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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연기군 4H구락부를 조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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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연기군 4H구락부를 조직하다
  • 이성원(연기새마을금고 이사장)
  • 승인 2012.10.10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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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곳을 찾아서 50년...]

통행금지 피하면서 농촌계몽활동 열성

‘나는 나의 클럽과 공동체, 나라를 위해 나의 머리(head)를 더 명철하게 생각하는데, 나의 가슴(heart)을 더 위대한 자부심을 가지는데, 나의손(hand)을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치기로 맹세한다.’ - 4H클럽회원의 맹세

필자는 1964년도에 가축은행과 철사노작, 호적찾아주기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을 때 정기영 연기농촌지도소장이 연기군4H 지도위원회(클럽)를 조직해서 도와달라고 했다.

▲ 이성원 이사장이 4H 연기군클럽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 이성원 4H 연기군클럽 초대 회장

필자는 각 읍면(7개 읍면)에 대표자를 뽑아 구성했다. 이들 각 읍면지도자들은 농촌계몽운동을 함께 한 사람들로서 흔쾌히 응해줬다. 이들은 필자하고 동지(同志)적인 관계로서 농촌계몽운동 활동도 아주 열심히 했다. 몇 주 만에 연기군 4H구락부원은 500-600명이나 됐다. 이에 정기영 소장도 깜짝 놀라며 필자와 각 읍면 지도자의 능력을 높이 샀다. 후일 이들 조직은 농촌지도자와 농업경영인 조직으로 퍼져 나가기도 했다. 실제 오늘날 농촌활동 조직은 필자가 조직한 4H구락부가 근간이 됐다.

당시는 오토바이도 없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4H 클럽의 ‘지덕노체’ 정신을 지도하며 농촌계몽활동을 했다.

4H 지도자들은 진학을 못한 청소년들을 사랑방을 빌어서 모아 교육도 했다.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서 마을에서 교육이 늦게 끝나면 밤 12시를 훌쩍 넘겨서, 통행금지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가까운 거리도 산길로 빙빙 돌아서 귀가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열성껏, 사명감을 갖고 4H구락부 활동을 했다. 마치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주인공 채영신과 박동혁처럼 시대적인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청년들이 연기군 4H구락부를 이끌면서 필자와 함께 가축은행, 철사노작 등 농촌계몽활동을 했다.

연기군 4H구락부가 7개 읍면으로 조직이 되고나서 초대회장을 맡았다. 4H구락부를 조직하고 활동을 하면서도 가축은행과 철사노작활동, 호적찾아주기 활동 등을 계속했다.

4H구락부 활동은 회원들에게 가축기르기, 배추농사, 콩 농사 등을 짓도록 과제를 내주고 기술적인 지도를 했다. 또 가을 수확기에는 회원들이 수확한 농축작물을 품평하는 경진대회를 열어 경쟁을 유도해서 의욕을 고취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당시 농촌계몽활동을 함께 한 연기군 4H구락부 지도자나 회원들의 열성적인 참여가 있어서 오늘날 농촌도 잘 살게 됐다고 여긴다.

▲ 이성원 이사장이 희망원 4H 클럽도 조직했다
▲ 이성원 이사장이 4H 연기군클럽 초대회장으로 선출돼 인삿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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