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독립운동가 ‘성암 이철영 선생’, 세종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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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가 ‘성암 이철영 선생’, 세종서 재조명    
  • 이계홍 주필
  • 승인 2019.12.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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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시대를 선구하는 행동하는 실천적 유학자” 평가  
27일 오전 초려공원 갈산서원서 순국 100주기 평전 출판기념회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 출판기념회가 27일 오전 어진동 초려공원 갈산서원에서 열린다.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구한말 유학자이며 항일 독립운동가인 성암 이철영 선생(1867-1919) 순국 100주기를 맞아 선생의 사상을 기리는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이상익 부산교대 교수 집필)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오는 27일 오전 11시 세종시 어진동 초려공원 갈산서원.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 세종시에 재조명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평일이지만 시간이 된다면, 자녀들의 손을 잡고 가볼 만한 현장이다.  

초려 역사공원 전경.

#. 성암 이철영 선생이 걸어온 길 

성암 이철영 선생은 충남 공주 증호 출신으로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자 국권을 회복하고 일제 침략에 분연히 일어나 항거한 항일독립 운동가다. 조선의 국운이 기울 때 태어나서 망국의 과정을 모두 겪으며 일제에 항거하는 선비의 양심을 행동으로 보여준 대표적 실천 유학자다. 

성리학의 대가였던 성암은 1905년 을사늑약을 당하자 ‘기의려문(起義旅文)’이라는 항의문을 지어서 이른바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조정은 물론 일본에 보내 항의했다.

성암 이철영 선생. 

‘기의려문’은 “을사늑약은 법적 형식이 결여된 불법적인 조약으로 을사 적이 여기에 찬성하여 맺어진 것으로,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반되는 것이며, 합법성을 의미하는 조약이 아닌 늑약인데다 불법과 강제성을 띠었으니 무효”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나라가 외교권, 군사권, 사법권 등 모든 국권이 강탈당하고 일본에 예속되자 “조선의 백성을 일본의 백성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용납할 수 없다.

죽어서 조선의 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일본의 백성이 되지는 않겠다”며 일본 정부를 꾸짖는 편지 ‘치일국정부서(致日國政府書)’를 써서 일본 정부에 보냈다.

그래도 변함없이 병탄 작업이 계속되자 성암은 다시 ‘재치일국정부서’를 보내 거듭 일본 정부의 부당성을 규탄했는데,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0년 일본의 조선 병탄(한일합방) 때에는 처남 경운과 함께 체포되었다. 

일제의 민적(民籍)에 가입하지 않자 일제는 또다시 그를 체포해 가두고 협박했다. 일제는 성암 같은 대표적인 민족지도자를 훼절시킴으로써 백성들을 계도할 구실을 삼고자 했으나 성암은 모두 굴하지 않고 저항했다. 이때 다시 69일간 옥고를 치렀다. 이 같은 옥중생활은 그의 생애를 통해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성암은 이 일들을 모두 일기로 작성해 남겼는데, ‘기유일기’ ‘경술일기’ ‘갑인일기’ ‘무오일기’ 등이 그것이다. 또한 ‘옥중일기’도 별도로 남겼다. 이를 통해 성암의 정신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 ‘성암 정신’, 후세의 교훈으로 되살려야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 

그의 사상의 기저는 일제에 대한 항일의식이 단순히 지식인의 관념적 저항이 아니라 ‘행동하는 실천적 지성’으로서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후세에 남긴 교훈은 커보인다. 

특히 요즘 한일 분쟁과 역사를 모독하는 일본 정부의 만행을 볼 때, 성암 정신은 우리에게 국민적 각성을 요구하는 교훈과 가르침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성암 정신을 되살리는 작업이 활발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때에 평전이 나오게 돼 뜻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한일관계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일이다. 

한편 이철영 선생은 세종시에 세워진 초려공원의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1607-1684) 선생의 9세손이다. 이유태 선생 역시 율곡 이이(李珥)를 따르는 경장론을 주장하는 사회개혁운동에 앞장선 실천적 유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당시 민폐와 국정 동요의 근본 요인이 농민의 유리와 토지의 황폐에 있다고 보고, 안정책으로 향약에 의한 향촌 조직과 오가작통제(五家作統制)의 실시, 양전(量田) 시행과 사창(社倉) 설치를 주장하고, 15세 이후 능력에 따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선택을 역설했다. 당시 사회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든 학자였다. 또한 그는 북벌을 지지하는 개척자적 정신도 갖춘 인물이다. 

이에 따라 초려공원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 것이 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식전 문화행사로 박경숙 다도회장의 다도 시연, 조정아 씨의 가야금 독주, 세종시 시낭독회장 이선경 씨의 추모시 낭송, 윤혜진 씨의 트리플 오카리나 연주도 곁들인다.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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