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우리말 이름의 '세종시', 숨겨진 우여곡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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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우리말 이름의 '세종시', 숨겨진 우여곡절
  • 최민호
  • 승인 2020.09.0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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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온 세종(Rhapsody on Sejong) 5편] 순우리말 도시로 변모하기까지 순탄찮은 여정
최민호 전 행복청장, 2011년 제안으로 스타트... 어색함과 찬반 양론 속 제자리를 잡다
세종시 행복도시 지형도. 각 생활권마다 도로도 한글 이름을 부여했다. (제공=행복청)

고기 집에 가면 같은 발인데 닭은 닭발이라 하고, 소의 발은 우족이라 한다. 그러면서 돼지는 족발이라 한다. 닭발, 돼지족발(足발), 우족(牛足)…

한자를 쓰면 고상하고 귀히 여겨지는 느낌은 짐승의 발을 지칭하는 명칭에서도 엿보이는가. 닭보다는 돼지, 돼지보다는 소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이런 명칭에서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하긴 아이들에게는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웃어른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실례가 된다. 어른들에게는 성함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성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웃음거리가 된다.

한글 이름은 한자 이름에 비해 열등하다는 오랜 인습을 세종시에서 깨버려야 한다는 발상은 2011년 5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지낸 최민호 청장의 제안에서 비롯했다.

최민호 행복청장은 한글날이었던 2011년 10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조 정신을 계승하고 세종시를 한국적인 품격을 더한 명품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 내 주요 시설 명칭을 순 우리말로 제정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행복청은 신설되는 세종시 도로, 교량, 학교 등의 우리 말 제정을 충남대 산학협력단에 연구 의뢰하고, 국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국민선호도 조사 및 공모'를 실시했다.

공모에는 국민과 해외동포 등 모두 2133명이 참여했고, 조사 결과 대부분 국민이 세종시의 공공시설 명칭을 순 우리말 또는 세종대왕과 연계된 명칭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924명, 90%)

그리고 행정구역 등 5개 분야별로 국민이 직접 제안한 총 1289건의 순 우리말 명칭을 명칭제정자문위원회(위원장 송현 한글문화원장) 심사를 통해 실제 시설명칭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명칭제정자문위원회는 심의를 통해 행정구역 등 5개 분야 1066여개의 이름을 마련하고 이중 우수명칭 350개를 발표하였다. 

예를 들어 누리동(행정구역), 가람마을(마을), 슬기로(도로), 새빛 중학교(학교) 등이었다.  

도로명의 경우 순 우리말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위치정보까지 인지가 가능토록 ㄱ∼ㅎ 등 14개 초성자음을 도로의 순번에 따라 응요하여 이름을 부여했다. 

ㄱ은 '겨레로', ㄴ은 '나눔로', ㄷ은 '다붓로'... 식이었다. 

순 우리말일 뿐만 아니라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조화시킨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부르기 쉽고 듣기 좋은 이름을 선정하였던 것이다. 

당시 14개의 도로명은 다음과 같다. 

“겨레로, 나눔로, 다붓로, 라온로, 만남로, 보듬로, 솔빛로, 이든로, 종요로, 채움로, 큰뜻로, 탄탄로, 포실로, 한결로.”

교량도 마찬가지였다. 

금강1교, 금강2교로 불리던 교량이름이 가람교, 학나래교, 한두리교, 우람교 등으로 다시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학교도 참샘 초등학교, 솔밭 중학교, 한솔고등학교...

공원이나 마을 이름도 한뜰 마을, 큰뜰 공원과 같은 우리 말 이름이 붙여졌다. 

다만 동(洞)과 같은 행정구역의 명칭(23건)은 행복도시 건설청이 아닌 세종시 조례로 확정되기 때문에 행정안전부(세종시 출범준비단) 제안과 지역주민 의견수렴 등 행정절차를 거쳐 2012년 7월 세종시 출범을 기다려 정해졌다.   

세종시의 도로나 공공시설물의 이름을 순 우리말로 정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글을 세종시 삶에 잇대어 보고자 하는 단초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제안자였던 최민호 청장은 "도시 내 주요 시설 이름을 순우리말로 제정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체계적이고 아름다운 순우리말 명칭이 세종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다른 도시와 차별된 브랜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순 우리말 이름은 의외로 생소하기도 했다.  

한자 이름에 익숙하여 그간 순수한 우리 말을 잃어버린 탓이 컸다. 그렇지만 우리 말 이름은 원래 우리말로 지어져 불리운 마을 이름이 후에 한자어로 변환된 것을 다시 옛날의 우리 고유지명으로 되찾는 의미도 컸다.

예를 들어 ‘절골’이라 불리던 마을이 후에 ‘사곡(寺谷)’마을로 한자화한 경우 같은 것이다. 이를 다시 ‘절골’로 부른다면 더 역사성이 깊어지지 않을까. 

순 우리말 이름은 쓰지 않던 말이라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정겨운 느낌이 새록새록 포근하게 다가온다는 평이 많았다. 

겨레로, 늘빛로, 다솜(사랑의 옛말)로, 라온(즐거운의 옛말)로, 배움로, 슬기로... 등의 도로이름.  아름답고 산뜻한 이름이지 않은가?  

순 우리말 이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치기도 했다.

순 우리말 이름으로만 짓다보니 역사성, 상징성, 대표성 등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3년 한글 이름의 원칙에 약간의 예외를 인정하였다.

당시 행복도시건설청의 이충재 청장은 행복청의 도시계획국장 등 당연직 4명과 민간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명칭제정자문위원회에서 호수공원과 역사공원 등의 이름을 순 우리말에서 한문이 들어간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이충재 청장은 “명칭제정자문위원회에서 지난해 명칭을 만들 때 정한 순 우리말 제정원칙을 큰 틀에서 이어가되, 그 지역의 역사성, 사회성, 특수성 등을 감안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누리마루 호수공원→‘세종호수공원’, ▲말모이 역사공원→‘한솔동 백제고분 역사공원’ ▲나릿재 역사공원→‘나성동 독락정 역사공원’ ▲두물 역사공원→‘합강리 합호서원 역사공원’ ▲솔밭티 역사공원→‘고운동 어서각 역사공원’ ▲모래 역사공원→‘세종리 은행나무 역사공원’등으로 변경이 이뤄졌다. 

도로명 역시 동(洞)명칭을 넣어 주민들이 보다 찾기 쉽게 ‘새롬로’, ‘다정서로’등으로 바꾸거나, ‘국세청로’, ‘국책연구원로’, ‘명학산단로’등으로 공공기관이나 산업단지명을 넣기도 하였다.

‘절재로’는 가락마을 8단지 교차로에서 국책연구단지 앞 사거리에 이르는 7km 구간이다. 세종대왕 때의 김종서 장군의 호를 따서 그를 기념하는 도로명이다.

행정구역 명칭제정 과정에서도 과거의 이름과 새로운 이름과의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담동’과 ‘방축동’의 예가 그것이었다.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제시된 ‘도담동’이 세종시 의회 심의 과정에서 옛 이름인 ‘방축동’으로 바뀌었다. 

당시 대표 발의에 나선 세종시의회 고준일 의원은 “마을의 주산이 황우산이다. 황소가 엎드려 있는 산이란 뜻으로 가축을 풀어 놓은 방축동 이름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며 방축동의 역사적 연유를 설명하였다. 

일률적인 우리말 이름보다 역사성도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은 한글이름인 ‘도담동’을 주장함으로써 방축동은 재의 절차를 밟게 되었고, 그 결과 ‘도담동’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2020년 7월 기준으로 신도시 지역의 18개 동(洞)이름은 다정동, 새롬동, 한솔동, 나성동, 가람동, 대평동, 보람동, 반곡동, 소담동, 합강동, 집현동, 도담동, 어진동, 산울동, 해밀동, 아름동, 고운동등 우리말 이름이 대부분이다. 

세종시가 지속적으로 순우리말 이름으로 도시를 구성하는 정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최근만 해도 2018년에 문을 여는 12개 학교 이름이 모두 순 우리말로 지어졌다. 다정, 새움, 대평, 새솔 등 다른 지역의 학교명과 중복되지 않으며, 부르기 쉽거나 지역과 어울리는 학교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세종대왕의 혼이 깃들인 한글로만 표기될 수 있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으로 세종시의 공공시설의 이름이 지어졌다는 것은 세종시의 또 하나의 명품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전국의 어느 지역도 불가능한, 오로지 세종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세종시에서 매년 한글날에 전국적으로 한글 백일장이나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 경연대회를 갖는다면 그 또한 매우 기념비적인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체로 세종의 브랜드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금강줄기 중 공주 부여를 통과하는 줄기는 ‘백마강’으로 부른다. 마찬가지로 세종시를 통과하는 구역은 금강(錦江)을 우리말로 풀이한 ‘비단강’으로 부른다면 이 또한 색다르지 않겠는가.

세종시의 보도블럭은 예쁜 한글의 자음과 모음문양으로 디자인한다면 독특한 우리만의 거리 문양과 이름이 탄생되면서 누구든 길을 걸으면서 한글을 깨우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눈이 닿는 곳에는 우리말보다는 한자어, 외래어, 영어 등이 더 많다. 오히려 우리말 이름은 그 뜻을 쉽게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우리말이 외래어에 가려져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우리글과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애국애족의 세종대왕의 정신 아니겠는가. 세종시에서만이라도 우리말과 한글을 더욱 발전시키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노력을 하는 것은 후손들에게도 값진 유산이 될 만한 일일 것이다.   

세종시 신도시 생활권별 마을 이름. (제공=세종시) 

끝으로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몇몇 순 우리 말 마을 이름의 뜻을 살펴봄으로써, 그 상큼하고 고즈넉한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1생활권> 

⋅고운동 가락마을 : 곱다라는 우리말에 갈림길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 
⋅아름동 : 두 팔을 둥글게 모아서 한 아름 넘치는 풍요롭고 조화로운 마을.
⋅범지기마을 : 범이 누워있는 모습을 닮은 마을. 
⋅가재마을 : 마을의 중심에서 한쪽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
⋅도담동 : 야무지고 탐스럽다는 뜻. 
⋅도램마을 : 지형이 황소의 뚜레(고삐)처럼 생겼다고 하여 생김. 
⋅어진동 :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덕행이 높다는 뜻.
⋅한뜰마을 : ‘큰 뜰'이라는 뜻.

<2생활권>

⋅가온마을 : 가운데에 있는 마을. 
⋅새롬동 : 새로움의 준말.  
⋅새뜸마을 : 새로 닦은 터를 의미.
⋅나릿재마을 : 냇가에 있는 성안 마을을 의미.
⋅머래마을 : 머래는 멀리 있는 물가를 의미.

<3생활권>

⋅호려울마을 : 마을의 안쪽이 넓고 입구가 좁은 병(壺)모양의 냇가에 있는 마을.
⋅새샘마을 : 새로 판 샘이 있는 마을.   
⋅해들마을 : 해가 따스하게 드는 마을.

<4생활권> 

⋅수루배마을 : 수로가에 논배미가 있는 마을.
⋅새나루마을 : 새로 생긴 나루터.

<5생활권>

⋅꽃나루(5-1) : 산등성이가 강을 향해 툭 튀어나온 지점에 있는 나루(곶)
⋅글미마을(5-2) : 산의 끝자락을 글미라 함.
⋅미래재마을(5-3) : 산의 모양이 용과 같은 형상을 가졌다하여 붙여짐. 

<6생활권>

⋅빗돌마을(6-3) : 돌로 만든 미륵상이 있던 마을.
⋅꽃재마을(6-1) : 산등성이가 들판 쪽으로 튀어나온 고개 밑에 있는 마을(곶).
⋅둔지미(6-2) : 둔전으로 부치던 밭이 있는 마을. 
 *둔전(屯田)은 군사 요충지에 주둔한 군대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경작하는 토지

<기타>

⋅모롱지마을(S-1) : 산모퉁이를 휘어 돈 마을.  
⋅가람동(S-1) : 강(江)의 옛 이름.

최민호 전 행복도시건설청장
최민호 전 행복도시건설청장

<랩소디 온 세종(Rhapsody on Sejong)>

랩소디(Rhapsody)는 그리스의 서사시를 뜻했고, 현재는 ‘환상곡풍의 자유로운 노래’, 그래서 우리말로는 광시곡(狂詩曲)으로 번역한다.

세종시는 랩소디로 작곡하기에 아직 역사가 얕다고 말할지 모르나, 가파른 흐름이 담긴 파란만장한 압축이 녹아있는 도시로 미친듯이 노래로 환생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랩소디 온 세종(Rhapsody on Sejong)’은 그렇게 불러보는 세종의 태동과 애환과 미래를 노래하는 글이다. 랩소디는 서사적이자, 영웅적이자 민속적인 노래다. 단악장이고 형식도 자유롭다.

세종을 노래하는 글, 최민호의 ‘랩소디 온 세종(Rhapsody on Sejong)’을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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