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시 귀국자’ 격리장소 분란, 언론‧정치권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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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시 귀국자’ 격리장소 분란, 언론‧정치권 부채질   
  • 이계홍
  • 승인 2020.01.31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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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이기적 타산과 국민 의식의 파편화 조장… 우한시 자원봉사자 정신 되새겨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전경. (사진=인재개발원)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중국 우한시에서 귀국한 교민 격리수용을 반대해왔던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인근 주민들이 교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에 강하게 반발했다. 경위야 어떻든 잘한 일이다.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유감이다. 진천 주민들은 “주로 학생들인 우한시 교민이 오는 것을 반대한 게 아니다. 정부가 행정을 일관성 없게 하는 것 때문에 분노한 것이며, 주민들에 대한 철저한 방역대책 등을 세우고 안내해 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는 것에 화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보도를 비판했다. “인재개발원이 도심에서 12km 떨어져 있다고 보도한다. 눈이 있으면 와서 보라. 1km도 안 된다"며 "이런 가짜뉴스를 보고 국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주민들을 욕하고 있다. 억울하다. 제대로 보도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민들은 또 "우리 진천 주민들은 결코 자한당 지지자도 아니고, 빨갱이도 아니다. 왜곡된 보도를 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이 발단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는가.  

중앙일보가 단독보도라는 이름 아래 지난 1월 28일 자에서 '전세기 철수 우한 교민, 2주간 천안 2곳에 격리한다'면서 '인구 65만 도심에 우한 교민 수용? 무슨 죄냐-불안한 천안'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사진=경찰개발원)

그 뒤 아산과 진천으로 장소가 변경되자 그곳 주민들이 교민 수용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집단 반발했다. 

지난 29일자 보도에서는 '충청도가 우습나-교민 수용 놓고 아산·진천 격분'(세계일보), '오기만 해라, 출입로 막겠다-아산 우한 격리 수용 반발'(중앙일보), '천안 간다더니 우리가 호구냐-진천 주민 트랙터로 도로 봉쇄'(한국경제) 따위의 보도로 주민을 자극하고 충동질했다. 

TV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주민들더러 들고 일어나라고 선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때부터 포크레인이 동원되고, 경찰에 계란을 던지는 등 거칠게 시위를 벌였다.   

언론에 이어 정치계가 가세하더니 되도 않는 님비(공공의 이익이 되는 혐오시설이 자기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행동) 현상에 불을 붙였다. 

대표적인 예로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우한 후베이성으로부터 입국하거나 이를 경유한 중국인 등 외국인에 대한 입국을 당분간 중지해야 한다"며 "창궐 지역을 직접 간접 경유해 입국하는 외국인 입국 조치를 제한하는 검역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이로 인해 배려하고 포용하는 우리의 전통적 미풍은 사라지고, 이기적 타산과 국민 의식의 파편화만이 깊어지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수용 장소를 천안에서 아산과 진천으로 바꾼 것은 교민 수용 인원이 150명에서 대폭 늘어나 수용 능력이 있는 시설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었고, 언론은 그에 대한 후속 취재 없이 마치 천안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아산과 진천으로 옮긴 것처럼 보도했다. 

우한시로 시선을 한번 돌려보자. 각국의 의료지원단이 우한시로 달려가고 있다. 의사, 간호원, 자원봉사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헌신과 포용의 정신. 이것은 우리의 전통적 미풍양속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사라지고 살벌해졌는가. 정치와 언론의 분열적 이간질 때문이라고 본다. 모든 것을 자기 세력의 이익이냐 아니냐의 관점으로 정치를 하고 언론 보도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꽌시’ 문화를 신뢰의 기본으로 삼는다. 우리 식으로 하면 관계의 문화다. 관계를 통해 사업을 벌이고 우정도 쌓는다. 서구식의 이성적 논리적 타당성보다 너와 나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하냐에 따라 사업이 잘되고 안 되고의 기준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이냐, 불합리하냐를 떠나 그 나라의 전통적 관습이라면 우리도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

‘관계’란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 묵은 누룩처럼 깊어지는 우정 속에 관계가 깊어지고, 우의는 성숙해간다. 손쉽게 만나 단물만 빨아먹고 쉽게 헤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관계를 잘 이루기 위해서는 평소에 쌓아야 한다. 우한시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다면 아픔을 함께 하겠다며 진정으로 다가서면 그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의료진, 의약품, 봉사단을 꾸려서 다가가 위로하면 ‘꽌시’는 깊어지는 것이다.  

잘 나갈 때 만나는 친구는 누구나 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려울 때 다가가는 친구야말로 가슴이 관통하고 영혼이 관류하는 친구로 여겨진다. 인디안의 속담 중에 “진정한 친구란 친구의 슬픔을 대신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그 짐을 나누어 지고 가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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