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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할 '1945년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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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할 '1945년 8.15'
  • 이계홍
  • 승인 2020.08.14 15: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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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냉전 해체와 남북 화해로 가는 길
1919년 3·1운동 이후 수립된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요인들. (발췌=천안 독립기념관)
1919년 3·1운동 이후 수립된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요인들. (발췌=천안 독립기념관)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8.15 광복절 75주년을 맞았다. 매년 8.15 광복절이 오면,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그날이 오면’ 시가 떠오른다. 일제강점기 해방을 그리는 절박함이 절절하고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이 되는 날,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 :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설치해 치던 큰 종)을 머리로 들이받아 세상에 감격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심훈은 그러나 ‘그날’을 보지 못하고 해방 9년 전(1936년) 작고했다. 그의 나이 만 35세 때다. 

심훈이 갈망했던 ‘그날’이란 두 말할 것없이 우리 민족 해방과 독립의 날이다.

이 시는 1930년에 지어졌지만, 그 시기에 발표되지 못하고 해방된 지 4년만인 1949년에 발표되었다. 그의 사후 13년만이다. 시가 가르치는 절박함에도 일제시기 이처럼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수난을 겪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진정한 해방과 독립을 했는가. 아니다. 해방과 동시에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안고, 벌써 75년째 대결의 현대사를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쟁도 치렀다.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인적 손실을 가져오고, 무엇보다 민족적 기상과 개인적 인성이 파괴되었다. 

사람들은 분단과 한국전쟁을 외세 탓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진단이다. 결단코 우리 탓이다.

외세가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 리 없고, 관대할 리도 없다. 결국 문제는 내부의 극복 의지에 달려있었다. 그런데 분열과 대결과 폭력성. 분단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반민족적, 반이성적 태도가 분단을 고착화시켰다. 

필자는 근래 해방 공간의 시대적 상황을 담은 글을 많이 써왔다.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외세 때문이라는 지적들이 있지만, 내부의 분열과 대립이 더큰 원인이었다고 단정한다.

분할 통지받던 '전범국 독일', 1990년 통일 이후 재건  

2차 세계대전 종전이 되고 서구사회는 전쟁 책임을 물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분단했다. 거기에 비하면 한반도 분단은 부수적이고 종속변수였다. 

2차 대전 후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등 전승국은 독일이 부강해지면 반드시 주변국이 희생을 강요받기 때문에 독일이라는 나라를 갈갈이 찢어놓자고 결의했다.  

나치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결과로, 독일은 전쟁으로 노획한 것들을 모두 잃었다. 9백만여 명의 독일인들이 전쟁포로가 되어 전쟁 배상을 위해 수 년 동안 강제 노동을 하고, 산업 시설들이 전쟁 배상 명목으로 뜯겨져 전승국으로 옮겨졌다. 

독일이 1945년 5월 8일 무조건 항복한 이후 연합국은 독일을 4개 점령지, 즉 독일 남서부는 프랑스군, 북서부는 영국군, 남부는 미군, 동부의 오데르-나이세 선까지의 지역은 소련군 점령지로 분할했다. 4개 연합국은 독일 지역 내 각 점령지들의 통치권을 행사했고, 독일 동쪽에 있는 구 독일 영토를 폴란드와 소련이 통치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도 연합국이 분할 통치했다.  

또 독일의 영토는 1937년 12월 31일 이전의 영토로 국한되었다. 즉 1938년부터 1945년 패전 때까지 확장된 영토는 인정되지 않았다. 전쟁으로 빼앗은 슬로베니아 북부, 오스트리아, 알자스-로렌, 룩셈부르크, 서프로이센, 오이펜-말메디, 실레시아 등이었다. 1937년 이전의 자기 영토와 비슷한 땅을 노획했지만, 패전으로 이전의 독일 영토까지 일부 빼앗겼다.

연합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일을 국제사회에서 입도 뻥긋 못하게 밟았다. 이로인해 독일은 1950년까지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런데 1990년 재통일했다. 독일에서 분단 시대란 1945년 연합군 군정으로 4개국에 분할 통치된 시점부터 냉전 체제 해체와 함께 1990년 독일의 재통일을 이룰 때까지의 45년간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민주국가, 산업국가, 복지국가로 우뚝 섰다. 

'오스트리아', 단결된 힘으로 신탁통치 10년 극복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역시 4분할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 분단 상황과 너무도 비슷하다. 차이라면 우리는 일제 식민통치를 받은 피해국이면서도 분단되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함께 전범국가로서 분단되었다는 점이다. 

히틀러의 모국 오스트리아는 19세기 합스부르크 제국을 이끈 거대 강국이었다. 이탈리아 북부와 유럽 동부를 집어먹었다. 그리고 히틀러 집권 시 독일보다 더 나치당에 협력했다. 

전쟁이 끝나자 연합국은 독일 못지 않게 오스트리아를 다뤄 10년 신탁통치를 결의했다. 우리나라 3년 반의 미군정기에 비하면 약 3배 기간의 신탁통치를 받은 셈이다. 물론 영구 분할통치로 간 독일보다는 나은 셈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신탁통치 10년 뒤인 1955년 영세 중립국으로 독립했다. 우리는 그동안 격렬한 찬반탁 시위로 국론이 분열되고, 많은 지도자들이 암살당하면서 분단은 구조화되었다. 

오스트리아 재통일의 힘은 외세의 협력 때문이 아니다. 민족 내부의 단합된 힘이다. 그 나라라고 해서 갈등이 왜 없었겠는가. 종이 다른 민족이 여러 갈래고, 각 정당마다 정강정책이 다르고, 이념마저 달랐으니 대립이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대의를 위해 아집과 독선 등 소아를 버리고, 통합과 결속을 위한 민족대단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치와 양보와 배려를 실천한 결과물이다. 우리와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혹자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6.25와 같은 내전이 없어서 통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6.25도 우리 내부 모순에서 터진 비극이다. 외세 때문이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6.25전쟁의 상흔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 있다. 앞으로 70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발췌=전쟁기념관)
6.25전쟁의 상흔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 있다. 앞으로 70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발췌=전쟁기념관)

큰 틀에서 미래를 보지 않고, 자기 세력 이익을 위해 소아병적이고, 분열적이고, 대립적인 태도가 분단의 영속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정당간의 대결 구조는 마치 적을 대하는 것 같다. 적보다 더 증오하고 저주한다. 국민들도 파가 나뉘어 거기에 첨벙 빠져들었다. 별것도 아닌 차이로 헐뜯고 증오하고, 공격한다. 

이런 갈등구조를 언론이 선도한다. 언론의 분열적 이간질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물론 이익 때문이겠지만 근래는 이성마저 잃은 태도들이다. 그동안 냉전 대결주의로 쌓았던 기득권을 잃을까봐 남북 화해에 적대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먼 장래로 보면 이익이 될까.

해방 직후엔 민족지도자들이 분열해 분단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은 해방 75년동안 쌓은 거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싸움으로 분단을 이용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루하고 답답하지만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방 공간에서 우리의 민족지도자들이 분열, 대립한 것이 외세에 빌미를 준 것과 반대로 오스트리아는 내부적으로 단합해 분단을 극복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독일은 그들 자신이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를 압도하는 민주적 가치를 선도하면서 통일을 이루었다. 우리 또한 세계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 다행히 성숙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신호로 본다. 

당장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을 필요는 없다. 남북이 왕래하며 자유롭게 거래만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정도의 길마저 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가 너무 갈등증폭적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대결 구조를 청산하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분단고착화의 악순환으로 이익을 본 세력과, 외세의존 세력에 대해 시민 정신이 하나하나 불러내 따져야 한다.

눈 앞의 이익 때문에 대립하는 반통일 세력을 핀세트로 끄집어내 따져물어야 한다. 아울러 분단 극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나와야 한다. 멀고 지루하지만 그 길밖에는 길이 없다.

분단의 허구와 위선을 극복할 힘은 높은 시민정신에 있다. 

외세에 대해서도 발언권을 행사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외교노선도 다극화 다양화해야 한다. 분단 세력에게 계속 끌려다닐 수만은 없다. 이제 정치와 사상, 이념이 분단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허구다.

그것을 뛰어넘을 역량을 우리는 갖고 있다. 외세가 아니라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점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힘과 협상력을 갖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북한 관리 대책을 흔들림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문제는 협상 대상자인 북한이 여간 까다로운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도 우리가 관리를 잘못해서 얻은 역효과라고 본다. 힘을 기르되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할아버지 세대의 소원이 '해방'이었다면, 그 아들 세대와 그 손자 세대의 시대적 요청은 ‘평화’일 것이다. ‘그날이 오면’은 쉽게 오지 않지만, 줄기차게 국민적 합창을 노래하며, 실천의지를 다져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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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주민 2020-08-14 15:58:57
관계없는 댓글이라 죄송합니다. 오늘 휴진율이 전국적으로 공개가 되었는데 세종시는 복지부의 지침에 따라 오늘 휴진한 병의원 비율을 공개안하고 있답니다. 다른 지자체도 복지부의 지침이 있었을텐데 발표를 한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세종시는 왜 이런거죠? 왜 일들을 이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국민들의 알 권리보다 복지부 지침이 중요하다는 건가요? 기자님들 취재 좀 부탁드립니다. 이용가능한 병의원은 101개라 하는데 세종시 총 병의원 수만 알면 휴진율이 나올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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