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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연 위한 ‘천혜의 조건’ 갖춘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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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연 위한 ‘천혜의 조건’ 갖춘 세종시” 
  • 대담=이계홍 주필, 정리=이주은 기자
  • 승인 2020.06.29 07: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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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종률 세종시 문화재단 대표, 세계적 행정수도는 곧 문화수도 
역사는 문화예술로 상징화된다... ‘청춘 도시’ 맞춤형 국제록페스티벌 준비
김종률 세종시 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이주은 기자)

[화제의 인터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자로 널리 알려진 김종률 세종시 문화재단 대표이사(62).

운동권 작곡자 이미지로 투사형 모습을 연상했지만, 막상 만나보니 자애스럽고 따뜻한 품성의 인상이다. 은발과 짙은 검은 눈썹 그리고 준수한 외모가 친근감을 준다. 소박하게 얘기를 풀어가는 자상함 때문일 것이다. 문화예술 철학이 해박하게 물흐르듯 펼쳐진다. 

“세계적인 행정수도일수록 ‘문화도시’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듯, 행정수도로 가는 세종시 역시 ‘문화도시’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김 대표.

그는 “세종시는 천혜의 야외공연장이 호수공원 주변에 조성되어 있고, 따라서 세계의 젊은이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국제 록페스티벌을 벌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힘주어 말한다. 

평균 연령 32.5세, 전국 최고의 젊은 도시 세종시 컨셉에 맞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행정수도로서 위상과 함께 젊음과 낭만이 분출할 수 있는 역동적인 명품 문화도시를 가꾸겠다는 포부다. 

김 대표는 이와함께 “세종시 동 지역과 읍면 지역이 골고루 문화를 향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 코로나 19 이후 세종시 문화예술계 상황

-코로나19 사태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문화예술계 타격이 크다. 각종 공연과 전시회가 연기되거나 축소되고,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세종시 실태는 어떤가.

인터뷰를 하는 오늘이 세종시 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한 지 딱 4개월 되는 날(6월19일)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4개월 동안 현업 행사는 많이 못했지만, 다행히 시간이 허락해 세종시의 곳곳을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다. 취임 다음날부터 세종의 곳곳을 탐방했는데 ‘세종시의 문화 비전’을 보았다.

 

그 비전을 노래로 만든 것이 ‘푸른 세종 2030’이다. 2030은 젊은 도시로서의 2030세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종시의 2030년 미래를 내다본 노래다.

 

세종시는 현재 개발중이어서 한창 공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거칠고 부족한 느낌이다. 그런데 그것이 덜 가공된 ‘원석’과도 같은 느낌이다. 잘 갈고 닦으면 최고의 보석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종시는 세계적인 행정수도가 가는 방향대로 문화예술과 관광이 어우러지는 도시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화예술 경영자로서 세종시 문화재단을 어떤 콘셉트로 운영하고 있나. 공연장 및 전시실, 작품 창작과 예술인 지원 방안, 예산 지원문제에 대해 말씀해달라. 

코로나19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 문화예술 영역이다.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따지자면 문화 향수는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세종시 문화재단은 일단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예술인 460여 명에게 각 50만원씩 긴급 생계비를 지원했다.

 

부족한 비용이지만 의미 있는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예술가에게 ‘선 결제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10월에 공연이 예약돼있다면 5월에 미리 결제하는 식이다.

 

코로나19로 식당에서 미리 결제하는 것처럼 공연비를 선 지급했다. 착한 결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코로나로 공연이 취소되거나 하는 부분은 SNS에 공연을 찍어올리거나 하면 공연비 지급을 하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이밖에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문화예술계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다.

 

6월 이후에는 1억 4400만 원 예산을 확보해 문화예술 각 그룹에 500만 원, 또는 1000만 원씩 지급할 예정이다. 예술가 긴급 생계비 2차 지급도 고려하고 있는데 이는 세종시와 협의할 사항이다.

#. 젊은 도시와 어울리는 공연문화 활성화

김종률 문화재단 대표이사. (사진=이주은 기자)

-출범 10년을 향해 가는 세종시 도시성장 이면에 문화예술 기반이 취약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예술인이 살고 싶어 하는 미래지향적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세종시의 동·읍면 포함 평균 연령이 36.7세라고 들었다. 이런 경우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독특한 케이스다. 문화재단 사무실에 출근할 때 도보로 오는데 어린이집 3군데를 지나온다. 어린 아이들이 참 많다.

 

제게는 참 생소한 풍경이고, 다른 도시에서는 많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것이 세종의 희망이다. 젊은 세대는 문화예술에 민감한 친구들이 많다. 일단, 문화예술 공연 수용도가 높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이 말은 세종시가 문화예술 기반의 도시로 갈 수 밖에 없는 힘이 된다는 뜻이다. 문화예술적인 소양,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종시 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도시의 디딤돌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젊은 도시에 맞는 공연문화, K-POP 등을 견인하는 대책은.

동 지역과 읍면 지역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동 지역은 젊은이에게 맞는 역동적인 문화도시 콘셉트. 미디어 아트, 버스킹, 록페스티벌 등이 열리는 공연이 특화된 도시. 아트센터, 박물관단지, 수목원, 중앙공원 등에서 항상 공연이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세종시에 와서 원석과 같은 부분이 있어 놀랐다고 했는데, ‘세종호수공원’ 가서도 적잖이 놀랐다.

 

세상 어디에 이런 천혜의 환경이 있을까 싶다. 탁 트인 광장과 호수, 인접한 주민시설이 없어 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며 문화공연을 펼칠 수 있는 곳.

 

뉴욕의 센트럴파크도 이런 환경이 못된다. 이것이 세종시의 힘이고 가능성이라고 본다. 호수공원만의 매력과 특·장점을 살려 우리 공연문화 활성화를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

-구체적인 계획을 말한다면.

호수공원에서 록페스티벌을 계획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예정돼 있다. 세종시에서 전국 공연을 가진 이후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굵직한 공연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공실 문제가 심각한 상가 근처에서는 ‘상가 버스킹’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세종시 현안과 문화예술을 결합해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재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또 하나 크게 꿈꾸고 있는 건, 세종시 출신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소니뮤직에서 15년 이상 근무했던 경험을 세종시에서 재해석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스타를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세종의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잘 키워서 훌륭한 기획사로 연결하는 작업도 생각하고 있다. 꿈은 BTS를 능가하는 세종시 대표 아이돌 그룹을 상상하고 있다. 꼭 하고 싶은 일이다.

 

*. 김 대표는 △대홍기획 △RJR내비스코 △한국BMG뮤직 대표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대표이사 △JR미디어 대표이사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등을 지내며 공연 기획의 세계적 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 지역사회 주민과 함께 소통 상생하는 문화예술 

-읍면 지역 활성화 방안은? 공연장과 전시실 조성 및 문학 미술 음악가들이 전원주택에서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방안들도 고려할 수 있지 않나. 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기존 조치원 문화예술회관 등의 시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안과 새로 짓고 있는 아트센터 등과 사설 공연장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방안, 동지역과 읍면지역간 문화적 정서 차이 극복 방안은. 

문화 창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상생하며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현재 1차를 진행 중이고 교육 중에 있다. 이밖에도 읍면 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문화 복지 문제도 문화재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다. 이와 관련해 복지 담당의 상근 직원을 두려고 한다.

 

재단이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무용 모두 총 망라한 분야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세종시 동 지역과 읍면 모두를 아울러, 젊은이들의 요구를 반영해 다양한 문화사업 진행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조치원 문화예술회관은 시청 관할이라 공무원 5명이 배치돼 대관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 재단에서 조치원 문화예술회관과 연계해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내년 개관 예정인 ‘세종아트센터’에 대한 운영 구상은.

내년 상반기 개관 예정인 ‘세종아트센터’가 생기면 세종의 문화 지도도 많이 바뀔 거라 생각한다. 세종아트센터는 1071석의 대공연장을 갖춘 세종시 1호로 대규모 문화공간이다.

 

앞으로는 아트센터와 반곡동 비오케이아트센터(민간, 200여석), 정부세종청사 대강당(700여석), 조치원 세종문화예술회관(700여석) 등 주요 거점 문화공간 교류로 세종시 문화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아트센터는 제 개인적으로도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대되는 무대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공통 분모는

김 대표는 앞서 확인했듯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자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5.18 기념식에서 제창 식순이 빠지면서 더욱 국민적 관심을 촉발시켰던 노래다.

 

그동안 대학생들의 독재타도의 시국 시위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처우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 현장에서 널리 불려왔던 투쟁가가 이제는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된 것이다.

 

그만큼 ‘님을 위한 행진곡’은 프랑스 시민혁명 때 불렸던, 그리고 지금은 프랑스 국가가 된 ‘라 마르세예즈’와 같은 국민가요의 상징이 됐다.

 

“조국의 자녀들아 일어나라. 저 사나운 군인들의 함성소리 들리는가. 그들이 여기 우리 가운데로 온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학살하러 온다. 무기를 잡아라 시민들아. 진격하자 진격하자,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에 흐르게 하자“는 살벌하고 전투적인 ’라 마르세예즈‘에 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은 훨씬 정서적이고 슬픔이 배어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주제로 '혼풀이' 뮤지컬에서 작곡된 6곡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노래는 수난을 겪었다. 199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제창돼 왔으나 2009년 이명박 정권은 제창을 식순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제창되기 시작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현재 김 대표를 있게한 보물이다. 어느덧 국민가요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정은진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광장의 노래에서 국민 지성을 일깨우는 정의의 노래가 됐다. 이 곡을 작곡한 배경. ‘라 마르세예즈’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역사는 결국 문화예술로 승화된다. 프랑스대혁명이 영화 ‘레미제라블’로 표현된 것처럼 혁명은 문화와 예술로 남고 또 이것이 영원히 기억된다. 세종시 문화재단에서 수행할 내 역할이 그렇다. 세종시가 해야 할 일들을 문화예술 영역에서 아름답게 펼치고 싶다. 문화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임을 위한 행진곡’ 공연도 하고, 교향곡과 뮤지컬로 선보이고 싶다.

 

교향시는 이미 만들어졌다. 각 시향들과 교향악단이 동참한다. 감각 있는 고선웅 연출가가 함께 한다. ‘임을 향한 행진곡’ 40주년 기념 공연이고, ‘5.18 민주항쟁’의 문화적 접근이라고 보면 되겠다.

 

얼마전 영국의 BBC가 인터뷰해 보도했다. 홍콩 사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5.18‘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세계 민주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바로 문화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낀 것이다. 제 개인 페이스북에 수많은 중국어 댓글이 달린 것도 그런 이유다. 40년 전의 노래가 세계로 울려퍼지는 감회가 새롭다.

 

#. 작가 황석영과 작곡가 김종률 

김종률 대표(가운데)와 이계홍 주필(우), 이주은 기자(좌)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정은진 기자)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저는 본래 서울대 음대를 진학할 생각이었다. 고교(광주일고) 시절,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서 진로를 그렇게 정했는데 아버님께서 극력 반대하셨다. 고향(전남 강진)의 어르신으로서 아들이 음악과에 진학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보수적 유림의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래서 전남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는데, 음악 활동은 계속했다. 전국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금상, 은상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광주 5.18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당시 22살의 대학 3학년 청년이었던 김종률은 광주시 동구 동명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5.18이 나자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당신의 아들과 함께 지하실에 숨기고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요강만 하나 넣어주고, 밥은 몰래 넣어주었지만 견딜 수 없어 1980년 5월 21일 아침 문을 따고 밖으로 나왔다.

 

도청 앞 상무관에 이르자 관이 40~50여개가 있었다. 나무관도 있었고 몇 개는 태극기가 덮여져 있었다. 송판 관 옆에서 어린 아이가 멋모르고 놀고 있었는데 통곡하는 부모님. 멍하니 넋을 놓은 유족들…

 

이것을 보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5.18의 중심부로 뛰어들어갔다. 

정말 피가 식지 않은 그 많은 시체들을 보고 숨어 지낸 나 자신에 대해 한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괴로웠다. 그날부로 기존의 음악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음악으로 한 세상 살아보겠다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음악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냐는 절망감을 맛보았다. 5월 22일 노래를 접으며 마지막 만든 노래가 바로 ‘검은 리본 달았지’라는 곡이다. 그 가사에 내 마음을 담았다. 나약한 마음을 노래로 만들었고, 이 곡이 첫 앨범에 실렸다. 

망월동에서 진행된 장례식 사진(좌)과 독일 슈피겔지에 실려 5.18의 실상을 세계에 알린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우) (사진 = 5.18 기념재단)
망월동에서 진행된 장례식 사진(좌)과 독일 슈피겔지에 실려 5.18의 실상을 세계에 알린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우). (사진 = 5.18 기념재단)

 

나는 오늘 검은 리본 달았지.
당신은 하얀 수의 입었지만
나는 오늘 검은 리본 달았지.

나는 오늘 슬픈 눈물 흘렸지.
당신은 눈을 감고 떠났지만
나는 오늘 슬픈 눈물 흘렸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하고, 공연하기까지 과정은. 

작가 황석영 선배와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는 5.18 이전 전남 해남에 내려와 집필활동을 벌이다 5.18이 나자 광주로 왔다. 그는 어느 날 나를 포함한 몇몇 친구들에게 기타를 가지고 자기 집으로 오라고 호출했다.

 

그 날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노동운동가 윤상원·박기순의 영혼결혼식 2주기였다. 함께 모여서 2주기를 기념해 곡을 만들자고 황석영 선배가 제안해 그날 만든 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그날 12명이 모였는데, 바로 만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되거나 잡혀가 고문을 당하기 때문에 바로 만들고 헤어졌다. 곡은 이미 머릿속에서 맴돌아 그대로 원고지에 옮겼는데 황석영 선배가 맡기로 한 작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황석영 선배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옆방의 서재로 들어가 이 책 저 책 뒤지다가 백기완 선생의 시 ‘못비나리’를 책장에서 찢어가지고 왔다. 이것을 순식간에 일부 고쳐서 곡에 넣도록 했다. 순식간에 해치운 일이지만 모두 대단하다고 탄복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함께 만들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한 후 밖에 내보냈는데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아직도 신기한 건 노래를 녹음하는 과정에서 개소리와 생활 소음이 어우러지게 녹음됐는데, 일정 부분 개짖는 소리가 리듬에 맞춰서 나왔다는 점이다. 당시 함께 녹음을 한 우리는 이건 ‘하늘에서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경험이다.”

이 작업을 마치자 김 대표는 군대에 입대했다. 돌아와서 대학에서 친구를 통해 ‘새로 나온 민중가요’라고 소개받았는데 듣고 보니 자신이 작곡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것을 알고 감격했다. 군대 3년 사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사이 민중가요로 애창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적 이야기로 옮겨 가지요. 가족과 함께 세종시로 이주했나. 

아내와 아들 둘이 있다. 큰아들은 결혼을 했고, 둘째는 미혼이다. 아직 손주는 없다. 그래서 세종시의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인다. 아내는 아이와 함께 서울에서 사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세종으로 내려온다.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이춘희 세종시장도 늘 강조하는 부분이 세종시가 ‘문화예술도시’로 가야한다는 사실이다.

 

세종시 문화재단에서도 세종시민의 ‘문화 향유’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앞으로 재단에서는 생활 속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한다. 그런데 예산이 30% 줄었다. 올해 예산은 66억 원인데 작년의 85억 원 수준에 비해 30% 가량 준 것이다.

 

추경에 8억여 원 정도 더 편성하게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역동적으로 꿈을 키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할 것이다. 음악창작소도 8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세종시 초·중·고 교가를 다시 녹음해주는 사업도 준비 중이다. 노래를 만들면서 문화를 함께 향유하는 사업이다. 청소년과 함께 세상을 열어가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대담=이계홍 주필, 정리=이주은 기자

그의 문화적 감수성이 깃든 음반 등이 사무실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이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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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바위 2020-06-29 10:29:58
세계적 문화 행사에 대환영합니다~ 이런 보물 같은 문화 환경을 두고 문화인들이 서울에만 틀어박혀
있는 게 안타깝네요. 아까워 저라도 아마추어로서, 호수공원 등 시원한 야외에서 호사를 누립니다~~^^
학생 때부터 일반 데모꾼으로 열심히 쫓아다녔었는데 처음에 정의가, 타는 목마름으로 등 부르다가
"임을 향한 행진곡"을 처음 만났을 때 등골에 흐르던 전율이 아직까지 느껴지네요.
교향곡과 뮤지컬이 많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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