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마리사 베렌슨
그녀의 이목구비는 가늘고 창백해 전형적인 영국귀족부인의 모습을 잘 연출하고 있었다. 전형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하다면 최소한 그녀들 통해 영국귀족부인의 모습이 새롭게 조명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어쨌든 느닷없이 나타난 매혹의 여배우 마리사 베렌슨. 하지만 이 영화 <베리 린든>(1975) 외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채 잊혀져갔다.
영화 <베리 린든>(1975)에서 백작부인으로 분한 마리사 베렌슨은 그전까지 영화계에 알려진 바 없는 무명에 불과했다. 이런 무명배우의 기용은 사실 당시 영화계에서는 파격적인 시도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이토록 영화속 역할에 딱 맞아떨어져 보이는 여배우를 어떻게 발굴해냈을까 궁금하게 만들지만 그녀의 영화속 모습에 더 집중해보자.
마리사 베렌슨이 연기한 린든 백작부인은 이제 곧 숨이 멎어버릴 것같은 노령의 백작과 결혼한 젊은 부인이다. 그녀의 대리석 같은 표정을 보면 결혼생활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거나 하는 것이 부질없어 보인다. 귀족 신분이니 온갖 격식에 맞춰 살아가지만 애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젊은 도박사에게 눈길을 보내고 급기야 그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부인을 빼앗긴 린든 백작은 그 도박사의 치기에 격분하나 그 바람에 발작을 일으켜 사망하고 만다. 이 도박사 베리는 주인 없는 여자의 환심을 사 결국 결혼하기에 이른다. 린든 백작부인은 자기 생애에 처음으로 삶의 의미를 만끽하는 줄 알았다. 베리에게 그녀는 돈과 신분을 보장해주는 재미없는 과부였을 뿐인데.
베리의 방탕과 무관심에 냉가슴을 앓던 백작부인은 다시 예전의 그 대리석 같은 표정으로 돌아온다. 늙기는 했으나 진짜 귀족이었던 전남편으로부터 얻은 어린 아들을 곁에 두고 굳어버린, 어떤 생각도 어떤 언어도 튕겨져나갈 듯한 감정제로의 얼굴. 그게 허물어져가던 18세기 귀족의 ‘진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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