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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미학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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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미학②
  • 김용수
  • 승인 2012.10.1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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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한 회의가 왔다. 서구 시스템으로 길들여지는 정서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오천년 역사를 가졌다는 민족이, 17세기 후 삼백년 역사에 눌려있는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 선조들은 과연 바보였는가? 내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하는가? 수많은 상념이 찰나에 일어난 것이다. 극에 달하면 반전이 있는 법(물극필반物極必反). 그리고 회귀. 수많은 전설이 어린, 충청도 계룡산! 고향인 그 곳에 나는 짐을 풀었다. 정체성을 해결하지 않고는, 허상의 인생을 살 것 같은 절박감이 있었다. 실패해도 좋았다. 적지 않은 세월이 갔으나. 나는 아직도 길속에 있다. 여기 글들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역易이 생긴 후에야, 비로소 책력冊曆도 쓸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책력이 있어야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니, 역이 없었다면 역사도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역이나 음양론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은, 곧 자기 부정이자 역사의 부정입니다.
동양은 아득한 옛날부터, 하늘과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인간의 이성으로 체계를 세워서. 질서를 잡고, 인간 생활에 적용하는 철리를 세웠다는 것은. 세계사로 봐도 인류 정신사의 혁명입니다. 이것이 과학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오히려 서양은 14세기까지도 신 중심의 암흑이었습니다. 15세기에야, 인간 이성理性에 대하여 자각이 싹틉니다. 서양 중심사관은, 르네상스를 그리스 영향으로 흔히 쓰고 있지만, 사실인즉 몽골제국이 유럽을 점령하면서, 점령지 마다 당시 선진적 동양문명(원나라)을 전파하면서, 서양을 깨운 결과입니다. 13-14세기 사이에, 중국에 간 마르코 폴로(1254-1324)는 원나라 황제의 총애를 받아, 관리로 재직하면서 그가 보고 체험한 중국문명을 기록한 ‘동방견문록’을 출판하여 전 유럽에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 후 유럽에는 중국문화의 광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유교경전이 번역되고, 과학 기술을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중국의 과학 수준은 세계 최정상이었을 뿐 아니라, 천문, 수리학에서도 최고 수준에 있었습니다. 세종시대 천문, 과학 또한 최고조였습니다.

서양의 17세기 과학혁명은 중국에서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이 건너가면서 그 기폭제가 된 것입니다. 유럽 각국은 선교사를 앞세우지만, 실은 선진문화를 흡수 하려는 갈망과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어째든 18세기 까지 유럽의 모든 지적 자산은 동양을 언급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근대 사회, 정치제도는 유교적 이념을 이상으로 본 결과물입니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학파는 그들이 찾던 이성理性과 합리적 태도를 유학에서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볼테르는 가장 선봉에 서서 공자사상을 전파했습니다.

20세기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자 조셉 니담은, 오랜 성찰 끝에 ‘근대과학의 성과는 어느 민족도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했습니다. 동양문명 없이는 서구의 근대과학의 성과 또한 있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20세기 신과학의 등장에도 여지없이 동양선철들의 지혜가 작동합니다. 길을 헤 멜 때마다, 서양의 과학자들은 인도를 비롯한 동양의 지혜를 빌리고 있습니다. 우주의 비밀을 푸는데 주역, 힌두교, 불교, 노장사상, 성리학 등이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MIT등 대학에서까지 주역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자기문화 저변에 천착되어 있는 실체를 부정하여왔습니다. 정체성의 상실은 스스로 파탄의 길을 자초합니다. 작은 여행길도 지도는 펴보면서, 인생의 지도를 놓치는 우를 반복하지 말아야합니다. 주역을 미신으로 보는 편견을, 이제 우리 스스로 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태극기가 바로, 주역의 핵심 사상 그대로입니다. 태극기는 무극無極의 하양 바탕 위에 - 중앙은 태극太極 문양, 그리고 네 방향에 주역 팔 괘卦중, 4괘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극-태극-음양-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탄생, 순환, 변화하는 이치와 그 근원인자를, 하나의 도형으로 일목요연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극은 양(陽)이 하강하여 음의 허虛한 부분을 채우고, 음(陰)이 상승하여 양의 약弱한 부분을 채우는 모양입니다. 음양이 상호 침투하는 역동적 도형은, 시공을 통섭하는 우주의 묘리를 담고 있습니다. 신라금관장식에서 많이 보는 곡옥 형태의, 이 태극도형은, 5세기 신라 보검과 7세기 감은사 석각에도 새겨 있습니다. 이것은 송나라 주렴계가 1070년에 그린 평면 태극도형보다 훨씬 앞선 것입니다.

우리 겨레는, 지구상에서 우주생성 철학을 국기에 담고 있는 유일한 나라요. 인간세상을 하늘처럼 넓고 유익하게 한다는-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인류 보편 사상을 건국이념으로 5000년을 견뎌온, 찾기 드믄 나라입니다. 천상의 소리까지도 담을 수 있다는 자랑스러운 한글도 역의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주역 본의本義에 "천지 사이에 태극의 묘리가 아닌 것이 없다(天地之間, 莫非太極陰陽之妙)." 했는데. 일상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잘 소화했다면 이것이 태극입니다. 정이 막힌 것은-남녀(음양)가 따로 노는 것이요, 정을 통하면 태극입니다. 남성 속 여성, 여성 속 남성이 잠재해있다는 것도 태극입니다. 강함 속에 부드러움이 있고,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는 것도, 태극에서 온 말입니다. 부부가 화합하면 가정이 화목합니다. 태극입니다. 어둔 방에 불이 켜졌습니다. 태극입니다. 부채에 태극문양을 그리는 것은, 바람으로 기를 소통시키기 때문입니다. 소통이 곧 태극인 것입니다.

이제, "한 번은 정 없고, 두 번 주어야 정이 생긴다."는 의미도 - 태극의 이치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셨을 것입니다. 1은 홀수(奇數)로 양수입니다. 하나만 있으면 독양獨陽이 돼서, 무엇도 생성할 수 없습니다. 홀아비나, 총각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2는 짝수(偶數)로 음수입니다. 하나는 둘을 만나야 비로소 작용합니다. 음양陰陽은 곧 밤낮같이, 순환하고 변화하는 작용입니다. 작용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번 주면 정 없다."는 메아리입니다.

역易의 2진법 괘상卦象 변화는, 두 장의 떡잎을 낸 후, 나무가 무한히 가지를 뻗는 것과 똑같습니다. 현미경으로 본 ‘하얀 겨울눈의 무늬’도 같습니다. 이것을 현대과학에서는 프랙탈 구조 이론(자기닮음)이라 합니다. 하나는 일방이요, 둘은 쌍방입니다. 쌍방은 대화입니다. 어두웠던 제국시절은 일방의 강요지만, 인터넷은 쌍방의 소통문화입니다. 4G(4세대이동통신)는 바야흐로 일방의 시대에서 다방의 시대로 전환입니다. 태극에 담긴 의미는 현대의 조류에도 그대로 부합하는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극기를 쓰고 있는, 우리 한문화(크고 넓다는 겨레문화의 총칭)가 그만큼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와 같이, 출생부터 우주로 돌아갈 때까지. 태극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태극기는 어제의 태극기가 아닙니다. 태극기를 보면서, 태극의 이치를 생활 속에 실현하여, 모두가 깨인 삶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국회가 태극에 대한 이해만 있어도. 태극기 아래서 망극한 일은 없을 것이고, 남북이 회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태극기가 소리 없이 강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의 소리를 우리 겨레는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침묵의 메시지는 바로, "조화(和)와 창조"입니다.

우리가 못 볼 뿐! 옛 것은 옛 것이 아니라, 창조의 원천이자 빛나는 자산입니다.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우주와 인생을 생각합니다.

가는 곳마다 참 주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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