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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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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 이계홍
  • 승인 2020.08.21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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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여성의 가치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자도 일할 수 있어요' '남자도 집안일 하면 좋겠어요' '여자만 왜 밥을 해야 하나요' 등 여성들의 바람이 담긴 쪽지들. (발췌=세종여성)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본지 정은진 기자가 지난 19일자로 보도한 "여자 몸으로 기자 일, 힘들죠?" 기사는 여러모로 여성 직장인의 상황을 돌아보게 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해온 여성 직장인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 인식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 직장인은 여전히 ‘편견의 벽’에 갇혀있다. 세상이 달라지고, 직장문화가 달라지고, 풍속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쉽게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본지 기자가 취재하러 갔다가 영업용 택시 운전사와 나눈 대화는 그같은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남자 기자야 고위직 사람들이랑 술 한잔 마시면서 회포 풀면 기삿거리 줄줄 나올텐데, 여자 기자는 그것도 안되고…"

운전기사는 주로 남성사회로 구성된 공직사회를 취재하는 데 있어서 여기자의 고충을 염려한 것이지만, 여기자를 직업인 자체의 시선보다 '여성'이란 틀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의식들은 우리 생활 저변에 짙게 침투해있다. 기자가 취재한 내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일을 하는 맞벌이 부부다. 하지만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하원시키는 건 늘 나의 몫이다. 이후 저녁밥까지 고민하고 밥상을 차려내야 한다. 남편에게 이 점을 말하면 이게 불평등인 건지 인식조차 못한다.

남편이 회식하는 것은 당연한 거지만, 내가 회식하고 사회생활을 할 때는 남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 회사를 다닐 때, 직장 상사는 손을 슬쩍 만지거나 "살이 너무 쪘네?"라며 농담을 한다.

성차별적 행태를 넘어 성추행에 가까운 농담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으며, 이를 지적하면 ‘밴댕이 속’이라는 속좁은 여성으로 취급된다. 

우리의 의식 가운데 이런 편견과 차별은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다. 제도 속에서나 조직 내부에서 이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규범화되었다. 

필자가 보고 느낀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젊은 부부가 대학 강의에 나간다. 남이 보면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아내인 여교수는 죽을 맛이다. 

남편은 15년 전 대학 전임을 맡았고, 아내는 아이 키우고, 집안 살림하는 사이 공부할 틈이 없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으면서 최근에 대학 강사 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여교수이자, 아내이자, 아이 엄마이자, 며느리인 그는 모두에게 불만의 대상이다. 남편으로부터는 집안을 잘 건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24시간 붙어있던 아이로부터는 전과 달리 엄마를 독점하지 못하니 불만이고, 시부모로부터는 자기 자식 제대로 밥해먹이지 않는다고 눈총이다. 

여성이 자기 개발을 통해 대학의 강의를 얻은 것이 결과적으로 ‘형벌’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내 노릇, 엄마 노릇, 주부 노릇, 그리고 며느리 노릇을 다해야 하는데, 남편은 귀가하면 피곤하다며 소파에 누워 리모트 콘트롤을 돌려가며 TV 프로그램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의 발 아래에서 청소기를 돌려도 발만 들어줄 뿐,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열받아 항의하면 “나 피곤한 사람이야. 집에 들어와 쉬고 싶은데 닦달하느냐”고 도리어 역정을 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6년부터 지난 2월까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게시한 홍보물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별 대표성 불균형 △성 역할 고정관념 및 편견 △성 차별적 표현이나 비하 △외모 고정관념 등에서 530건의 편견 및 성차별적 표현이 나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모지상주의를 반영하고 성별에 따라 외모 편견을 강화하는 표현도 많았다. 공직사회가 그러는데, 중소기업 등 일반 회사의 경우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는 젠더 문화를 향상시켰다. 그러나 성추행 따위에 국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중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직장 내부와 가정에서부터 성평등의 교육을 따져야 하리라 본다.  

우리의 현실은 여성이 여성에게 더 차별적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어느날 여성 CEO가 하는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여성 직원을 가능한 한 쓰지 않을 거야. 승진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성 직장인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여성 직장인이 능력 발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적인 문제 요인에 접근하지 않고, 당장의 능률이 남자보다 떨어진다는 편견을 여성 CEO가 스스럼없이 말한다. 

각 가정에서는 딸아이보다 아들을 더 중시하는 풍조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런 경우 엄마가 더 분명하다. 아들에게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딸에게는 행동규범 자체를 제한하려 한다. 

그래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독일의 여류 사회학자 휘슬라 쇼이의 진단에 공감을 한다.

그는 남녀 간의 차이가 출생시부터 계급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교육받는다고 했다. 

그가 독일 주부들을 대상으로 아이에게 수유하는 시간을 조사했더니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보다 수유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더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세한 통계는 잊었지만 여자 아이는 남자아이보다 수유 시간이 반 이상 짧더라는 것이다. 

이토록 여자 아이에게 수유 시간이 짧으면 여자 아이는 유아기부터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게 되고, 포기하는 습관을 기르고, 결국은 자기 한계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여자 아이는 집에서부터 남자 아이와 동등한 존재, 똑같이 소중한 존재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부터 불평등 구조를 체득하게 되면, 그가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평등한 존재라고 당당히 맞설 것인가. 부딪치는 것은 패배주의와 체념일 것이다. 

요즘 젠더 문화에 대한 지평이 폭넓어지고 있는데, 성 담론에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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