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불감증과 공포증 사이, ‘라돈'의 진실은
상태바
건강 불감증과 공포증 사이, ‘라돈'의 진실은
  • 박승권
  • 승인 2019.10.21 17:5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승권의 백 살까지 일하기] 사회적 대화 협의체 구성해야

라돈은 무색, 무취한 기체로 우리가 평소에 전혀 느낄 수 없는 방사능 물질이다. 라돈은 주로 토양이나 암석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므로 지구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다만, 비활성 기체로서 우리 체내 화학적 작용을 유발하지 않으므로 설령 고농도에 노출되더라도 급성 증상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라돈은 공기보다 무거워 이미 광산(갱내), 터널, 지하 공간 노동자의 폐암 위험 측면에서 주로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2010년 들어서부터는 공동주택, 특히 안전한 줄로만 알았던 고층에서도 권고 기준을 상회하는 결과가 보고되어 생활 전반에 걸쳐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 생소한 물질로 세종이 시끄럽다. 살기 좋은 세종에 웬일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라돈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 안전한가? 위험한가?, 의학적으로 안전한 수준은 ‘0’

‘안전한가?’ 아니면 ‘위험한가?’ 라돈에 대해 관련 전문가 의견을 들어봐도 이게 안전하다는 이야기인지 위험하다는 이야기인지 헷갈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라돈이나 방사선뿐만 아니라 납과 같은 중금속, 환경호르몬, 발암물질 등 많은 경우에서 ‘안전한 수준’ 혹은 ‘역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정 농도부터 의미있는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그 이하 농도가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법적 권고 수준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말은 분명 잘못된 말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저농도 노출에서도 질병과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연관성이 없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하므로 확실한 답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다.

#. 사고의 양극화

건강과 질병에 대한 개개인의 철학과 감수성의 차이로 인한 갈등도 생각해 볼 문제다. 공포증에 가까운 사람들은 유해물질의 노출에 대해 수용 가능한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고, 반대의 사람들은 비교적 높다.

작업장 내 중금속이 높고, 심지어 혈액에서 높게 나와도 둔감하게 받아들이는 노동자가 있는 반면, 일반인과 의미있는 차이가 아니라는 의사의 설명에도 볼멘소리를 하는 노동자가 있기 마련이다. 충분히 알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서 이러한 사고와 태도의 차이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개개인의 철학과 감수성 격차에 기인한다.

이 때문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믿고 싶은 정보만 수집하고 믿게 되는 것을 뜻한다. 건강 공포(염려)증이 있는 사람들은 질병과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온 연구 위주로 정보를 수집해 근거를 제시하게 되고, 그 반대의, 혹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들은 질병과 연관성이 없다는 결과 위주로 믿게 되어 당사자 간 대립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기 쉽다.

#.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대립하는 양측의 주장도 대개 일리가 있다. 라돈은 1988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인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폐암은 암 중에서도 생존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도 맞다.

라돈은 흡연 다음으로 폐암에 기여하는 원인 인자로 꼽힌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전체 폐암의 3~14%가 라돈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 연구에서도 우리나라 폐암 사망자의 12.6%가 실내 라돈 노출 때문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라돈 노출은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안전한 농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노출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폐암위험도 상승한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반대 측 주장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기분 나쁘니 일단 안 된다’는 식의 사고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국제암연구소에서 말하는 1급 발암물질의 의미는 라돈 노출과 폐암 간에 통계적 연관성이 충분히 입증되었다는 의미이지 암 유발 위험이 크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 같은 1급 발암 물질 내에서도 암 유발 위험성 차이가 크다. 흡연처럼 암 발병 위험을 10배 가까이 상승시키는 물질이 있는 반면, 다소 낮은 위험으로도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물질도 더러 존재한다. 라돈으로 인한 폐암 위험은 노출 수준에 따라 상승한다. 이 때문에 라돈 농도가 높다고 할 때, 이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해성(Hazard)과 위해성(Risk)의 개념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유해성은 특정 물질이 가진 독성 등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고유의 성질을 뜻한다. 위해성이란 유해성에 더하여 노출빈도, 노출량, 노출 경로 등을 고려했을 때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유해하다는 것이 위해하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수은은 유해성이 높은 물질이지만, 온도계 속에 밀봉돼 보관된 경우에는 사람이 이를 흡입할 일이 없으므로 위해도가 높다고 볼 수 없다.

국제암연구소는 위해성 수준이 아닌 유해성 측면에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물질 노출의 빈도, 양, 경로 등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막연히 라돈의 유해성만을 강조하는 태도를 고수하기보다는 노출의 빈도, 경로와 결부시켜 위해성을 주장하여야 한다.

#. 미성숙한 환경의학, 사회적 대화 협의체 구성해야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에서는 방사선 방호의 원칙으로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개념을 제시했다. 가능한 한 합리적인 수준까지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순수하게 의학적, 과학적 측면만 고려해 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환경의학 분야는 근거라고 내세울 데이터가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환경의학은 아직 미성숙하고 불확실성이 크다.

전문가는 유해·위해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 결과와 의학적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에 국한된다. 환경노출 문제의 답을 내려줄 수 없다는 얘기다. 라돈처럼 무역치 선형모델(Linear No-Threshold Hypothesis)이 적용되는 유해물질, 쉽게 말해 어느 수준이 안전한지 확정할 수 없는 유해물질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느 수준까지 노출을 억제할 것인지, 사후조치나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 위해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합의가 필요하다.

그 물질의 경제성, 편리성, 대체 가능성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철학, 감수성, 수용성 등의 정서적 요인을 충분히 고려해 설정해야 하고, 또 때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유해물질의 법적 권고 혹은 허용 기준은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고 변화의 요구에 대해 논의하는 창구도 부족하다.

건강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생활 속 희귀하고 다양한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문제는 계속하여 대두될 것이다. 제2, 제3의 라돈 논란, 즉, 유해물질 안전성 논란으로 인한 사회 갈등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유발되리라 본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주민, 노동자, 소비자, 경영계, 정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대화 협의체를 통해 지속적이고 역동적으로 ‘합리적인 수준’을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승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박승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유성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진료과장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대전·충청 지부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원이 2019-10-24 13:06:08
이글처럼 하루빨리 해결책이 생겼음 좋겠습니다. 라돈으로 우리가 어느정도 위험에 처해있는지 알지못해 불안하고 또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주요기사
이슈포토