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국보·산성 순례길, 시민 태운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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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국보·산성 순례길, 시민 태운 택시운전사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9.11.19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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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정현 실번스토리연구소장
김정현 실번스토리연구소장.
김정현 실번스토리연구소장.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삼국 중 하나로 세 번의 천도를 거쳐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고대국가. 백제의 뿌리는 여전히 세종에서 숨쉰다.

백제부흥운동의 중요한 근거지로 꼽히는 세종시의 국보, 산성을 따라 시민 답사팀을 꾸려 문화재 순례길에 나선 사람이 있다. 실번스토리연구소장이자 도시의 택시 드라이버, 김정현 씨(61)다.

그는 야간에는 택시운전사로 일한다. 나머지 시간은 세종의 역사적 뿌리를 찾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수 십 여년 향토사 연구에 몸을 바친 오하 김재붕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1600여 년 전 멸망한 백제 터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고 있다. 역사의 첫 페이지를 쓰고 있는 세종시가 다시 오래된 고서(古書)를 꺼내야 하는 이유, 김정현 실번스토리소장을 만나 들어봤다.

#. 책으로 출판된 ‘백제에서 세종으로’ 답사기

세종시 연서면에 위치한 연화사 답사 모습. (사진=실번스토리연구소)
세종시 연서면에 위치한 연화사 답사 모습. (사진=실번스토리연구소)

실번스토리 시민 답사팀은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총 여덟 차례에 걸쳐 세종시 국보와 산성을 답사했다. 결과물은 ‘백제에서 세종으로’ 책으로 출판됐다. 출간 기념 북 콘서트는 지난 16일 열렸다.

답사 때마다 청소년을 포함해 2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답사 타이틀인 ‘백제에서 세종으로’는 세종시의 태동으로 돌아가 그 뿌리를 찾아보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북쪽으로는 전의현을 중심으로 한 산맥이, 남쪽으로는 금강과 미호천이 어우러진 연기현이 위치했던 곳이 바로 지금의 세종시다.

“1993년부터 이듬해까지 주간 아홉거리 연재를 위해 61차례 답사를 떠난 적이 있다. 현재 실번스토리 멤버인 황치환 대표와 함께했던 경험이 하나의 토대가 됐다. 세종에 새로 이주한 시민들은 이 도시에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이런 답답함에 직접 답사팀을 꾸려 곳곳을 다녀보기로 했다.”

올해 답사 일정은 국보와 산성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김 소장에 따르면, 현재 세종에 남아있는 산성은 총 30여 개. 터만 남거나 일부 성벽만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군 단위 치고는 꽤나 많은 숫자다. 동시에 연기군이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백제가 고구려에 한성을 빼앗기고 현재의 공주, 웅진으로 천도할 때 연기군은 주변을 방어하는 주요한 기지였다. 전의를 중심으로는 산맥이, 운주산성을 기점으로는 금이성 자락이 자리했다. 특히 금이성은 철성산으로도 불렸다. 그곳만 방어하면 고구려가 아무리 남하해도 지나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신라와 고구려를 막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세종시였다. 63년 간 수도를 유지한 현재의 공주가 지금까지 역사를 제대로 보존한 데에는 세종시의 지역적 요건도 한 몫 했다. 대신 세종시는 전장의 중심에 있다 보니 남아있는 게 없다. 그래서 조금 소외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2차 답사지 운주산성은 세종시민들에게도 꽤나 친숙한 장소다. 인근 비암사와 명산 운주산이 자리하기 때문. 운주산성은 국내 산성 중 보기 드문 대형 산성으로 꼽힌다. 높은 돌계단을 수없이 올라가다 보면, 북으로는 천안과 아산, 동쪽으로는 청주, 남쪽으로는 세종시가 내려다보인다.

“운주산성은 이미 국가사적으로 지정됐어야 하는 산성이다. 충남에 11개 산성이 국가사적으로 지정돼있는데, 운주산성이 빠진 점은 서글픈 일이다. 지금이라도 시에서 나서 사적 지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오하 김재붕 선생님은 백제부흥운동의 중심 주류성으로 운주산성 주변을 주장하셨다. 특히 1960년 9월 경 비암사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과의 연결점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으로 꼽히는 금이성과 함께 하루 빨리 사적지정이 돼야 한다고 본다.”

김 소장에 따르면, 비교적 많이 알려진 운주산성, 금이성 외에도 역사적으로 재조명받아야 할 산성도 많다. 당산성과 황우산성, 남성골산성이 대표적인 예다.

“당산성은 연기군의 치소다. 현이 있었던 곳이다. 연기현은 조치원으로 옮겨지기 전 당산성 밑에 위치했다. 성과 현은 하나의 짝이다. 당산성은 미호천과 금강을 낀 중요한 지역에 위치해 연기현의 치소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

황우산성은 미호천과 금강 가운데 위치한다. 산성에 오르면 부강포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부강포구는 한때 어마어마한 상권이 형성된 곳으로 신택리지에 보면 조기로 부채질을 하고 미역을 행주로 쓰는 곳으로 묘사된다. 60~100섬을 실은 배들이 들락날락하고 풍어제를 지내면 일 년 내내 먹을 것이 안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성골 산성은 2001년 세종 청주 간 도로 지표 조사 중 발굴된 곳이다. 고구려 시대 토기나 집기가 많이 출토됐다. 발굴 조사에서는 금귀걸이까지 나왔다. 백제가 힘이 약해졌을 때 고구려 장수왕이 이 근방까지 남하해 50~60년 근거지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는 백제 시대 산성으로 볼 수 있다.”

#. 방치된 사적지, 뒤늦게 연구에 뛰어든 이유

실번스토리 답사팀이 국립공주박물관을 방문해 전시 유물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실번스토리연구소)
실번스토리 답사팀이 국립공주박물관을 방문해 전시 유물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실번스토리연구소)

답사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도시가 어떻게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잘 알려진 문화재도 정비가 미흡하고, 알려지지 않은 곳은 이정표마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금이성은 성체인 돌무더기를 넘어가야 답사가 가능했다. 입구에서 올라가는 길목이 굉장히 가파르지만, 계단이 없어 올라가기 쉽지 않았다. 연기현의 진산으로 꼽히는 당산성이나 황우산성은 이정표나 안내판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상태다. 나성동 독락정은 기호서사 발굴을 목적으로 2년 째 입구를 막아놔 답사가 여의치 않은 상태여서 아쉬움이 컸다.”

잘 조성됐지만 어떻게 가꿀지에 대한 인식이 아직 미진한 사례도 있다. 세종시 문화 유적 발굴 전시 계획 로드맵은 있으나 아직 체감은 더디다.

“한솔동 백제고분공원은 꼭대기에 오르면 전망이 참 좋다. 현재의 한솔동은 과거 송원리였다. 금동신발이 출토된 나성리와 가까웠다. 한솔동 고분도 석관묘의 규모를 보면 굉장히 크다. 이곳에 힘있는 거대 세력이 거주했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공원은 잘 조성돼있지만, 출토된 유물이나 유적의 전시 계획, 연구 결과가 후속으로 안내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세종시에서 출토된 국보는 총 3점이다. 국보 제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국보 제108호 계유명삼존천불비상, 국보 제247호 공주의당 금동보살입상이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비암사에서, 계유명삼존천불비상은 조치원읍 서창리 서광암에서, 공주의당금동보살입상은 과거 충남 공주군 의당면 송정리(현 세종시 장군면 송정리)에서 발견됐다.

보물은 연화사 소장 보물 제649호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 보물 제650호 칠존불비상을 비롯해 비암사에서 출토된 보물 제367호 기축명아미타불비상, 보물 제368호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 등 4점이다.

국보와 보물들은 연화사 소장품을 제외하고는 국립공주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등에 보관·전시돼있다.

“세종시에서 출토된 국보와 보물이 총 7점이다. 국립박물관단지가 들어서면 적어도 개관 기념으로 최소 1년, 임대 형식으로라도 시민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종시의 뿌리를 실제 이 도시에서 보는 뜻깊은 기회가 되리라 본다.”

#.  오하 김재붕 선생과의 인연

김 소장이 1993년 주간 아홉거리에 연재한 문화재 이야기. (자료=실번스토리연구소)
김 소장이 1993년 주간 아홉거리에 연재한 문화재 이야기. (자료=실번스토리연구소)

김 소장은 오하 김재붕 선생의 정신을 이어 세종시 역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답사 타이틀인 ‘백제에서 세종으로’는 과거 그가 펴 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충남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실번스토리연구소의 ‘실번’은 오하 김재붕 선생의 별호(別號)에서 따왔다. 그가 스승으로 모시는 김 선생은 고대 백제 역사를 연구한 지역 사학자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부터 조치원공립여고 교사로 재직했다. 1983년에는 제1대 연기군 향토사연구소장을 지냈다. 

“김 선생님이 세종시 역사 기록 정리를 다 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사학자로 알려진 이병도 박사와 논쟁도 많이 했다. 주고받은 친필서도 굉장히 많다. 겉모습은 촌동네 아저씨 같았지만 마음만은 늘 젊었고, 글은 누구보다 날카로우셨다.”

김 소장과 오하 김재붕 선생의 인연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소장의 고향은 조치원이고, 김 선생의 고향은 연동면 내판리다. 둘의 만남은 연기군문화원에서 시작됐다. 김 선생은 그곳에서 향토사를 연구했다.

그에게 과거 조치원에서 병원을 운영했던, 일찍 돌아가신 조부를 유일하게 기억하는 김재붕 선생은 특별한 존재였다. 또 김재붕 선생도 사학을 전공한 김 소장과의 만남을 누구보다 즐거워했다.

“큰 재떨이에 꽁초가 한 가득 쌓일 만큼 담배를 피워가며 역사 이야길 나눴다. 선생님이 1922년생이시니 36년 차이가 난다. 늘 맞담배를 권하셨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다 보니 선생님 말씀에 늘 크게 호응을 못해드린 점이 지금 와서 무척이나 가슴에 남는다.”

고 윤조병 선생과 그의 아내 강소금 작가와의 인연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재붕 선생이 연구하고 남편 김 소장이 고증해 창작된 작품이 바로 강 작가의 <계유년의 봄>이다. 비암사 국보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윤조병 선생이 지도했다. 강 작가는 윤 선생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진다.

“지역 정체성을 널리 알리고 소통하는 데에 역사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음악과 미술, 스토리텔링, 공연까지 여러 분야로 승화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꼈으면 한다. 특히 역사 왜곡 없이 정확한 사실이 전달돼야 한다.

실번스토리 답사팀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다. 60대의 나이와 도시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이런 움직임이 조금 늦었나 싶기도 하지만, 실번스토리가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실번스토리 답사팀의 발걸음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역사의 숨결을 따라 함께 걷고, 오르고,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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