 직책만도 16세에 무과에 차석으로 급제한 뒤 군기시정(軍器寺正)―선사포 첨사―조산보 만호―보을하진 첨사―포이 만호―창주 첨사―만포진 첨사―안주목사 겸 방어사―평안도 병마좌우후―이괄의 난 전부대장(前部大將)―영변대도호부사―팔도부원수―주사원수(舟師元帥)―오위도총부도총관―포도대장―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등 20여 개나 된다.

당시의 주요 전투에는 그가 모두 참전했다. 이같은 공로로 그의 사후 49년 후인 숙종대에 ‘충무공’ 시호가 내려졌다.

직책이 말해주듯 정충신은 생애 60년 동안 44년을 오직 국토방위 최일선에 있었다. 직업군인 외길의 경력으로서 충무공 시호를 받은 인물은 정충신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세에 뚜렷하게 호출되지 못했다.

이는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조 사회에서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한계 때문에 그의 활약상이 묻힌 측면이 있다. 주류 권력층에게 비주류로서 견제를 받은 점과 서민 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저평가됐다. 거기에 군사 외교적 역할이 당시의 정치풍토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라는 점도 작용했다고 이 작가는 분석한다.

정충신은 친명배청(親明背淸)을 주장하는 주류 정치계의 척화론(후금=청나라 배격)이 아니라 주화론(후금=청나라와의 화친)이라는 비주류의 길을 장만·최명길과 함께 걸어 철저히 소외되었다.

이는 조선조 260년 동안 관통해왔다. 또 북방 변경 최일선에 있었기 때문에 중앙 정치무대에 자주 등장하지 못한 것이 그가 역사에 크게 호명되지 못한 요인이 됐다.

정충신 장군은 최전방의 무관이면서도 사서삼경과 천 리에 능한 지식인이었으며, 외교와 첩보전에 밝아 광해군 시기, 명·청 양대 세력의 동향을 살피며 중립노선을 걷자고 주장한 장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현실적인 국제적 감각으로 중립외교와 개혁 담론으로 나라를 새롭게 구성하자는 정치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후금국에 전하려는 선전포고문과 다름없는 조정의 서찰을 중간에 가로채 불살라버린 사건으로 귀양을 갔다.

정충신 장군이 활동하던 시기, 중앙 정치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묻혀 정파끼리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선조·광해·인조 대, 명나라에 대한 충성 경쟁과 함께 동인 대 서인, 훈구 대 사림, 북인 대 남인, 대북 대 소북의 정치투쟁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원리주의, 공리공담에 빠져 나라가 허우적거렸다.

이때 그는 오랑캐(여진―후금―청나라)의 흥기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으나 양 파벌로부터 동시에 배척받았다.

사대부의 좁은 세계관과 작은 것에 목숨 걸고 싸우는 진창 속에서도 개혁 담론을 펼치다 좌절했으나 그럴수록 굽힘없이 나라의 변화를 추동하는 중심에 섰다. 한편 정충신 장군의 묘소는 충남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 있다. 이곳은 그의 뜻을 기려 당대 왕이 내린 사패지다.

이계홍 작가는 “역사소설은 베스트셀러 성격보다 스테디셀러 범주에 들기 때문에 범우사가 긴 호흡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며 그동안 여러 군데 출판을 의뢰했으나 대부분 어려운 출판시장에 대작을 펴낼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계홍 작가는 <월간문학>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도 군인 중심으로 해방 공간의 좌우익 대결을 그린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도 36회에 걸쳐 연재했는데, 이 작품도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구한말의 망국 역사와 87년 6.10 민주항쟁의 복판 광화문에서 직접 체험했던 민주화 과정을 그리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한편,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대하 역사소설 <깃발>(각 권 1만 3000원)을 쓴 이계홍 작가의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신간 <깃발>을 출간한 이계홍 세종포스트 주필
신간 <깃발>을 출간한 이계홍 세종포스트 주필

◎ 주요 경력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현대문학 전공).

-동아일보 문화부 체육부 기자 및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문화일보 문화부장 체육부장 특집부장 사회2부장, 서울신문 논설위원 수석편집부 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국장급). 서울여자대학교, 용인대학교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국책연구기관) 연구기획조정팀 전문위원 역임.

-1974 월간문학 신인상 소설부문 당선으로 문단 데뷔.

작품집
《틈만 나면 자살하는 남자》(책나라), 중편 소설집 《비켜 앉은 남자》(신원문화사), 소설집 《밑천》(문학아카데미), 장편소설 《초록빛 파도》(아사달의 꽃), 소설집 《서울 노마드》(문학나무) 외.

인물전기 및 휴먼스토리
《이계홍의 휴먼스토리》(모아드림·월간 ‘신동아’ 연재 ‘이 사람의 삶’ 인터뷰집), 인물전기 《장군이 된 이등병 최갑석》(화남출판사), 《빨간 마후라 하늘에 등불 켜고 -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 이야기》(이미지북), 《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 –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 전기》(국방일보 연재), 소설 《행군 - 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월간문학 34회 연재), 역사소설 《깃발 - 충무공 금남군 정충신 이야기》(‘남도일보’ 650회 연재).

현재 세종포스트 주필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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