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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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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1)    
  • 이계홍
  • 승인 2020.02.05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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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현대사 특강] 우리의 70년 체제 뒷받침, ‘미국’ 다시 바라보기 
대한민국에는 해방 이후로도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제공=주한미군)

 

필자는 한국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문학지 ‘월간문학’에 2016년 10월호부터 지난해 6월호까지 총 33회에 걸쳐 우리나라 해방공간의 격동을 그린 장편 실록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을 연재한 바 있다. 

 

이를 다시 대폭 수정해 지난해 9월 10일부터 금년 1월13일까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36회에 걸쳐 같은 제목으로 게재했다. 

 

실록소설 ‘행군’을 쓰게 된 배경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현대사를 너무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컸기 때문이다. 역사 전공자라도 조선사에 대해선 해박할지라도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공간의 현대사에 대해선 무지하고, 설사 알더라도 피상적이고 관념적이었다. 

본지 이계홍 주필.
본지 이계홍 주필.

 

그것은 이유가 있었으니, 70년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 지배 권력이 현대사에 관한 한 침묵을 강요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현대사를 모르고 어떻게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예비할 수 있는가. 그중 우리의 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미국에 대해 우리는 깊이 천착하지 못했다. 대체로 미화되고 찬양될 뿐이었다. 

 

우리의 질곡의 현대사 한 복판에는 반드시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했고, 그것은 음과 양 양면에 걸쳐서 우리 삶 깊숙이 투영되었다. 그런데 일면만이 부각되었다.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주권국가란 국민과 영토, 국민주권의 3위 일체가 일치되어야 한다. 이것을 확보하려면 군사주권이 전제되어야 한다. 군사주권은 우리 스스로 작전권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이 한반도에 민주주의를 수출하기 위해 들어온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남북분단, 남한 단독정부 수립, 6.25전쟁, 군사쿠데타, 독재정권 등 이 땅의 부정적 사건의 배후에 있었던 나라로 각인되어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렇듯 겨레의 운명을 결정지어온 주체가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을 잘 모른다. 그저 추앙되었을 뿐, 역사의 그늘을 드리운 궤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또 입체적으로 아는 것을 금기시했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남북대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남북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의 발언이 있었다. 다분히 내정간섭적 발언이었다. 그의 발언도 따지고 보면 그럴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었다. 한국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아온 보수세력의 응원과 갈채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미국이 없으면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현대사를 너무 모른다. 이 기획이 시도된 목적이 여기에 있다. 미국과 얽힌 우리 현대사의 구석구석을 자료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프롤로그>

이제는 절대 우방으로 인식되어온 미국을 바로 보아야 할 때다. 

한반도 분단은 미국과 일본에게 근원적 책임이 있다. 

소련과 북한의 책임은 그 후의 일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외면했다. 그래서 일면의 진실만 일방적으로 통용되었다. 미국과 일본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고 세계관을 인식해왔다. 

미국과 일본을 추종해야만이 출세하고, 권력의 중심부로 이동해간 세월이 자그마치 70년 이상 되었으니, 자연 사람들은 거기에 세뇌되거나 순치되었다. 60대 이후 나이 든 사람들은 지금도 그런 세계관과 역사관 속에 매몰되어 있다. 

기득권을 형성한 그들의 휘하에서 혜택받아온 2세, 3세들도 숫적으로 대폭 늘어나니 미국에 대한 무비판적 ‘추앙’은 당연한 태도가 되었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그 강도는 더하다. 필자 역시 한동안 그것이 옳은 길인 줄 알았다. 사회적 주류를 형성한 사람들이 그렇게 발언하는데 당연히 옳은 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블록에 들어가고자 노력했다. 

가치보다 이익 우선의 사대적 사고라는 것을 안 것은 철이 든 한참 뒤의 일이다. 미국과 일본의 학계에서조차 활발히 논의되어온 대한민국 해방의 모순을 아는 데는 그만큼 지체되었다. 

미국은 은혜로운 나라고, 공산세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으며, 나라가 궁핍했을 때 도와준 혈맹이 미국이라는 사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필자 역시 미국의 원조물자인 우유와 강냉이 죽을 먹고, 미국인들이 보내준 알록달록한 구슬을 치며 성장했다. 

그러나 근래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우리에게 혜택을 준 것 이상으로 미국은 우리 민족의 진운에 암운을 드리운 적도 적지 않았다. 미국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굳건한 우방이라고 해도 맹목적으로 착한 나라는 없다. 때로는 독선과 오만으로 군림하고, 불평등을 강제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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