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 이철영 선생의 '항일 정신’, 인류 보편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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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이철영 선생의 '항일 정신’, 인류 보편적 가치 
  • 이계홍 주필
  • 승인 2019.12.31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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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2편) 과거를 청산한 ‘독일’, 친일세력 잔재하는 ‘한국’ 
반성없는 일본에 대한 비판은 온당한 처사, 선생의 민족정신 되살려야 
친일잔재 청산은 100년이 지나도록 숙제로 남아있다. (자료=민족문제연구소)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요즘 알만한 식자층은 일본이 그동안 수차례 사과했으면 됐지 또 시비냐면서 덮고 가자고 말한다. 언제까지 과거에 매몰돼 있어야 하느냐고도 짜증을 낸다. 

더 나아가 일본의 조선 식민 지배는 축복이자 혜택이었다는 발언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 연세대학교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자칭 우파 지식인들이다. 

물론 그 뿌리를 캐보면 친일세력이거나 친일 부역-독재의 후예들임을 알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강조된 민주화 시대를 이용해 이들이 드러내놓고 일제 식민지배 역할론을 부각하고 있는 것은 심상치 않다. 

진정한 우파는 민족주의자들인데, 우파를 자처하면서도 친일 찬양과 사대근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책을 내고, 강연하고, 일본에 진출해 세미나도 연다. 

성암 선생이 살아 계시다면 어떤 태도를 보일까. 

#. 일본에 대한 비판이 온당한 이유 

조선인 처형 장면을 풍속화로 판매한 일본. (자료=민족문제연구소)

이들은 지난 70년 체제동안 권력의 단물을 빨아먹고 명예와 부를 축적한 당사자거나 그 후예들이다. 그리고 한결같이 민주화 정권을 싫어하는 특성을 지녔다. 그러나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지적이 현 정권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가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약속을 판판이 뒤집기 때문이다. 무라야마, 하토야마 등 전 총리가 한국 식민지배를 통렬히 반성한다고 사과했지만, 아베 등 후임 정권은 선임자가 한 선언이나 약속을 일거에 뒤집어버렸다. 과거의 역사인식, 신사참배, 독도문제 등에서 보듯이 오만과 억지와 생떼를 부리고 있다. 

필요에 따라 반성문을 냈다가 구겨버리고, 지금은 용도 폐기하는 모양새다. 이런 나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일관성과 정직을 국민성의 장점으로 내세운 그들이 이런 신의 없는 짓을 거침없이 한다. 그러면서 한일외교 협정문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한다. 그것도 틀렸지만 그들은 약속을 번번이 파기하면서 우리더러 지키라고 하는 오만을 부리고 있다.  

#. 독일 통일 원동력, ‘통절한 과거사 청산’ 

한때 독일 통일은 지구가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려울 것이라고 세계 지성들이 진단했다. 독일, 하면 주변국이 넌덜머리를 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폴란드, 영국, 러시아 등이 독일이 강대해지면 그들이 늘 희생을 강요받기 때문에 주변국일수록 통일독일을 싫어했다. 

반면에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통일이 쉬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런데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외세보다 국내 세력들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독일과 프랑스를 천년의 적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이센 전쟁, 보불전쟁, 1차 세계대전, 히틀러 파리점령, 2차 세계대전 등등... 독일의 침략으로 툭하면 국경선이 변경되었다. 러시아, 폴란드도 마찬가지다. 

근현대사에서 프랑스와 독일만큼 전쟁을 많이 치르고, 희생이 컸던 나라도 없다. 전쟁을 통해 수천만의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를 냈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프랑스 청년 40%가 사라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지금 두 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우호 선린국으로서 세계 평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독일이 통절한 2차 대전 범죄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고, 배상을 했기 때문이다. 나치 전범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찾아내 처단했다.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 인권, 박애, 선린, 우호에 충실했다. 두 번 다시 전쟁으로 유럽을 비극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각성이 독일 정부와 국민간에 이루어졌다. 그것이 지난하기만 한 독일 통일을 가져온 원동력이 된 것이다. 

분단 이후 독일 통일은 지구상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지만, 1989년 프랑스와 러시아가 먼저 지지하고, 미국이 사인하면서 독일통일은 이루어졌다.

#. 전범을 추앙하는 ‘일본’, 친일세력이 잔존하는 ‘한국’ 

그런데 일본은? 전범들이 우글거리는 신사를 일본 정부가 솔선해 나서서 참배하며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수천 만 아시아인들을 살상하고, 열다섯, 열여섯 먹은 철없는 어린 소녀들을 잡아들여 자칭 천황폐하를 위해 ‘성전’을 수행한다는 일본군에게 사기 진작용으로 병영에 집어던지고, 놋그릇, 숟가락, 문고리, 쌀과 보리, 하다못해 잔디씨, 피마자씨까지 거둬 착취하고, 조선의 청장년 수백만 명을 전쟁터와 군 기지, 항만ᐧ비행장 건설 현장으로 내몬 전범자들은 죽어서도 매년 일본 총리대신이 찾아가 바친 공물을 받아먹으며 영생을 누리고 있다. 

이런 야만이 어디 있는가. 피해국에게 망신 주는 또 다른 폭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일본은 남북 분단의 책임 또한 크다. 해방 관리를 하는 미국에 빌붙어 남북 이간질로 분단을 영속화했다. 그런 기록과 증언들이 지금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의 지도층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히 친일파를 등용해 해방공간을 분탕질하고, 일제 탄압정책의 하나로 수행했던 사상범 색출이라는 좌우 대결을 해방공간에서 그대로 리셋팅함으로써 우리는 서로 증오하고 저주하며 분단 세기를 살아왔다. 

이런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지구의 평화는 없다. 그런데 반성할 이유가 없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거기에 일부 국내 세력이 부추긴다. 

이 땅에는 친일세력이 여전히 세상의 중심이 되어있고, 정치계. 학계. 자본계에 깊숙이 침투해있다. 그들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으니 반성할 이유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 일본의 오만에 대해 우리가 원인제공을 한 측면이 있다. 과거 회귀를 희구하는 친일파들로 인해 시대적 모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역사의 진전은 물론 독일 통일보다 우리의 통일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현실묵수적인 기득세력이 중심이 되어있는 그들로 인해 갈수록 꼬여간다는 것이다. 

#. 현실묵수의 가치, 기득권의 자원?

기득권 세력은 대체로 현실묵수적(現實墨守的)이다. 변화를 싫어하고 과거의 영화를 누리려  한다.

‘묵수’란, 제 의견이나 생각, 옛 습관 따위를 고집스럽게 고수한다는 묵자(墨子)의 말에서 유래한 용어다. 묵자는 묵가(墨家)의 시조로 춘추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다. 

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접어들어 생산력이 월등히 높아지자 농민, 수공업자, 상인이 신흥계급으로 성장하고, 종래의 지배계급이던 씨족ᐧ귀족세력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자 기존 토착 귀족계급들이 신흥계급들을 탄압한다. 묵자는 이 시기에 신흥계급의 입장에 서서 씨족ᐧ귀족의 탄압에 맞서 싸운다. 말하자면 관념적ᐧ현학적 철학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으로 거리에 나선 것이다.

그의 정치사상은 ‘천하이흥(天下利興 : 천하에 이익 되는 것을 북돋우고’, ‘천하해제(天下害除:천하의 해가 되는 것을 없애는 것)’를 원칙으로 하고, 실현 방법으로 지배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약탈이나 백성 살상의 전쟁에 반대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자신과 타인의 이익을 서로 높이는 '비공'(非攻)과 '겸애'(兼愛), 유능하다면 농민이나 수공업자도 관리로 채용하는 '상현'(尙賢), 백성의 이익에 배치되는 재화ᐧ노동력의 소비를 금지하는 '절용'(節用)을 주장했다. 

이러한 원칙에 기반한 활동 속에서 논리적 용어인 유(類:보편), 고(故:까닭,이유)의 개념을 실용적 행동철학으로 완성했다. 이때 집권 수구세력이 그는 물론 따르는 자들을 잡아들이고 처단했다.  

이를 굳이 내세우는 것은 2500년 전에도 낡은 구제(舊制) 타파, 즉 변화를 위해 현자들이 자신의 행복과 안락을 기꺼이 희생하고 고난을 감수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백성의 삶과 정치에 유용한 것에 대한 가치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강고한 기득세력은 변화가 두려워서 이를 철저히 부쉈다. 

석기를 고수해보았자 편리하고 생산성 높고 실용적인 철기를 이길 수 없다. 기존의 질서와 제도로 기득권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진화되어가는 세계를 덮을 수 없는 것이다. 역사는 진전하고 세상은 진화의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그 대오에 재빨리 편승한 구세력이 더 많은 이익을 얻었던 것도 역사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 2500년 전 논리, 현실 기득권 사회에도 재현 

성암 평전 출판기념회에서 공개된 책. 목차만 봐도 그의 항일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2500년 전의 논리가 지금 우리 기득권 사회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성암 평전 출판기념회에서도 그러한 일단이 드러났다. 출판기념회장에서 김원웅 광복회장과 다른 지방 유지의 의견이 다른 것을 발견했다. 

김 광복회장은 역사 청산이 아직도 안 되었으니 일본을 향해서 발언하고,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했고, 어떤 유지는 자기 정치적 견해와 일치시켜 뜻을 강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결이 다르지만 그 역시 자기 정치적 견해를 밝힌 셈이다. 

성암 선생을 보는 눈은 이렇게 자기 처해진 정치적 지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성암 선생의 정신이 이 시점에서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정신 자체가 좁은 의미의 이익이 아니라 세계 만민의 이익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암 정신은 외세의 폭력성과 야만성, 그리고 교활한 침략근성을 규탄하는 것이라는 점은 세계 보편적 가치와도 맥이 닿아있는 진리다. 

#. 불평등 한일 회담, ‘눈 앞의 이익’에 매몰

앞서 지적했듯이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협정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6.3사태까지 몰고 왔다. 심각한 문제 제기를 누르고 박정희 군부정권이 계엄령을 선포해가면서까지 협정을 체결했다. 

그로부터 50년 후인 2015년 박근혜 정권과 일본 정부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고,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을 체결했다.

협약이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불평등이 있었다면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이 협약이 갖는 특성이다. 협약 조인 과정에서 천부의 인권인 강제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자 문제를 무시하거나 묵살하고 서둘러 조약을 체결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은 한일국교 정상화 회담까지 끌어들여 이런 문제들이 패키지로 해결되었다고 덮어버린다. 그렇다면 전임들이 일본군 위안부 앞에서 무릎 꿇은 것은 무엇인가. 그들 앞에서 눈물 흘렸다면 희생당한 개인에 대한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는 것이 인권에 대한 보편 가치에 충실한 태도가 아닌가.

그런데 국내 우파들이 먼저 이를 거들고 나섰다. 심지어 종군위안부와 강제 징용자를 자발적 돈벌이 나선 매춘부나 노무자로 폄하한다. 이의 부당성을 지적한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고, 대법원과 결탁했다고 정권을 욕한다. 횡포를 부리는 일본을 비판하지 않고 현 정권을 공격한다.  눈앞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억지를 부리는 이런 모습은 씁쓸하다. 

독일에 비하면 일본은 너무도 왜소하고 쪼잔하지 않는가? 그리고 일부 국내 세력은? 

#. 성암의 항일정신, ‘세계 보편적 가치’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 출판기념회가 27일 오전 어진동 초려공원 갈산서원에서 열린다. 
지난 27일 오전 어진동 초려공원에서 열린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 출판기념회. 그의 정신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선사하고 있다. 

성암은 1905년 을사 오적과 일본 정복세력이 야합해 을사늑약을 맺자 ‘기의려문(起義旅文)’이라는 항의문을 써서 “을사늑약은 법적 형식이 결여된 불법적인 조약으로 을사 5적이 여기에 찬성하여 맺어진 것으로,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반되는 것이며, 합법성을 의미하는 조약이 아닌 늑약인데다 불법과 강제성을 띠었으니 무효”라고 꾸짖었다. 지금도 그것은 유효하다. 

일제가 강요하는 민적(民籍) 등재를 거부하자 일제는 성암을 체포해 협박했다. 성암 같은 대표적인 민족지도자를 훼절시킴으로써 백성들을 계도할 구실을 삼고자 했으나 성암은 굴하지 않고 저항했다. 이 때문에 그는 계속 옥고를 치렀다. 힘겨운 옥중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는 굽힘 없는 항일정신으로 일관되었다. 

“어찌 오랑캐의 배부르고 따뜻한 신하가 되겠는가”

서재에 묻혀있어야 할 성리학의 대가가 실천적 구국운동에 나선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이완용에게 그랬듯이 오늘날 자기 이익과 결부시켜 나라를 분탕질하는 세력에게 준엄하게 회초리를 들 것이다. 

그의 회초리는 ‘왜적에게 벼슬한 사람을 부러워함을 보고’라는 칠언율시에 나타나있다. 영혼을 팔아 부를 쌓고, 입신양명을 위해 양심을 파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寧爲華夏飢寒民(영위화하기한민) : 차라리 중화(유교적 선비의 가치)의 춥고 굶주린 백성이 될지언정

詎作夷戎飽煖臣(거작이융포난신) : 어찌 오랑캐의 배부르고 따뜻한 신하가 되겠는가

簞瓢陋巷自由樂(단표누항자유락) : 단표누항(도시락과 표주박과 누추한 찬거리라는 뜻                                                  으로 소박한 생활을 비유)에도 본래 즐거움이 있느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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