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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신도시 ‘문화자산 방치 실태’, 절반의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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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신도시 ‘문화자산 방치 실태’, 절반의 개선
  • 정은진 기자
  • 승인 2020.06.19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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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지적한 ‘반곡동 괴화산 석축유구’, 오는 11월까지 보존 공사 마무리 
나성동 독락정‧임씨가묘 관리 부재 여전… 약속했던 6월말 눈 앞 
괴화산 석축유구의 변화. 최근 펜스가 설치되며 보존공사 중인 모습(좌)과 본지 지적 당시 방치 현장(우).

[세종포스트 정은진 기자] 본지가 지난 달 22일과 6월 2일 연속 보도한 세종시 문화자산 방치 실태 지적과 관련, 괴화산 석축유구에 대한 선제적 조치가 이뤄졌다. 

#. '괴화산 석축유구' 훼손 우려, 11월 보존공사 마무리 

오는 11월말까지 보존공사 시행을 알리는 경고 현수막. 

19일 본지 취재 결과 최근 괴화산 정상부(해발 201m)에 위치한 ‘원형 석축유구’에 보호 펜스와 경고 현수막이 설치됐다. 

석축유구는 발견된 지 7년이 지나도록 제대로된 펜스와 안내판 하나 없이 존재했다.  

LH와 ㈜라인건설은 오는 11월 30일까지 괴화산 추적산성 내 ‘원형 석축유구’에 대한 보강 공사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훼손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경고 문구도 내걸었다.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13조 규정에 따라 원형 보존토록 되어 있는 만큼, ‘이 현장을 무단으로 변경 훼손하는 자는 문화재보호법 제81조 및 90조에 의거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 기간 보강시설로는 휴게시설(등의자)과 경계휀스(목재데크), 안전휀스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그동안 아무런 표식도 없어 유구 위에 올라가는 등의 훼손 우려 행위가 방지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곡동과 소담동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점점 늘고 있는 괴화산 일대 방문 시민들의 문화재 보호 인식도 새로이 할 것으로 보인다. 괴화산 숲놀이터와 정상부를 자주 찾는 솔빛숲유치원 및 반곡초 학생들의 교육장으로도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괴화산 석축유구는 신도시 건설 추진 일정에 맞춰 진행된 시굴조사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추정 유적으로, 옛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엿보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특정 시대 건축양식과 의례생활, 사회조직 및 경제행위를 추정케 하는 요소도 품고 있다. 

현재 조사결과로는 여수 묘도요망유적의 봉수대와 유사한 성격 또는 산신제, 기우제 관련하여 제를 지냈던 제단으로 추정된다. 직경 10m, 최대 높이 180cm, 면적 240㎡ 규모로 최대 9단까지 쌓았다. 

석축 1기와 함께 주혈(움집터 바닥에 사용되는 기둥 구멍) 6기가 확인됐고, 청자병 등의 토도류 44점을 비롯한 청동잔 등의 금속류까지 발견됐다. 

#. ‘독락정‧임씨가묘’, 여전히 흉물 양상 그대로

대형 파이프가 드러난 독락정의 외부 지형
대형 파이프가 드러난 독락정의 외부 지형.

반면 나성동의 또 다른 문화자산인 ‘독락정‧임씨가묘’는 파란색 천으로만 뒤덮인채 흉물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방송국의 테마기행 ‘길’에 소개된 명소라 하긴에 초라한 모습이다. 

지난 2018년 이곳에서 임난수 장군의 충효사상 배움터였던 '기호서사' 강당터까지 확인되면서 유적조사가 다시 이뤄졌다. 

당시 발굴팀이 학술조사를 거쳐 복원 작업을 진행했는데, 보존차원이란 명목으로 파란 천만 뒤덮어 놓았고 그마저도 방치돼 흉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입구 주변에는 정비를 하기 위해 마련해둔 자연석들이 위험하게 쌓여져 있고 임씨가묘를 관리하던 관리소는 현재 깨진 유리가 나뒹구는 폐가 외형을 드러내고 있다. 유적으로 보이는 훼손된 무덤과 물이 고여있는 유적 주변, 유실된 지형에는 보호와 관리를 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이다. 

LH가 상반기 중 공사 마무리를 공언했으나 현재까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다. 

한편, 독락정은 고려 말 전서 임난수가 조선왕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해 금강변 월봉 아래 은거하며 생활하던 역사적 유래가 깊은 곳에 세워져 있다. 또한 독락정 입구에는 2012년 2월 31일 지정된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2호의 '임씨가묘'도 위치해 있다. 

임씨가묘는 앞서 말한 고려 말 충신 임난수 장군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독락정과 그 맥락을 함께하는 역사적인 장소다. 

임난수는 공민왕 23년인 1374년인 32세때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당시 오른쪽 팔이 적에게 잘리자 잘린 팔을 화살집에 꽂고 계속 싸워 승리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그는 11개의 벼슬을 거쳐 공조 전서에 올랐으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이에 반발한 그는 관직을 버렸고, 지금의 세종시 연기면 양화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임난수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이자 양양도호부사였던 임목이 독락정을 건축하여 선인의 얼을 기념해오던 중 1422년, 세종 4년에 비석이 건립되고 세종 19년인 1437년에 독락정이 지어졌다. 

세종은 임난수의 공을 기려 신숙주의 아버지 신장에게 명하여 사당에 '임씨 가묘'라고 쓴 액자를 내리고 현재 독락정이 있는 나성리 일대와 양화리 부근으로 추측되는 지역의 토지를 상으로 주기까지 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세종시 나성동 금강유역이다. 

독락정은 그 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졌지만 조선 전기의 문화재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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